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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인터뷰] "뛰어나지 못한 걸 알기에"…김선호, 오늘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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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atch=정태윤기자] "잘 맞고, 좋아해요."

김선호는 (본인 피셜) 타고난 배우는 아니다. 노력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무엇보다 연기를 사랑한다. 그래서, 둘도 없는 '베프'다. 물론 사이가 멀어지는 순간도 있다.

"틀어져서 확, 돌아설 때도 있습니다. (연기가) 마음에 안 들어서 계속해서 테이크를 갈 때가 그런 순간이죠. 이유 없이 멀어졌다가도 너무 좋아서 끊을 수 없는, 나쁜 친구예요. 하하."

이번에도 그랬다. (연기와) 끈질기게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완성했다. 그동안은 표출하는 연기였다면, 이번엔 덜어냈다. 누르고 삼키고 여백을 있는 그대로 남겨뒀다.

"저는 대사가 없는 시간에 무언가를 채우기 바빴던 것 같아요. 이제는 침묵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체득한 걸 노련하게 쓸 줄 아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김선호가 디즈니+ '폭군'(감독 박훈정)으로 새로운 얼굴을 그렸다. 그 여정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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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훈정, 서로를 믿었다

'폭군'은 추격 액션 스릴러다. '폭군 프로그램' 마지막 샘플이 배달사고로 사라진다. 이를 찾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쫓고 쫓기는 이야기를 그린다.

김선호는 영화 '귀공자'에 이어 또 다시 박훈정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그는 "박훈정 감독님과 촬영 중간중간 산책을 자주 했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이야기해 주셨다. 그 중 하나가 '폭군'이 있었다"고 밝혔다.

"감독님과 취미가 비슷합니다. 산책하고 맛집 찾아다니는 걸 좋아해요. 휴식할 때 같이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자연스럽게 작품 이야기가 나왔고요. 재밌을 것 같다고 하니까 '같이 할래?'라고 제안해 주셨죠."

공교롭게도 연달아 같은 감독 작품에 참여하게 됐다. 심지어 장르도 (같은) 누아르다. 두 작품의 캐릭터가 겹쳐 보일 수도 있다는 우려는 없었을까.

그는 "시간이 흐르고 촬영했다. 역할도 다르고 세계관도 다르다"며 "감독님이 다르게 그려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박 감독도 믿고 맡겼다. 그 결과, 김선호의 새 얼굴을 꺼냈다. "감독님이 '그것보다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어. 해봐', '거봐 되잖아'하면서 믿어주셨다. 그 한마디가 많은 걸 바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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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국장, 초췌해져 있다"

김선호가 맡은 최국장은, 앨리트 요원이다. 극비리에 초인 유전자 약물 '폭군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설계자다. '폭군 프로그램'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대중에게 익숙한 김선호의 모습은, 로맨스에 가깝다. 최국장은 맡아본 적 없는 캐릭터다. 부드럽고 달달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늘하고 책임감에 눌려 있는 얼굴.

해본 적 없기에 불안함도 컸다. 그러나 도전하지 않으면 성장도 없는 법. 그는 "문을 두드리면 여지가 생기더라. 낯설었지만, 원래 잘하는 것과 접목하면 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고 말했다.

박훈정 감독은 그 어떠한 지시도 하지 않았다. 모든 걸 배우에게 맡겼다. 김선호는 대본에서 답을 찾았다. 핵심 키워드는, '최국장 초췌해져 있다'.

"유독 '피곤한 표정으로', '초췌해져 있다'는 지문이 많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팀원을 희생시키면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요. 밥이 넘어갈까 싶었죠. 자진해서 6~7kg을 감량했습니다."

극한에 몰린 최국장의 상황을 이해했다. 곧장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다크서클, 붉은 눈, 잡티, 수염 등도 메이크업으로 추가했다. 파리하고 수척한 얼굴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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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도 대사였다

외면을 채운 후엔, 내면을 비웠다. 최국장은 무겁고 말수가 없는 캐릭터다. 대본의 빈칸을 말로 채우지 않았다. 눈썹의 움직임, 눈빛 흔들림으로 이끌어갔다.

김선호는 대학생 때 교수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일명 '정반합'. 가장 나다운 모습 위에 나와 가장 다른 최교수를 대입했다. 일례로, 불편한 순간에 눈썹을 만지는 습관을 최교수에게 접목했다.

그는 "모든 건 저로부터 출발했다. 나한테 조금이라도 최국장 같은 면이 있다면, 극대화해서 덧붙였다"며 "시선 하나, 손의 각도, 자세까지도 계획했다"고 설명했다.

