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나 함께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해병대 채상병 사건 핵심 피의자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를 받던 중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출국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해 18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조기 귀국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4·10 총선을 앞두고 이번 사건이 악재로 작용하자 위기감이 발동한 결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 대사 임명 철회 촉구와 ‘채상병 특검’ 수용 없는 귀국 요구는 선거용 목소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이미 같은 혐의를 받는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과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을 공천했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 당시 검찰 수사나 특검 수용이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이나 김 여사의 사과 문제로 사건을 축소해 국면을 돌파하려는 것처럼 이번에도 이 대사 귀국 여부로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 호위무사로 불리는 이용 국민의힘 의원(경기 하남갑 후보)은 이날 SBS 라디오에서 “이 대사도 충분히 수사를 받거나 아니면 빨리 귀국해서 본인의 입장을 표명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자 ‘회칼 테러’ 발언으로 사퇴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황 수석에 대해서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께서도 본인의 거취를 스스로 결정해야 된다고 얘기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황 수석도 좀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서울 동작을 후보)은 이날 MBC라디오에서 이 대사에 대해 “본인이 들어와서 조사받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게 맞다”고 말했다. 황 수석에 대해서는 “본인이 알아서 정리할 거는 정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희숙 전 의원(서울 중·성동갑 후보)은 KBS 라디오에서 한 위원장이 전날 이 대사에게 자진 귀국을 촉구한 일을 거론하며 “현장에서 뛰는 선수 입장에서는 대단히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이 대사에 대해 “즉각적인 소환 요청을 해야 한다”고 하고, 황 수석에 대해서는 “대통령실이 어떤 결정을 내리기 이전에 본인 스스로 거취를 분명하게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한 위원장은 전날 이 전 장관에 대해 “공수처는 즉각 소환 통보를 해야 하고, 이 대사는 즉각 귀국해야 한다”고 하고, 황 수석에 대해서는 “본인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이날 대통령실을 압박하는 여론전을 했지만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모습은 아니었다. 한 위원장은 취임 이후 매일 진행해오던 출근길문답(도어스테핑)을 이날 돌연 중단했다. 그는 이날 출근길에 “선대위 (회의) 하기 전에 말씀드리는 건 주객이 전도될 거 같아서”라며 “앞으로 출근길 백브리핑은 안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초 불거졌던 이른바 ‘윤·한 갈등’이 총선을 앞두고 재점화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란 해석이 나왔다.
여당의 태도 변화는 급작스럽다. 한 위원장은 지난 11일 “수사가 작년 9월쯤부터 진행됐던 것이고, (이 전 장관이) 수사에 관해 충분히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호주라는 나라가 국방 관련 외교 현안이 많은 나라인 것으로 안다”며 이 대사 임명과 출국을 사실상 두둔했다. 지난 14일에는 “외교적 문제도 있다. 이미 아그레망(외교사절에 대한 사전 동의)을 받고 나가 있는 것 아닌가. 그러면 정치적 이슈로 그런 이야기가 나올 문제인가”라고 말했다.
결국 여당이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대통령실을 향해 각을 세운 까닭은 총선 패배 위기감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수도권 민심이 급격히 악화됐다는 우려가 지난 주말 사이 당 내부에서 퍼졌다. 이날 발표된 3월2주차 리얼미터 여론조사(에너지경제신문 의뢰)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보다 4.0%P 내린 37.9%를 기록했다. 특히 서울(7.6%P↓), 인천·경기(5.4%P↓) 등 수도권에서 하락 폭이 가장 컸다. 리얼미터 측은 “이 대사 도피성 인사 논란 등이 변수로 등장해 40%대 기조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이 대사 귀국 주장은 사건의 본질과 거리가 있는 여론호도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윤 대통령이 피의자를 대사로 임명한 후 공수처의 출국금지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출국시켰다는 점이다. 이 대사 임명 철회와 특검 수용 요구 등을 거론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이 전 장관과 함께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받는 임종득 전 안보실 2차장과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에 대해 국민의힘은 공천장을 줬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이날 “이 대사가 갑자기 귀국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냐. 이 대사 문제는 윤석열 정권이 채상병의 억울한 죽음을 은폐하려고 한 일”이라며 “선거용으로 눈 가리고 아웅하면서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게 문제를 제기하려면 윤 대통령의 사과와 특검 수용을 종용하라”고 촉구했다.
앞선 리얼미터 조사는 지난 14~15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고 응답률은 4.2%였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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