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 보트를 타고 영국해협을 건너는 이주민들.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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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의회가 영국에서 6500㎞ 떨어진 아프리카 국가 르완다로 난민 신청자를 밀어내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영국 내에서도 이 법안이 인권침해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영국 상원과 하원은 22일 ‘르완다의 안전에 대한 법안’(르완다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 등이 보도했다. 의회를 통과한 이 법안은 국왕 승인 절차를 거쳐 정식 법률이 된다. 이른바 ‘르완다 법안’은 영국에 불법적으로 들어온 이는 모두 르완다에서 망명 신청 절차를 밟게 하자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영국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르완다가 망명 신청자가 머물기 안전하지 않다고 판결하며 이 정책에 제동을 걸었고, 집권 보수당 정부가 “모든 의사 결정자가 르완다를 안전한 나라로 여겨야 한다”는 내용을 못박는 법을 제정해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보수당 정부의 이런 꼼수성 입법 추진에 상·하원은 법안을 수정하며 왔다 갔다 하는 ‘핑퐁 게임’을 벌여왔다.
2022년 4월 보리스 존슨 당시 총리 때부터 시작된 이 정책을 리시 수낵 총리는 자신의 간판 정책 중 하나로 추진해왔다. 영국 정부는 이미 르완다에 2억4천만파운드(약 4천억원)를 지급했다. 이번에 통과된 법안에는 “르완다로 이송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실제적이고 임박하며 예측 가능한 위험이 있을 경우”에 난민 신청자는 영국 정부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이 추가됐다.
수낵 총리는 르완다 법안 의회 통과 뒤 이 법이 “기념비적”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22일 기자회견에서 수낵 총리는 “10~12주 이내에 (르완다로 난민 신청자를 보내는) 첫번째 항공편이 출발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영국 정부는 이 정책을 추진하는 명분으로 아프리카 등에서 많은 이들이 작은 배를 타고 영국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오려다가 목숨을 잃는 사태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르완다법’이 시행되면 르완다에서 난민 신청 심사를 받게 될 이들이 5만2천명가량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르완다 법안이 영국해협의 난민 보트를 멈추게 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비비시 방송은 이날도 영국과 마주 본 프랑스 칼레 해안에서 난민 보트들이 보였다고 전했다.
또한, 르완다 법안 통과로 국제법 위반과 인권침해 논란이 해소된 것이 아니다. 유럽 최고 인권기구인 유럽 평의회가 23일 이 법안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유럽 평의회의 마이클 오플래허티 인권위원장은 이날 성명을 내어 “영국 정부는 ‘르완다 정책(법안)’에 따라 사람들을 강제로 이송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대부분 사례에서 망명 신청자에 대한 사전 평가 없이 사람들을 르완다로 강제 이송하는 정책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짚었다.
영국 정부를 상대로 법적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도 남아 있다. 영국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입법을 통해 우회했지만 이 입법 또한 위법이라고 주장하는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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