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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중대재해법 시행 후

중대재해처벌법, 무조건 ‘처벌’은 아니다…"위험성평가부터 반드시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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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의 한 공사현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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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되면서 전국 8만7000 영세 사업주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다만 중대재해가 발생했다고 무조건 사업주가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닌 만큼 제대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



5인 이상이면 업종 불문 적용…알바생도 ‘상시 근로자’



중대재해는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경우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한 경우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 등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대부분의 중대재해 사건은 사망 사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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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은 어떤 내용 담고 있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고용노동부]



원래 중대재해법은 처음 시행된 2022년 1월 27일부터 지난달 26일까진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공사현장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에만 적용됐지만, 지난달 27일부터 유예 기간이 끝나면서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공사현장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까지 확대 적용됐다. 식당·카페 등 개인 사업주라도 상시 근로자 수가 5명을 넘는다면 업종과 무관하게 법 적용을 받는다.

이때 적용 단위는 개별 사업장이 아닌 하나의 기업 전체다. 지리적으로 인접했는지 여부는 상관없다. 예를 들어 하나의 회사에 본사 포함 4개의 직영 매장이 있고 각 직영매장에 상시 근로자 4명씩 배치할 경우, 상시 근로자를 16명(4개 매장×4명)으로 보고 중대재해법을 적용받는다.

‘상시 근로자’엔 정규직 근로자는 물론이고 단기 아르바이트생까지 포함된다.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 수 산정방식을 따르기 때문에 기간제·단시간 등 고용 형태와 상관없이 하나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모든 근로자를 합산해야 한다. 배달라이더도 식당과 근로계약을 체결했다면 상시 근로자에 포함된다.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여부가 핵심…예견 가능성도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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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보건 관리체계 핵심방안. 고용노동부 제공


다만 사업장에 중대재해가 발생했다고 무조건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등의 의무를 이행했다면 중대재해가 발생하더라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또한 고의 혹은 예견 가능성이 있었거나 인과관계 등이 명확한 경우에만 처벌을 받는다.

익명을 요구한 중대재해 전문 A 변호사는 “아무도 작업 지시를 안 했는데 근로자 혼자 가다가 넘어져 사망한 사건의 경우 지방고용노동청 내사 종결로 마무리됐다. 몸이 차량 밖에 있는 채로 시동을 걸었는데, 차가 움직여 벽에 끼여 사망한 사건도 마찬가지로 내사 종결됐다”며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했다고 반드시 중대재해법에 따른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는 자신의 사업장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라면 다음과 같은 사항부터 당장 실시하도록 권고했다.

①명확하고 구체적인 안전보건 경영방침 및 목표를 수립해 회사 내의 모든 종사자들이 알 수 있도록 공표·게시

②우리 사업장에 법에 따라 필요한 안전보건 전문인력 수를 확인해 안전보건관리담당자와 관리감독자를 지정하고, 재해 예방에 필요한 적정 예산을 편성

③사업장 순회점검, 안전보건 제안제도, 아차사고 신고 등 근로자의 의견 청취 절차 마련

④비상대응체계 수립·훈련, 재발방지대책 마련

⑤중대재해법상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개선하는 절차 마련하고, 이에 따라 확인·개선이 이뤄졌는지 정기적으로 점검·조치하는 체계 구축



1심 유죄 14건 들여다보니…“기존 산안법상 안전조치도 불이행”



현재까지 1심 판결이 난 중대재해법 사건은 14건으로, 모두 유죄 판결이 나왔다. 이 가운데 1건(한국제강)은 대표가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고, 나머지 13건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기존 산안법에 따른 최소한의 안전보건 관리체계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4조상 ▶제3호(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업무절차 마련 및 점검) ▶제5호(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의 업무수행 평가 기준 마련) ▶제8호(비상대응 매뉴얼 마련 및 점검) ▶제9호(협력업체의 재해 예방 수준 평가 기준 마련 및 평가) 등이 지켜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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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의 한 공사현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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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대표가 법정 구속된 한국제강 사건의 경우 다른 요인들보다도 ‘산업재해 이력’이 강하게 작용한 측면이 있다. 한국제강에선 중대재해법 시행 직전인 2021년 근로자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산안법 의무조치 위반 사실이 여러 차례 적발됐지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종사자의 안전권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 것”이라며 “안전보건 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취할 필요성이 다른 사업장에 비해 긴절(緊切)했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지난해 12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A 변호사는 “중대재해법 적용 이전에 산안법상 안전조치 의무를 지켰어도 책임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기소되고 유죄 판결을 받는 중대재해 사건 대부분 제3호와 제5호를 지키지 않은 경우들”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아직 판례가 많이 쌓이지 않았고, 대부분 혐의를 인정하고 양형만 놓고 다퉜기 때문에 다른 선고를 더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 “근로자 참여 ‘위험성 평가’부터 반드시 실시”



물론 상시 근로자 10명 내외 수준의 영세 사업장은 산안법상 안전조치 의무도 준수하기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고용부는 전국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산업안전 대진단을 실시하고, 진단 결과에 따라 맞춤형 컨설팅을 실시한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정부 지원과 컨설팅을 적극적으로 요청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국 30곳의 ‘산업안전 대진단 상담·지원센터’를 방문하거나 대표번호(1544-1133)로 연락하면 안전보건관리체계·컨설팅·교육·기술지도 등 정부 지원책을 안내받을 수 있다. 자가진단은 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www.kosha.or.kr/survey/index.do)에서 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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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성평가 매뉴얼. 고용노동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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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사전 예방률을 높일 수 있는 ‘위험성평가’부터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위험성평가는 사업주와 근로자가 함께 사업장의 위험 요인을 파악하고, 개선대책을 적극 마련해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제도다. 업무 중 근로자에게 노출된 것이 확인됐거나 노출될 것이 합리적으로 예견되는 모든 유해·위험요인이 평가 대상이다. 위험성평가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형사적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4조 제3호는 위험성평가를 직접 실시한 경우엔 유해·위험요인의 확인 및 개선에 대한 점검을 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태환 법무법인 화우 노동그룹장(변호사)은 “산안법과 중대재해법 모두 복잡한 만큼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실적이지만, 어렵다면 위험성평가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사업주와 근로자가 함께 현실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가능성을 다 찾아내고 제거하자는 활동이기 때문에 철저히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도 “위험성평가는 큰 비용이 들지 않고, 중대재해를 실질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50인 이상 사업장과 달리, 50인 미만 사업장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산안법상 안전관리자 등 안전전문인력 선임 의무는 없다. 50인 미만인데도 둬야 하는 경우는 20~49인 사업장의 제조업, 임업, 하수·환경·폐기업 등 5개 업종에 한정된다. 그럼에도 고용부는 “법적으로 안전보건관리담당자 선임 의무가 없더라도, 안전을 관리·담당하는 인력을 자체적으로 지정하고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별도의 전문 인력을 두기 어려운 영세 사업장을 위해 고용부는 다른 사업장과 공동으로 안전보건전문가를 활용할 수 있는 ‘공동안전관리자 지원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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