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TV+ 오리지널 ‘파친코’ 시즌2
‘쓰랑꾼’ 이민호ㆍ선자 김민하 인터뷰
‘파친코’ 시즌2 한수 역의 이민호와 선자 역의 김민하 [애플TV 플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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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이 있다. 1910년 끝끝내 살아남은 ‘강인한 아이’가 점지되던 그 날부터 80년의 시간을 넘나든다.
“드라마를 한 줄로 정의한다면, 제겐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희망이었을까, 어디에서 빛을 찾았을까. 선자에겐 그것이 가족과 사랑이었듯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힘든 상황에서 삶을 지탱하는 힘을 찾을 수 있다면 너무나 감사할 것 같아요.” (김민하)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는 27개국에서 번역된 이민진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아낸 재일 한국인 가족 4대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일제 강점기를 살아낸 선자와 1989년 거품 경제 시기 일본에서 살아가는 선자의 손자 세대인 솔로몬(진하 분)의 이야기를 교차한다.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를 외국의 ‘거대 자본’으로 만든 미국 드라마 ‘파친코’는 시대를 관통하며 두 남녀의 이야기를 끌어온다. 이 기나긴 여정에서 한수와 선자는 드라마 속 ‘치정 담당(?)’이다. 둘 사이엔 복잡미묘하고 강렬한 긴장감이 감돈다. 한수를 연기하는 이민호는 둘의 관계에 대해 “완성되지 않은 사랑이자, 내면 깊은 곳에서 서로를 품고 있지만 멜랑콜리한 로맨스는 아니다”고 정의한다.
선자를 연기하는 김민하는 “촬영장에서 이민호를 보면서 ‘한수 아니야?’ 싶은 기분을 매일 느꼈다”며 “한수를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현장에서 이민호의 연기로 설득됐다. 이민호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무거웠다. 항상 압도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고 돌아봤다.
이민호 역시 “김민하는 오디션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선자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놀라움을 주는 배우”라며 “너무도 선자 같아 답답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그랬다. 현장에서 볼 때마다 묘하게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며 웃었다.
‘파친코’ 시즌2 김민하 [애플TV 플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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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살아낸 선자의 이야기…“마음으로 듣는 법 배워”“휴…” (김민하가 쓴 선자의 일기 중)
매일 ‘선자의 일기’를 썼다. 어떤 날은 감정이 담긴 단어 하나 뿐이었다. 대부분은 ‘한수 생각’이었다.
“7년의 세월이 흘렀기에 ‘선자는 7년 동안 무엇을 겪었을까’, ‘가족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됐을까’, ‘아이들은 어떻게 키웠을까’를 생각하며 선자에 대한 일기를 썼어요. 정말 사소한 것들을 많이 적었어요. 14년 간 서로를 보지 못했지만 선자는 매일매일 한수를 생각했을 것 같더라고요.”
1945년 오사카, 이야기는 이곳에서 다시 시작된다. 선자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옛 연인이자 첫째 아들의 친부 한수(이민호 분)와의 재회다. 부산 영도에서 헤어지고 14년 만이다. 김민하는 “선자가 시즌2의 시작에서 그토록 놀라고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질어질한 충격을 받은 것도 늘 한수를 생각했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흔들림 없는 검은 눈동자, 강인한 생명력, 결코 무너지지 않는 올곧은 성정의 선자는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시즌 1에선 일본에서 성공한 사업가 한수를 만나 연인이 되고, 아이를 갖지만 뒤늦게 한수가 세 아이를 둔 유부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수는 ‘두 집 살림’을 계획하나, 선자는 그를 거절하고 목사인 이삭(노상현 분)과 결혼한다. 시즌 2는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치닫는 상황에서 투옥된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꾸려가는 두 아이의 엄마 선자와 그의 앞에 나타난 한수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김민하는 “선자는 사랑이 낳은 사람”이라며 “사랑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어 내면은 단단하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특히 시즌 2에선 2차 세계대전의 위기에서 가족을 지키려는 가장으로의 강인함을 보여준다. 그는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가족을 지키고자 희망을 찾고 빛을 좇으며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내실을 단단히 잡으며 깊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김민하의 데뷔는 2016년이지만, 그는 ‘파친코’를 만나 세상에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오디션을 봤지만, 선택받지 못했다. 김민하가 ‘파친코’에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도 떨어졌던 오디션 영상이 캐스팅 디렉터의 손에 닿으면서다. 무려 넉 달의 오디션을 거쳐 주인공으로 낙점됐다.
그는 “파친코를 만난 건 천운이었다”며 “배우로서 ‘파친코’는 큰 변화의 기점이 된 작품이다. 안해본 것들도 많이 경험할 수 있었고, 나에 대해 많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그는 ‘파친코’ 시즌1이 공개된 이후 ”피부로 와 닿는 건 길거리에 다닐 때 많이 알아보시는 것 같다”며 웃었다.
시즌 2에서 선자의 눈은 더 단단해졌다.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그는 일제강점기를 살아낸 90대 친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살고자 했다. 그는 “‘그 시절 일곱 남매를 어떻게 키우셨냐’고 물었을 때 ‘그냥 했지’라고 이야기해줬다”며 “할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떠올리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선자에게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어떻게 이렇게 의연하고 빠르고 단단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어떻게 신념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마음을 다해 이야기를 듣고 대화하는 법을 배웠어요. 그러면서 마음의 방도 생기고,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지고 공감하는 능력도 생겼어요. 촬영은 끝났지만 선자에게 배우고 싶었던 모습들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 같아요.”
