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선관위, 발달장애인 대상 4·10 총선 대비 모의투표 개최
"투표용지 칸 넓히고 사진 넣었으면…공보물도 이해하기 쉽게"
모의투표 참여하는 발달장애인 |
(서울=연합뉴스) 계승현 기자 = "어떻게 (투표용지를) 접는지도 모르겠고, 글씨도 너무 작고, 그림이 없어서 어려워요. 그래도 장애인도 공평하게 같이 살았으면 좋겠기에 투표하러 갈 거예요."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 5층 대강당은 새로운 손님들로 북적였다. 서울시선관위와 발달장애인 지원단체 '피플퍼스트'가 손잡고 내달 총선을 앞두고 발달장애인 대상 모의투표 자리를 마련해 서울 각지에서 100여명이 모인 것이다.
선거연수원 초빙교수의 투표 안내 강연이 시작되자 떠들썩했던 장내는 일시에 조용해졌고, 모두 강연자와 강연 자료를 보기 위해 앞쪽을 주시했다.
강연자가 "나의 소중한 한 표!"라고 외치자 객석에서는 환호와 함께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가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우리 언제 투표해야 하죠?", "우리 대신 일할 사람을 뽑는 일을 뭐라고 하죠?" 등의 질문을 던질 때마다 객석 곳곳에서 손을 들었다.
강연자가 20여분 간 투표와 선거에 관한 설명을 한 뒤 발달장애인에게 중요한 직접선거, 비밀선거의 원칙까지 강조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모의투표가 진행됐다.
모의투표 사전강연 듣는 발달장애인들 |
발달장애인들은 활동보조사나 보호자들의 도움을 받아 신분증 및 지문을 확인받고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대로 들어갔다. 혼자 온 사람은 투표소에서 즉석에서 자원봉사자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휠체어를 탄 40대 남성 발달장애인 A씨는 기표대에 들어선 뒤 투표용지를 갖고 나올 때까지 5분 넘게 걸렸다. 원칙대로라면 본인이 직접 투표용지를 들고나와 투표함에 넣어야 하지만, 종이를 집는 것도 도움을 받아야 하는 A씨에게 직접선거, 비밀선거의 원칙은 적용되기 어려웠다. 비좁은 투표함 구멍에 용지를 집어넣는 것도 손이 떨리는 중증 발달장애인에게는 고난이도의 움직임이 필요한 일이었다.
A씨의 활동보조사인 정태원(46)씨는 "발달장애인 분들에게는 지적, 신체적 어려움이 복합적으로 있어서 오늘과 같은 모의투표 체험이 여러 차례 필요하다"고 말했다.
모의투표에 참여한 발달장애인들도 "투표용지 글씨가 너무 작아 누가 누군지 알 수 없고, 선거 홍보물 내용이 복잡해 이해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기표소 |
도봉구에서 온 김나현(25)씨는 "(투표용지) 글씨가 너무 작고, 칸도 너무 작아요. 투표함 구멍도 너무 작아서 잘 넣지 못하겠어요"라며 멋쩍은 듯 웃었다.
김씨는 "투표용지가 두 장(지역구·비례대표)이나 돼서 그거 찍는 것도 어려웠고, 길게 접으라고 알려준 대로 하는 것도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투표용지를 길게 접는 것은 종이가 겹치면서 인주가 다른 후보 칸에 묻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발달장애인들과 활동 보조사들은 투표용지에 후보자들의 사진을 첨부해 넣으면 투표하기가 더 쉬워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투표를 잘 해야 나라도, 인생도 잘 풀린다'는 생각으로 송파구에서 먼 걸음을 했다는 문석영(33)씨는 "투표용지에 사진도 나왔으면 좋겠고 간단한 각오나 공약도 들어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4년차 사회복지사인 정모(55)씨는 "최근 서울피플퍼스트 부위원장 선거를 했는데, 이 투표에서는 용지에 후보 얼굴 사진을 넣고 기표란을 크게 만들어 발달장애인들이 참여하기 수월했다"며 "선거 교육도 중요하지만 당장 다음 달 선거에도 많은 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2년 대선에 이어 올해 총선에도 꼭 투표할 생각이라는 조석준(25)씨는 "손이 떨려서 힘들고, 종이를 어떻게 접어야 할지도 모르고, 모르는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도 긴장된다"면서도 "우리 동네에 믿음직한 사람을 뽑기 위해서, 듬직한 사람을 뽑기 위해서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발표한 최신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발달장애인은 26만3천311명이다. 피플퍼스트 서울센터는 이 가운데 약 절반가량인 13만명 정도가 18세 이상인 유권자로 보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18세 이상 인구(4천438만여명)의 0.3% 수준이다.
key@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