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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은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구단 SNS에 올라온 예상치 못한 항의 댓글이 폭주하자 당황스러운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 두산 팬들이 광복절 당일인 15일 잠실 롯데 자이언츠전에 일본인 투수 시라카와 케이쇼(23)가 등판한다고 착각한 게 사건의 시작이었다. 이들은 "광복절에 일본인 선발투수가 등판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항의했다.
일단 시라카와는 광복절 등판 계획 자체가 없었다. 두산은 지난 13일 잠실 롯데전이 비로 취소되면서 선발 로테이션을 조금씩 조정했고, 구단 SNS에서 논란이 있기 전에 시라카와는 16일 수원 kt 위즈전에 선발 등판하기로 확정한 상태였다. 시라카와가 롯데 상대로 한 차례 등판해 1⅓이닝 8실점(7자책점)으로 고전했던 만큼 껄끄러운 상대를 피하도록 구단이 배려한 결과였다. 애초에 벌어나지도 않은 일로 뭇매를 맞으니 구단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또 당연히 일본인 선수가 광복절에 경기에 나서도 아무 문제가 없다. 역사를 잊으면 안 되는 일이지만, 스포츠에 정치를 반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KBO 규정상 10개 구단이 일본인 선수를 영입하는 데 아무런 제한이 없고, 광복절에 일본인 선수를 기용해선 안 된다는 규정도 없다.
그동안 KBO리그에서 광복절에 일본인 선수가 경기에 나선 사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2009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에서 뛰던 일본인 우완투수 카도쿠라 켄은 그해 8월 15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해 6이닝 3피안타 6사사구 5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하면서 5-1 승리를 이끌었다. 2010년 LG 트윈스 마무리투수로 활약했던 일본인 우완투수 오카모토 신야 또한 2010년 8월 15일 목동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전에 구원 등판해 ⅓이닝 2피안타 1볼넷 1실점을 기록했다. 10여년 전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던 일인데, 이제 와서 '논란'을 만든 게 의아할 정도다.
시라카와는 반일 감정과도 거리가 매우 먼 선수였다. 오히려 한국에 와서 말도 안 되는 인기를 누려 놀라움을 안겼다. 지난 5월 SSG와 KBO 최초 대체 외국인 계약을 했을 때 일본 독립리그 에이스 출신으로 눈길을 끌었고, SSG와 함께한 5경기에서 2승2패, 23이닝, 평균자책점 5.09을 기록하며 성공 사례를 썼다. 지난달부터는 두산과 또 한번 대체 외국인 계약을 체결해 KBO리그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두산 이적 후에는 체력 저하와 제구 난조 이슈로 5경기에서 1승2패, 22⅓이닝, 평균자책점 7.25에 그쳤으나 기존 외국인 투수 브랜든 와델의 부상 재활 기간이 길어지는 와중에 선발 로테이션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만으로도 보탬이 되고 있다. 처음 두산에 왔을 때 시라카와는 팬들에게 둘러싸여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이 불가능했을 정도로 인기가 엄청났다.
시라카와는 평소 한국 팬들의 뜨거운 응원과 지지에 늘 감사를 표해 왔다. 그는 "팬분들이 신경 써서 선물도 주고 그러시는데,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더 좋은 결과를 내서 그분들에게 보답할 수 있도록 집중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단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광복절 출전 논란에 휩싸였을 때 시라카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반대로 일본프로야구(NPB)에 도전한 한국인 선수가 시라카와와 같은 문제에 놓였다면 국내 팬들은 과연 가만히 있었을까. 조금만 생각해도 이런 논란을 만드는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란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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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두산은 홈경기가 있는 날이면 잠실야구장 외야석 상단에 태극기와 구단 우승기, 영구결번기와 함께 일본 일장기와 미국 성조기, 캐나다 단풍잎기를 게양한다. 구단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의 국기를 게양하는 건 그동안 전통처럼 해왔던 일이다. 두산에는 현재 시라카와 외에도 미국 출신인 브랜든 와델, 캐나다 출신인 조던 발라조빅과 제러드 영이 뛰고 있다.
그런데 일부 두산 팬들은 현재 잠실야구장에 걸려 있는 일장기도 광복절에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두산은 이 문제 만큼은 외면할 수 없었고, 광복절 당일 하루만 일장기를 비롯해 성조기와 단풍잎기까지 게양하지 않기로 결단을 내렸다. 대신 태극기를 더 게양하면서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방향으로 마무리했다.
올해는 KBO리그에서 뛰는 일본인 선수가 시라카와 한 명이었기에 두산 한 구단의 문제로 국한됐다. 광복절 당일 시라카와의 등판 계획도 없었기에 논란이 더 커질 일도 없었다.
하지만 당장 내년부터는 10개 구단의 문제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 KBO가 최근 아시아쿼터 도입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 10개 구단 단장과 KBO 사무국은 지난달 16일 실행위원회를 열고 아시아쿼터 도입 안건을 이사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실행위는 현재 구단당 3명씩 뽑을 수 있는 외국인 선수와 별도로 아시아 대륙 선수를 대상으로 하는 아시아쿼터를 도입하기로 뜻을 모았고, 최종 결정을 10구단 사장들의 모임인 이사회로 넘긴 상황이다. 이사회에서도 합의가 되고 제도가 갖춰지면 이르면 내년부터 아시아쿼터가 도입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시아쿼터 제도가 도입된다면 자연히 아시아에서 야구 수준이 가장 높은 일본에서 뛰던 선수들을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클 전망이다. 구단마다 아시아쿼터로 뽑을 수 있는 인원과 포지션, 대상 국가 등 세부 사항은 아직이나 리그 전반적으로 일본 출신 선수가 늘어날 것이란 예상은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러면 아시아쿼터 도입 이후로는 광복절 당일 일본인 선수 기용을 두고 여러 구단이 동시에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는 뜻인데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일본인 선수 영입에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특정 국적이 역사적 정치적 이유로 출전을 제한하거나 눈치를 봐야 하는 요소가 돼선 안 된다. 이는 역차별까지 이어질 수 있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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