‘파친코’ 시즌2의 이민호 [애플TV 플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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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랑꾼’ 한수의 이야기…“결핍과 욕망, 그를 만나 이민호는 건강해졌다”‘쓰랑꾼’, ‘해바레기’라고 불렸다. ‘쓰레기 사랑꾼’, ‘해바라기 쓰레기’라는 뜻이다. 가난했고, 가난을 벗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에 성공했다. 나의 그림자라도 남아있는지 궁금해 금의환향한 조선 땅에서 선자를 만났다. 유부남이었지만, 부인과 ‘애정’은 없다며 당당하게 선자와 딴살림을 차리려고 했다. 그의 욕망은 사랑과 생을 향한 집요한 집착으로 묻어난다.
“한수와 비슷한 면이 없지 않아요.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생존해야 했죠. 잘 되고 싶어 욕망을 품었던 적도 있고요. 제 경우 그 욕망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건강한 방식으로 발현됐다면, 한수는 그것을 건강하게 발현할 기회가 없던 시대에 살았다고 생각해요.”
‘로코킹’ 이민호(37)는 이번 작품에서 이전과는 다른 얼굴을 꺼냈다. ‘꽃보다 남자’(KBS2, 2009)의 구준표, ‘상속자들’(SBS, 2013)의 김탄, ‘더 킹:영원한 군주’(MBC, 2020)의 이곤…. ‘백마 탄 왕자’를 도맡아온 그는 2010년대 김수현·김우빈·이종석과 함께 신(新) 한류 4대천왕으로 불렸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서 총 6400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 매 작품 ‘원톱 남주’로 극의 중심에 섰던 그가 ‘파친코’에선 여러 배우들과 분량을 잘게 나눠 시대 속 한 사람을 연기한다. ‘파친코’ 시즌1 당시엔 ‘의외로’ 적은 분량에 시청자들의 의문이 제기됐다.
이민호는 ”늘 책임을 지고 작품 전체를 끌어가야 하는 작품을 해오다 선자의 일대기를 기점으로 내용이 나눠진 ‘파친코’를 접하며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자유로움을 만나게 됐다“고 했다.
그는 대본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원했을 때 만난 작품”이라고 했다.
“전 제가 표현하는 것, 공감하는 것이 중요한 사람인데, 그 작업을 10년 넘게 하면서 번아웃이 왔던 것 같아요. 그 때가 데뷔한 지 12~13년차 즈음이었어요. 지금까지 잘 온 것에 대한 감사함 이외에 무언가 새로움이 필요했어요.”
영도의 거친 시장통에 새하얀 수트에 중절모를 비스듬히 쓰고 등장한 한수는 그 시대의 ‘백마 탄 왕자’이기도 했다. ‘파친코’는 시즌 1의 첫 회부터 이민호가 가진 장점을 온전히 드러내면서도 그에게 다른 얼굴을 끌어냈다.
‘파친코’ 시즌2 이민호 김민하 [애플TV 플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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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는 그간의 캐릭터와는 완전히 다른 인물처럼 보이지만 사실 ‘결핍’이라는 연결고리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민호는 “(그간 맡았던 역할들은) 잘 포장된 모습으로 만들어졌지만 사실 구준표도 김탄도 단점과 결핍이 있던 인물”이라며 “늘 부족하고 성장의 여지가 있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나의 감성으로 채울 여백이 있는 인물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하게 된다”고 말했다.
‘파친코’를 만나며 연기의 방향도 달라졌다. 그는 “‘파친코’ 이전엔 작가와 감독의 의도를 잘 파악해 그것을 최대한 존중해 맞추려는 배우였는데, 한수는 그렇게 접근할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해 치열하게 준비했다”고 말했다. 드라마 대본을 쓴 수 휴와의 논쟁도 즐겼다. 언성이 높아질 정도의 토론이 꽤나 많았다는 게 현장의 전언이다. 그는 “지금의 한수는 대본을 보고 처음 느꼈던 감정들을 모두 지우고 사고의 자유로움 안에서 만들어진 인물”이라고 평할 정도다.
2006년 EBS 드라마 ‘비밀의 교정’으로 데뷔, ‘꽃보다 남자’를 기점으로 그는 ‘최정상 스타’로 지냈다. 이민호에겐 언제나 주연 배우가 가져야 할 무게가 따라왔다. 그는 “하나의 작품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무게, 한편을 만들기 위한 제작비의 무게를 알고 있기에 늘 부담을 안고 있다”며 “그렇기에 항상 후회 없을 정도로 해야 하고,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 이름 앞에 ‘한류스타’, ‘청춘스타’, ‘로맨스 킹’과 같은 여러 수식어가 붙지만, 그것에 연연하거나 무게 중심이 쏠리면 불행해지는 것 같아요. 결국 진짜 저를 만드는 것은 배우 이민호라는 생각이에요. ‘파친코’의 시즌 2까지 마친 지금은 너무나 좋은 배우들을 만나 내 안의 묵은 감정들을 해소하며 인간 이민호도 건강해진 느낌이에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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