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권해효 등은 일당제로 출연료 받아
상업영화 평균 제작비 100억 원 시대 새 모델
국내에서 가장 바쁜 감독으로 꼽히는 연상호 감독은 넷플릭스 영화 '계시록' 후반 작업을 하고 있으며 차기작으로 '얼굴'을 연출한다.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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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중인 한국 영화 ‘얼굴’은 제작비가 2억 원대다. 독립영화라 해도 돈이 적게 들어간 편에 속한다. 관심이 가기에는 규모가 작아도 너무 작다. 하지만 메가폰을 잡은 이와 출연 배우 면면을 보면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연상호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박정민과 권해효, 신현빈 등이 출연한다. 여느 상업 영화 못지않은 진용이다. ‘얼굴’은 한국 영화계에선 유례없는 실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영화계의 새 돌파구가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출연배우 출연료 일당제로 지급
연상호 감독의 그래픽노블 '얼굴' 표지. 세미콜론 제공 |
‘얼굴’은 연 감독의 동명 그래픽 노블(2018년 출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영화계에 따르면 연 감독은 그래픽 노블 ‘얼굴’을 영상화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노력해 왔다.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까 고심했다가 실사 독립영화로 방향을 틀었다. 애니메이션은 실사보다 더 많은 돈이 든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래픽 노블 ‘얼굴’은 산업화 시기 멸시받고 잊혔던 어머니의 삶을 추적하는 아들의 사연을 미스터리 형식으로 담고 있다.
영화 ‘얼굴’은 연 감독이 설립한 영화사 와우포인트에서 제작한다. 제작비는 연 감독 주머니에서 나왔다. 외부 투자는 일절 받지 않았다. ‘얼굴’이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 배우들은 출연료를 일당으로 받으며 연기한다. 박정민과 권해효, 신현빈은 연 감독의 제작 취지에 공감해 적은 출연료를 받고 출연하기로 했다고 알려졌다. 스태프 인원은 최소한으로 꾸렸다. 20명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업 영화 스태프 수(60명가량)의 3분의 1 수준이다. 역시 일당제다. 촬영 기간은 한 달이다.
제작비 2억 원은 초저예산이라 할 수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2월 낸 보고서 ‘2023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상업영화(제작비가 30억 원 이상 기준) 평균 제작비는 100억 원이었다. 독립·예술영화 평균 제작비는 3억 원이었다.
박정민은 연상호 감독의 영화 '염력'(2018)과 드라마 '지옥'에 출연한 적이 있다. 샘컴퍼니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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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감독은 독립영화로 영화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첫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돼지의 왕’(2011)이 제65회 칸국제영화제 감독 주간에 진출하면서 주목받았다. ‘사이비’(2013)와 ‘서울역’(2016) 등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을 계속 만들다가 첫 실사 영화 ‘부산행’으로 상업영화 진영에 들어섰다. ‘부산행’으로 관객 1,157만 명을 모았고,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2021)과 ‘기생수: 더 그레이’(2024)로 세계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다.
‘돼지의 왕’과 ‘사이비’를 제작한 조영각 프로듀서는 “연 감독은 여전히 거액의 투자금을 모을 수 있으나 제작비가 높으면 감독은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연 감독이 자신이 정말 만들고 싶은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2억 원 영화’를 기획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연 감독은 ‘얼굴’로 세계 유명 영화제 진출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정부지 출연료 해결 묘수 될까
'얼굴'에 출연하는 배우 권해효는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사이비'에서 목소리 연기를 했고, '반도'(2020)에 출연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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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얼굴’의 제작 방식은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 영화계에는 ‘복합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극장 관객 수는 코로나19 대유행 이전보다 30%가량 줄어들었으나 스타 배우 출연료 급등에 따라 제작비 상승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출연료 상승은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국내 시장에 진출한 영향이 크다. 글로벌 OTT가 드라마 제작을 위해 국내 유명 배우들에게 거액을 제시하면서 출연료가 천정부지로 올랐다.
‘얼굴’ 같은 제작 형태는 배우들에게도 새 기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국내 영화와 드라마 제작 편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일감’을 얻지 못하는 배우들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평소 친분이 있는 감독과 배우들이 의기투합하면 ‘얼굴’ 방식으로 얼마든지 영화를 만들 수 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배우들이 최근 연극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데 그마저도 자리가 없다는 말이 들린다”며 “‘얼굴’은 기본 출연료를 크게 줄이고 흥행했을 때 ‘러닝 개런티’를 더 많이 주는 식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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