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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종말의 바보' 김진민 감독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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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종말의 바보 김진민 감독 인터뷰 /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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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마이네임' '인간수업' 등으로 인간의 본성에 집중했던 김진민 감독이 이번엔 '종말의 바보'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말을 앞둔 이들의 인간미를 담아낸 '종말의 바보'다.

지난달 26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종말의 바보'(각본 정성주·연출 김진민)는 지구와 소행성 충돌까지 D-200, 눈앞에 닥친 종말에 아수라장이 된 세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함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본 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당초 지난해 공개 예정이었던 '종말의 바보'는 주연 배우 유아인이 마약 파문에 휩싸이며 공개가 잠정 연기됐다. 이어 오랜 기다림 끝, 약 1년 여 만에 시청자들에게 선보이게 됐다.

김진민 감독은 "공개돼서 일단 너무 감사하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고, 많은 배우들이 참여했다. 기다렸던 사람들도 많았는데 어쨌든 여러 가지 이유로 미뤄졌었다"며 "언제쯤 공개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넷플릭스에서 고민 끝에 개봉을 하기로 해서 다행이었다. '다행이다!' 이것이 제일 큰 소감"이라고 전했다.

'종말의 바보'는 원작 소설에서 지구 멸망을 몇 년 앞둔 시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다만 정성주 작가와 김진민 감독의 손에서 탄생한 '종말의 바보'는 종말까지 단 200일 만을 남겨두고 있다.

원작과 달라진 설정에 대해 김진민 감독은 "원작은 몇 년 뒤에 지구 전체가 멸망한다는 설정을 갖고, 일본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저희가 만든 '종말의 바보'는 지구 중 일부만 타격이 심한데 어쨌든 여기(한반도)있는 사람들은 다 죽는다. 이미 인구의 3분의 1~2정도는 도망갔다. 다 도망가진 못했다는 것이 세계관"이라며 "그 세계관 자체가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작가님한테 '왜 원작의 큰 설정을 바꾸셨냐'고 여쭤봤더니, 작가님이 '지구가 멸망하면 드라마가 없지 않아요?'라고 하시더라. 맞는 말이었다. 지구가 멸망하면 무슨 드라마가 있겠냐. 모두가 죽는 날만 기다리는 건 책 속 글로는 존재할 수 있지만, 우리는 사람이 움직이는 영상으로 봐야 했다. 거기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작가님의 해석이 재밌었고, 그 해설을 받아들이면서 이 작품을 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설득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원작이 옴니버스 구성인 것과 달리, '종말의 바보'는 모든 사건을 총 12부에 걸쳐 풀어냈다. 김진민 감독은 "3년을 200일로 당기는 건 이야기가 가진 속도감 때문에 선택한 것이 컸다. 똑같은 설정이라도, 3년 전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200일이라는 상황이 되면 소행성 자체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 사람들이 닥친 국면들에 대해 조금 더 절실할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옴니버스식 구성에 대한 장점도 있다. 한 인물들을 하나의 시점으로 따라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열 두 개의 이야기가 완전히 떨어진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많은 등장인물이 있지만, 어느 편에선 아예 안 나오는 상황이 생기고, 그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만 해야 하니까 에피소드 드라마 특성상 한 편 한 편 극성을 세게 지니고 있어야 하지 않냐. 원작도 그런 구조는 아니었다"며 "이야기 자체를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다른 결의 드라마가 나올 수 있어서 작가님이 그 선택은 안 하신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어떤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 된다면 이 마을 사람들을 통해서 옴니버스적인 면들을 보여주고, 시청자들이 이 인물들을 더더욱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서 끝까지 구조를 가지고 갈 수 있냐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다만 모든 촬영을 마치고 편집 과정에서 유아인의 마약 논란이 터지며 이들 역시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이야기 전개상 주인공 네 명 중 한 명인 유아인을 완전히 드러낼 수도, 마냥 안고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김진민 감독은 "1, 2부 편집을 하고 나서 5, 6부를 할 때쯤 '이 부분을 고쳤어야 했네'라는 판단이 되는 시점이 있었다. 근데 앞부분이 닫히면 감독도 열 수 없다. 그런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 일(유아인 마약 혐의)이 터지면서 편집에 대해 조금 손을 보는 것이 시청자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었다. 유아인뿐만 아니라 편집 자체는 여러 번 바뀌었다"고 털어놨다.

이와 함께 김진민 감독은 "(유아인의 등장에 대해) 당연히 불편했을 수 있다. 수정 편집을 할 때 가장 큰 방향성 자체는 시청자분들이 이 드라마를 시청하실 때 거부감, 내지는 불편함을 당연히 맞닥뜨리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모른 척하거나 회피할 의도는 없었다. 다만 최소화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했다"며 "이야기 전개상 이 사람의 그 신을 뺀다고 했을 때 다른 사람 이야기가 침해되면 안 된다. 유아인이 연기를 잘하고, 훌륭한 부분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의 전개상이나 분량에 대해 불편함이 있다면 빼는 것이 방향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종말의 바보'는 공개 직후 유아인의 분량뿐만 아니라 많은 등장인물, 잦은 플래시백 등으로 인해 '혼란스럽다'는 호불호 평가를 받았다.

