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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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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 황금기 이끈 ‘세기의 미남’ 영화 배우 알랭 들롱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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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외모로 데뷔 때부터 화제

1960년 ‘태양은 가득히’로 스타덤

베를린·칸 국제영화제 ‘명예 대상’

경향신문

향년 88세를 일기로 별세한 프랑스 영화배우 알랭 들롱.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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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미남’으로 이름을 날렸던 프랑스 영화배우 알랭 들롱이 1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8세.

AFP통신은 이날 가족들의 말을 인용해 “알랭 들롱이 프랑스 두시에 있는 자택에서 세 자녀인 알랭 파비앙, 아누슈카, 앙토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들롱은 1935년 프랑스 파리 교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러 차례 퇴학을 당하다 10대 때부터 정육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후 해군에 입대했지만 불명예 제대했고, 할리우드 제작자 데이비드 오 셀즈닉의 눈에 띄어 영화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원래 미국에서 활동하려던 그는 마음을 바꿔 프랑스 영화판에서 경력을 쌓기로 결심한 뒤 1957년 이브 알레그레 감독의 영화 <여자가 다가올 때>의 조연으로 데뷔했다.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고요한 분위기를 풍기는 들롱의 신비로운 외모는 데뷔 직후부터 화제가 됐다. 그를 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 준 것은 1960년 르네 클레망 감독의 영화 <태양은 가득히>였다. 들롱은 이 영화에서 위험하고도 매력적인 남자 주인공 톰 리플리 역할을 맡았다. 이 영화로 ‘세계에서 가장 잘생긴 배우’라는 수식어도 얻었다. 들롱은 미국 할리우드 진출에도 시도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프랑스로 돌아왔다.

들롱은 1960~1970년대 프랑스 영화계를 이끈 대표적인 배우였다. 특유의 서늘한 이미지를 살려 <지하실의 멜로디>(1963), <시실리안>(1969), <암흑가의 세 사람>(1970), <볼사리노>(1970) 등의 범죄 누아르 영화에도 다수 출연했다. 그가 트렌치 코트를 입은 고독한 청부살인자 역을 맡았던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의 <사무라이>(1967)는 홍콩 영화감독 오우삼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들롱이 직접 제작에도 참여한 영화 <무슈 클라인>은 1977년 세자르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을 수상했다. 1985년에는 베르트랑 블라이어의 영화 <우리의 이야기>로 세자르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1990년대 들어서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다. 2008년 영화 <아스테릭스: 미션 올림픽 게임>에서 줄리어스 시저 역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1991년 프랑스 최고위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1995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명예 황금곰상을 받아 영화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2017년 은퇴를 선언한 뒤 2019년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공로상인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1968년에는 개인 경호원으로 일했던 스테판 마르코비치가 사망한 사건으로 논란에 휘말렸다. 마르코비치가 생전에 남긴 편지에서 “내가 살해당한다면, 그건 100% 알랭 들롱과 그의 대부인 프랑수아 마르칸토니 때문이다”라고 밝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마르칸토니는 들롱과 친분이 있는 갱스터였다. 사건은 결국 미제로 남았다.

들롱은 말년까지 복잡한 사생활을 보냈다. 지난해에는 알랭 들롱의 세 자녀가 그의 일본인 동거인이 아버지를 정신적으로 괴롭히고 있다며 고소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1999년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고, 2019년 여름 뇌졸중으로 수술을 받고 투병해 왔다. 알랭 들롱의 아들 앙토니는 2022년 프랑스 라디오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건강이 더 악화하면 안락사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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