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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수)

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왔구나, 왔소!’...소리극으로 재탄생한 이은관 명인의 ‘배뱅이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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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국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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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구나, 왔소이다!”

건달 박수무당이 부모가 그리던 죽은 딸 배뱅이의 넋이 찾아왔다며 너스레를 떨던 이 소리. 2014년 별세한 고(故) 이은관 명인의 이름과 동의어처럼 여겨졌던 ‘배뱅이굿’의 이 대표 소리가 처음으로 연극의 옷을 입는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은 내달 4~5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우명당에서 배뱅이굿 민요와 연극을 결합한 소리극 ‘왔소! 배뱅’을 선보인다. 이은관 명인 생전 배뱅이굿은 그의 맑고 카랑한 음색으로 실어내던 1인 창극 형태로 각인돼 있었다. 이를 다양한 배역에 배치된 민속악단 단원들의 목소리로 재현하는 소리극으로 처음 재탄생시킨 것이다.

‘배뱅이굿’은 서도지역에서 이어져 온 이야기를 민요와 무가, 재담을 섞어 해학적으로 엮은 국가무형유산이다. 스님과 금기의 사랑을 꿈꾸던 양반 딸 배뱅이가 세상을 떠나자 부모가 그 넋을 기리고자 각 지의 무당을 불러들이고, 그 중 평양 건달 무당이 엉터리 넋풀이로 돈을 얻어간다는 내용이다. 봉건적인 신분 제도와 사회를 풍자한 이야기의 속내를 유쾌한 민요로 풀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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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은관 명창의 생전 공연 중 모습. 활동 당시 그는 인터뷰 때마다 '종로4가 제일극장 데뷔 공연'을 "잊을 수 없는 무대"로 꼽았다. “여류 가객 김계춘이 관객을 울려 놓으면 내가 나서서 실컷 웃겨놓았다”고 했다. 카랑가랑하게 치고 올라가는 맑은 소리로 관객을 쥐락펴락했다. /조선일보DB


세간에 생소했던 배뱅이굿의 이름을 처음 널리 알린 건 이은관 명인의 공이었다. 1917년 강원도 이천에서 좋은 목을 타고난 명인은 황해도 황주 이인수 선생에게 서도소리와 배뱅이굿을 배우며 소리 인생을 시작했다. 1957년 양주남 감독이 만든 영화 ‘배뱅이굿’에서 직접 박수무당 역으로 출연해 큰 인기를 끌었고, 당시 사운드트랙(OST)은 6만장 판매고를 세웠다. 이후 명인은 198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보유자로 지정됐다. 평생을 배뱅이굿을 알린 공로로 국내 최고 권위 국악상 방일영 국악상(9회), 보관문화훈장, 한국국악협회 국악대상 등을 받았다.

이번 소리극 대본은 이 명인의 생전 함께 배뱅이굿을 공연했던 유지숙 예술감독이 맡았다. 연출은 연극 ‘정조와 햄릿’(2021), ‘오페라 나비부인’(2024) 등 다방면에서 음악극 연출을 펼쳐온 임선경 연출가가 맡았다.

스스로도 서도소리 명창으로서 이번 공연 도창(창극의 해설자 역할)도 직접 맡은 유 감독은 “관객들이 ‘우리 음악이 이렇게도 즐거울 수 있구나’란 점을 느끼실 수 있도록 웃음과 해학, 풍자가 넘치는 민속악의 또 다른 매력을 전하는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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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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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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