"저는 그동안 대사가 없는 시간에 무언가를 채우기 바빴던 것 같아요. 지금은 침묵의 상태에서 비언어적인 것들로 표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제 눈썹의 움직임도 대사가 되더군요."

폭군 프로그램의 행방을 쫓기 위해 최국장을 추궁하는 사람들. 최국장은 그 어떠한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고 신념을 지켜나가야 했다. 그러다 폭발시키기도 한다.

일례로, '폭군 프로그램'의 폐기를 지시한 해외 정보기관 소속 비밀요원 폴(김강우 분)과 대립하는 장면. 최국장은 폴을 향해 '왜 우린 폭군을 만들면 안 되냐'고 외친다.

"최국장이 가장 하고 싶은 말 같았습니다. 계속 누르며 연기하다 보니, 한 번쯤은 터트리고 싶었어요. 과한 버전과 완전히 누른 버전을 준비했죠. 감독님과 상의해서 완전히 표출하진 않았습니다. 응집한 것이 비집고 터져 나오듯 연기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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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파들이 모였다"

'폭군'은 캐릭터 맛집이다. 차승원(임상 역), 김강우, 조윤수(자경 역) 등 각기 다른 캐릭터들이 연기 대결을 펼친다. 현장에선 서로가 서로에게 배웠다.

차승원은 김선호를 "유연한 배우"라고 극찬했다. 그는 "선배님이 훨씬 더 유연하다. 완벽한 노력의 결과물"이라며 "감독님이 차승원 선배와 나눈 대화를 자랑스럽게 보여주시더라"고 떠올렸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등산복을 입고 가는 사진을 보내며 '이런 옷은 어때', '이런 제스처를 해볼까' 등 디테일 하나하나를 문자로 주고받으면서 상의하시더군요. 그냥 되는 건 없다는 걸 깨달았죠."

김강우는 섬세하고 날카로웠다. 김선호는 "(김강우는) 정확하게 대사와 감정을 찍어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너무 러프하구나' 자책하기도 했다"며 "앉아 있는 자세만으로도 감정을 전달한다. 섬세하고 정확한 배우"라고 평했다.

신예 조윤수 역시 노력파였다. 김선호는 "누가 봐도 응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지치지도 않네 싶었다. 쉬는 시간도 없이 액션 연습을 하고 고민하더라"고 전했다.

이어 "다음 신에 영향을 줄까 봐 말을 못 걸겠더라. 신이 끝나고 잠시 바람 쐬고 있을 때 '화이팅이야'라고 말하는 정도였다. 앞으로 더 좋은 배우가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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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개지고, 흔들리고, 자빠지더라도…"

김선호 역시 노력파다. 그는 "타고난 사람이 부럽다. 저는 전혀 아니다. 어쩔 땐 딕션이 뭉개지고, 흔들리고, 자빠지기도 한다. 노력 안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저도 그중 하나"라고 자평했다.

지난 2009년 연극 '뉴 보잉보잉'으로 데뷔해 한해도 빠짐없이 연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괴감에 빠지고 괴로워하며 주변에 고민 상담도 한다. 그러다 답을 찾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는 "남들보다 뛰어나가게 잘하지 못한다. 그 정도의 자신감도 없다"면서도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더라. 어느 범주 안에서 다양하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작은 자신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매해 연극 무대에 서면서 기본기를 다시 다집니다. 알고 있는 것도 놓칠 때가 많더라고요. 무대에서 내려와 서로의 연기에 대해 평가하고, 되짚어보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어요."

차기작으로도 다양한 모습을 준비했다. 로맨스 '이 사랑 통역 되나요?', 판타지 '현혹', 추리물 '망내인' 등이다. 그의 연기 고민은 당분간 계속될 예정이다.

"요즘에는 연기가 베스트 프렌드 같아요. 너무 친하고 잘 맞는데, 사소한 걸로 확 틀어지기도 합니다. 오늘도 밤새워서 촬영하고 왔어요. 연기가 마음에 안 들어서 '한 번만 더 갈게요'를 계속했습니다. 왜 연기가 마음에 안 드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서 더 속상해요. 그렇다고 끊을 수도 없는 애증의 관계죠."

명확한 목표가 있기에, 그의 노력은 계속된다.

"진짜가 되고 싶습니다. '저 연기 대단하지 않아?'라는 말이 아닌, '저 안에 사람이 있어'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진짜처럼 보이는 것이 배우로서의 최종 목표입니다. 점점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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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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