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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언제쯤 다시 우승할까? 10전0승 추락한 ‘女 골프 왕국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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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위 이내도 고진영 한 명뿐… 현재로는 김효주와 두 명만 파리 올림픽 출전 가능

조선일보

고진영이 지난 2022년 3월 6일 싱가포르 센토사 골프클럽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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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수는 도대체 언제쯤 다시 우승하는 거죠?”

지난주 올 시즌 10번째 미국 여자 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였던 JM 이글 LA 챔피언십에서 해나 그린(28·호주)이 우승하자 국내 골프 팬들은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다섯 대회 연속 우승 중인 세계 랭킹 1위 넬리 코르다(26·미국)가 휴식을 이유로 나오지 않자 ‘이런 때라도 한국 선수가 우승하면 좋겠다’고 하던 기대가 물거품이 된 것이다. 한 팬은 “코로나로 위축됐던 한국 선수들 해외 진출도 조금씩 살아나고 해서 기대했는데 예전처럼 승부를 뒤집는 저력이 사라진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30일 발표된 여자 골프 세계 랭킹에서 한국은 5위 고진영(29) 한 명만 10위 이내에 이름을 올렸다. 그 뒤를 12위 김효주(29), 17위 양희영(35), 20위 신지애(36)가 뒤따르고 있다. 현재 세계 랭킹으로는 올여름 파리 올림픽에 고진영과 김효주 두 명만 참가할 수 있다. 파리 올림픽 여자 골프 경기는 6월 24일 기준으로 각국 두 명씩, 세계 15위 이내는 국가당 상위 4명까지 출전 자격을 얻는다. 한국은 세계 랭킹 10위 이내에 4~5명씩 포진하던 2016 리우 올림픽과 2020 도쿄 올림픽에 4명씩 참가했다.

1998년 US오픈에서 박세리(47)의 ‘맨발 투혼’ 우승 이후 박인비(36)·신지애(36) 등 ‘세리키즈’가 가세하며 20년 가까이 LPGA 투어를 지배하던 한국 여자 골프 왕조의 위풍당당했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한국 여자 골프는 2015·2017·2019년 세 차례에 걸쳐 대회 수의 절반 가까운 15승을 휩쓸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2020·2021년 7승, 2022년 4승, 2023년 5승에 그치더니 올해는 언제 첫 승리를 올릴지 짐작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박인비는 “세리 키즈가 LPGA 투어를 장악하기 10년 전부터 한국 선수들은 미국 도전이라는 꿈을 안고 LPGA 2부 투어 도전, Q스쿨 참가, 미국 골프 유학을 떠났다”며 “그 결실로 한국 여자 골프는 세계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선수들이 국내 무대에 안주하기 시작한 것은 2020년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기 훨씬 전이다. 한국 여자 프로골프(KLPGA) 투어가 인기를 끌면서 힘든 해외 무대 도전을 피하는 현상이 생겼다. 게다가 KLPGA 투어는 인기 스타 선수들을 국내 대회에서 뛰게 하려고 외국 대회 참가를 이유로 불참하는 선수들에게도 벌금을 매기는 등 ‘우물 안 개구리’ 정책을 폈다.

신지애는 “박세리 선배와 세리키즈가 US 여자 오픈에서 거의 매년 우승하던 시절 한국 선수는 출전 선수 156명 중 44명 전후였다. 지금은 20명 안팎이다”라며 “결국 더 많은 선수가 해외 도전하는 날 예전의 위력이 살아날 것”이라고 했다.

LPGA 투어를 지배하던 시절 한국 선수들은 하나의 팀처럼 움직였다. 가장 먼저 연습장에 도착해서 가장 늦게 연습장을 떠났다. 어린 시절부터 ‘네가 우승하면 나도 우승할 수 있다’는 선의의 경쟁의식이 강했다. 박세리가 LPGA 투어에서 성공하자 김미현(47)이 ‘나도 할 수 있다’며 뛰어들었다. 박인비와 신지애, 최나연, 김인경 등 세리 키즈는 친구의 우승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 한 국내 지도자는 “세계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많은 후원을 받은 국가 대표 출신들까지 코로나 등 여러 이유로 국내 무대에 안주하면서 예전처럼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선수들의 선순환 경쟁이 옅어졌다”는 지적을 했다. 한국 선수들이 대부분 25세 전후 부상이 겹치면서 번아웃(탈진) 증후군에 시달리며 급격히 경기력이 떨어지는 것도 선수층이 엷어진 이유다.

한국 선수들의 해외 도전은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해 유해란(23)이 2019년 이정은(28) 이후 명맥이 끊어졌던 한국 선수의 LPGA 투어 신인상을 탈환했고, 임진희(26)·이소미(25)·성유진(24)이 L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을 거쳐 올해 LPGA 투어에 데뷔했다. 최근 KLPGA 투어 흥행을 주도하는 방신실(20)과 황유민(21), 윤이나(21)가 해외 무대 도전에 적극적인 것도 고무적이다.

현재 국가 대표 선수들인 김민솔(18)과 김시현(18), 양효진(17), 이효송(16), 오수민(16), 박서진(16) 등은 지난해 세계여자골프 팀선수권, 올해 퀸 시리키트 컵 등 굵직한 세계 대회를 휩쓸며 ‘신(新) 황금 세대’라 불린다. 한국 여자 골프는 현재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민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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