이에 대해 김진민 감독은 "제일 우려했던 지점이다. 굉장히 많이 노력했는데도 결국 저런 반응이 나왔다는 건 제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혼란스러움을 편집 과정에서 몰랐다는 건 아니다. 이 드라마가 맞은 세계관 자체가 어느 정도 복잡성을 띄고 있어서 그런 부분들을 충분히 설명하기엔 12개의 에피소드가 짧았다. 그런 부분을 초장에 다 설명하고, 할애하는데 시간이 많이 들어서 축약하고 생략한 부분들이 있다. 그게 허들로 작용한 부분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유아인이 연기한 하윤상의 서사에 대한 궁금증도 더해졌다. 미국 생명공학연구소의 연구원인 하윤상은 종말을 앞두고 사랑하는 진세경(안은진)을 만나기 위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의 몸엔 많은 칼자국과 복부 안쪽으로 빨간 불빛이 반짝이는 의문의 장치가 달려있어 의문을 안겼다. 이에 일각에선 유아인의 논란으로 인해 하윤상의 서사가 잘려나갔다는 추측도 이어졌다.

다만 김진민 감독은 "잘려나가진 않았다. 그건 대사로만 디스크립션(묘사)돼 있었다. 제가 화면으로 찍을까 말까 고민도 했었다. 배를 타고 오는 장면도 생각했었다. 근데 '유아인'이라는 배우 자체가 가진 크기나 이런 걸로 봤을 때 세밀하게 다루면 이야기 자체가 길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너무 많은 포지션을 배당할 수 없었다"며 "그 이야기는 안은진이 치고 나가는 대목하고 맞붙어 있어서 이야기를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았다. 빨간 불에 대해 저희가 작품상에 설정한 것은 위치추적기다. 미국에서 저렇게 중요한 인물이면 그렇게 돌려보냈을까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진민 감독은 "하윤상이 최종적으로 선택을 하지 않음으로써 같이 탈락자가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것이 이 사람의 선택"이라며 "제가 후반부에 갈수록 계속 신경을 썼던 부분은 그 어느 누구도 이 드라마에서 영웅이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런 걸 할수록 '유아인'이라는 배우가 가진 포지션도 큰데, 영웅이 된다고 하면 결국 영웅짓을 해야 하는데 이 드라마 전개상 영웅은 아니었다. 그 부분의 밸런스를 무너뜨리고 싶진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작품이 끝까지 가면서 떡밥 회수를 안 한 게 아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각 캐릭터들의 선택이 조금 더 잘 보이길 바랐다. 그렇기 때문에 더 자세한 언급은 피했다. 근데 그거 때문에 많은 불편함이 생긴 것 같다. 계산을 많이 했던 부분이다. 놓친 건 아니"라고 해명했다.

플래시백에 대해서도 김 감독은 "시간 순으로도 편집을 해봤다. 제일 먼 시간부터, 쭉 가까운 시간으로 가는 것도 편집을 해봤는데 시간순으로 오는 이야기들을 그려놓고 보니까 사람들이 이걸 왜 보고 있는지 의문이 들더라. 이 이야기는 지금 이 마을 사람들이 현재를 묘사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하는데 이거에 방점을 주지 않으면 해설은 쉬울지 몰라도 갑자기 훅 느려지면서 혼란스러울 것 같았다"며 "최대한 플래시백을 최소화하고자 했는데 댓글이나 반응들을 보니까 플랙시백 때문에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많아서 '내가 미처 놓쳤구나'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종말의 바보'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종말을 앞둔 아포칼립스적 상황에서도, 환경 보다 그 안에 담긴 인물들의 서사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김진민 감독은 "아포칼립스와 디스토피아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 생각한다. 디스토피아는 생존 경쟁을 한다거나, 구원을 하는 그런 드라마적인 서사를 담아낸 일종의 영웅담이다. 그 세계를 향해 가는 굉장한 속도감에 있어서 베리에이션(변화)을 줄 수 있는데, 애초에 이 드라마는 기획 의도 자체가 그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 생존, 투쟁을 하는 드라마였다면 작가님이 이렇게 쓰시지도 않았을 것 같다. 훨씬 더 비극적이나 영웅담으로 갔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김진민 감독은 "이 드라마는 그것 말고, 그 시간을 고스란히 맞이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떤 삶을 선택해야 했을지에 집중했다. 디스토피아로 가게 된다면 기본적으로 인간이 인간으로 갈 수 있는 모든 건 다 포기하고, 오로지 동물처럼 사는 것에만 생존 본능이 치우쳐야 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은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나는 뭐지'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전혀 다른 드라마라 생각했다. 정건주 작가 다운 선택이라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수많은 등장인물 속 김진민 감독이 가장 사랑한 캐릭터는 누구일까. 이에 대한 질문에 김 감독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진세경을 꼽았다.

김진민 감독은 "어쩔 수 없다. 극 중에서도 타인을 위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다. 의로운 선택이라기 보단,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이물이다. 그래서 애착이 크다. 세경이를 영웅으로서 좋아한다기보단, 저런 사람이 내 옆에 있으니까 나도 저런 사람한테 용기를 얻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애착이 많이 생겼다"며 "동시에 세경이는 두려워하기도 한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까부터 시작해서 같이 도망가자는 선택에도 가지 않는다. 그런 부분들이 저를 딸려가게 만들더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이와 함께 김진민 감독은 진세경을 연기한 배우 안은진에 대해 "자신을 드러냄에 있어서 스스럼없는 배우다. 굉장히 용기 있다. 베이스가 굉장히 탄탄해서 시청자분들과 같이 호흡을 하는 배우라는 느낌이 든다"며 "'연인' 시청률과 상관없이 안은진은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실력은 어디 안 간다. 요즘 연기 잘하는 배우들은 많지만 안은진이 보여준 연기력은 이미 증명됐다. 제가 캐스팅하지 않았어도, 누군가는 캐스팅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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