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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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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차 값으로 바나나 받은 것처럼… ‘1000원 영화’ 흥행 힘은 발상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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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4만명 13분짜리 영화 ‘밤낚시’

판타지아국제영화제서 수상까지

조선일보

영화 '밤낚시'를 기획·제작한 현대자동차의 지성원 브랜드마케팅본부장. /현대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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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극장가의 가장 신선한 일격은 영화 ‘밤낚시’의 성공이다. 13분짜리 단편으론 처음으로 정식 극장 개봉했다. 티켓값 1000원도 파격적인 시도였다. 몇 명이나 볼까 했는데 4만6423명을 동원했다. 극장 관계자들도 깜짝 놀란 성과였다. 가볍게 보는 영상물인가 했는데 판타지아국제영화제에서 수상까지 했다. 대기업과 칸 영화제 수상 감독, 스타 배우,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의 협업이 성공한 최초의 사례였다.

‘밤낚시’는 착상에서부터 안착까지 여타 작품과 확연히 달랐다. 한가운데에 ‘밤낚시’를 기획·제작한 현대자동차 마케팅본부가 있다. 최근 만난 지성원 현대차 브랜드마케팅본부장은 “소셜미디어에 무한정 노출된 콘텐츠를 보며 대중의 눈높이가 어느 때보다 상향 평준화된 시대”라며 “대중에게 선택받으려면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근육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밤낚시’를 만들며 다시금 깨달았다”고 말했다.

‘밤낚시’ 관객은 10~30대가 62%나 된다.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어떤 경험을 즐기느냐를 중시하는 최근 젊은 관객의 경향을 보여준다. 지 본부장은 “숏츠로 콘텐츠의 핵심만 보는 데 익숙한 관객층의 반응이 특히 좋았던 것 같다”고 했다. 티켓값 1000원이면 수익과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작품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파급 효과가 높았다. ‘밤낚시’를 단독 개봉한 CGV에 따르면, ‘밤낚시’ 관객 5명 중 1명은 다른 영화도 함께 관람한 것으로 집계됐다.

연출을 맡은 문병곤 감독과 배우 손석구가 작품성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는 점도 주효했다. 2013년 칸 영화제 단편 부문에서 영화 ‘세이프’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문 감독은 손석구가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고집해 합류하게 됐다. 단편이지만 눈높이를 어떤 장편영화보다 높게 뒀다. 음향 하나만을 두고도 미팅을 수차례 열며 손봤다. ‘1000원 영화’도 여러 회의 중 손석구가 제안했다. 다이소나 1달러숍이 가격 이상의 높은 만족감으로 선택받듯, 어떤 장편보다 높은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격에서부터 보여주자는 발상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먹혔다.

현대차 내부적으로는 ‘밤낚시’ 제작에 우려도 있었다. 직접적으로 상품이 노출되는 PPL과 달리, ‘밤낚시’에 전기차는 나오지만 현대차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이래서야 도움이 되겠느냐”는 지적이 내부에서 나왔다. 지 본부장 등 마케팅 담당자들은 문화 협업이 장기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고 설득했다. 지 본부장은 “50년 전 포니차의 첫 수출국이던 에콰도르에서 받아온 것은 돈이 아니라 바나나였다”며 “미래를 위해서 과감한 발상 전환으로 문화 투자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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