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3 (월)

이슈 영화계 소식

AI영화 개척한 권한슬 감독 “실제 촬영보다 창작의 고통 컸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영화 ‘원 모어 펌킨’ 권한슬 감독 인터뷰

“AI 잘 쓰는 사람만 살아남는 세상 온다”

AI 영화 선구자로 “책임과 부담 느껴”

중앙일보

권한슬 감독은 "AI 등장으로 콘텐트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에 상을 받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권한슬 감독(31)은 한국 AI(인공지능) 영화의 개척자이자 선두 주자로 꼽힌다. 생성형 AI로 제작한 판타지 호러 영화 ‘원 모어 펌킨’으로 지난 2월 제1회 두바이 국제 AI 영화제에서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했다. 이달 초 열린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선 국제 AI 영화 컨퍼런스에 참가하고, 특별언급상도 받았다.

‘원 모어 펌킨’은 스토리와 메시지를 갖춘 세계 최초의 AI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200년을 생존한 노인 부부를 비롯해, 해골 얼굴의 저승사자, 귀신 들린 호박 등의 캐릭터를 빚어낸 솜씨가 기존의 AI 기획 영상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정교하다. 한국적 이미지와 서양 핼러윈 문화를 조합해 만든 비주얼이 생경하지만 묘한 매력을 뿜어낸다. 권 감독은 생성형 AI를 통해 음성을 포함한 모든 장면을 단 5일 만에 만들었다.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의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AI는 제작비나 촬영 환경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돌파구”라면서 "사람이 작업하던 CG(컴퓨터그래픽)를 AI가 처리하는 날이 곧 올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생성형 AI로 만든 영화 '원 모어 펌킨'. 사진 스튜디오 프리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AI영화를 파고든 이유



Q : 영화감독은 언제부터 꿈꿨나.

A :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고, 무언가 창작하는 걸 즐겼다. 고교 1학년 때 6mm 캠코더로 단편영화 ‘반갑습네다’를 만든 게 시작이었다. 영화학과에 가면 내 뜻대로 뭐든 만들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컸다.”

Q : 현실은 달랐나.

A : “세상이 녹록지 않았다. 마음대로 하기엔 자본이 부족하고 여러 이해관계도 얽혀 영화 만드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AI에 빠진 것 같다. ‘원 모어 펌킨’도 컴퓨터와 무료 AI툴을 이용해 만들어서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다.”

중앙대에서 영화를 전공한 권 감독은 AI로 다양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대학 동문인 구도형 PD, 컴퓨터 전공자 설한울 씨와 함께 지난해 AI 영화 관련 스타트업 회사 ‘스튜디오 프리윌루전’을 설립했다. AI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 영상물을 업로드하면 AI가 영상에 알맞은 발걸음, 물소리 등의 효과음을 만들어주는 기술이다. 인터뷰에 동석한 구 PD는 “AI 콘텐트 제작에 도움 되는 기술을 계속 개발하고 싶다. 영화는 기술 발전과 함께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생성형 AI를 활용해 만든 권한슬 감독의 단편영화 '원 모어 펌킨'은 지난 2월 제1회 두바이 국제 AI 영화제에서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했다. 사진 BIFAN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 AI로 영화를 만들며 어려움은 없었나.

A : “인고의 시간이었다. 카메라 질감, 앵글 사이즈, 조리개 값, 렌즈 밀리수 등을 명령어에 상세히 입력해 장면을 출력해야 했다. 머릿속에서 구현한 대로 나오진 않았다. AI가 제안한 시안이 2%씩 계속 부족하더라. 그 안에서 선택해야 하는 고통이 따랐다. AI에 명령어를 입력하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실제 촬영보다 창작의 고통이 더 컸다.”

Q : 사람처럼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AI 그림이라 좀 기괴하더라.

A : “1년 전 기술이라 감정 표현에 더욱 서툴렀다. 기괴하고 불쾌한 느낌을 살려서 실제 촬영 영상과는 다르게 가져가려고 했다.”
중앙일보

권한슬 감독은 "실제 촬영과 AI를 섞어 효율적이고 풍부한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 영어 내레이션을 만들고, 핼러윈을 연상하는 호박을 소재로 삼은 이유는 뭔가.

A : “영화라는 예술로 인정받으려면 AI에 더 열려있는 해외부터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AI가 또 핼러윈 같은 서양문화 분위기는 기가 막히게 잘 그린다. 대상까진 아니어도 뭐라도 상은 받지 않을까 기대는 했다.”



“AI가 인간 대체? 말도 안 돼”



Q : 대상을 받고 가장 좋았던 점은.

A : “영화 ‘반지의 제왕’ 등의 시각효과로 유명한 리차드 테일러와의 만남이었다. 연락처도 주고받았고, 나중에 뉴질랜드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Q : 거장들도 AI에 관심이 많은가.

A : “AI도 CG의 일종이다.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에 이어 ‘AI 영화’라는 별개의 장르로 접근하고 있다.”
중앙일보

두바이 국제 AI 영화제에 참석한 제작팀과 심사위원 리차드 테일러 웨타(WETA) CEO. 왼쪽부터 구도형 프로듀서, 권한슬 감독, 리차드 테일러 대표, 설한울 책임연구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

A : “말도 안 된다. AI는 수단이자 도구일 뿐이다. AI를 연구하고 잘 이용하는 사람이 우위에 서는 세상이 오긴 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AI 사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의 무료 AI 툴에선 피 한 방울 쓰기가 어렵다. 검열이 강하면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기에 적절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국내 AI 영화의 선두 주자인 만큼 이 산업의 초기 흥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부담과 책임감을 함께 느낀다.”

권 감독의 차기작은 조만간 공개된다. 그는 '원 모어 펌킨'을 만들 때보다 AI 기술이 발전해 조금 더 자연스러운 영상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원 모어 펌킨'을 만들 때 오류가 생겨도 그 자체로 ‘B급 감성 호러’라고 생각해 넣었는데, 지금은 조금 더 진지한 톤으로 AI 영화를 준비 중입니다. 나중엔 실제 촬영과 AI 기술을 섞은 작품도 만들고 싶습니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