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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칸 영화제

[그 영화 어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내겐 너무 별로였던 영화 ‘추락의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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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41번째 레터는 영화 ‘추락의 해부’(31일 개봉)입니다. 지난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죠. 오매불망 기다렸습니다, 이 영화 개봉을. ‘그 영화 어때’ 독자는 아실 거에요. 제가 작년에 레터에서 열심히 민 영화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입니다. ‘추락의 해부’가 칸에서 ‘괴물’을 누르고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니, 우와, 얼마나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영화일까,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선 이 말을 하고 싶어졌네요. “거 심사위원님들, 너무 관성적으로 투표하시는 거 아니요?” 영화제 트로피가 쏟아지는 이 영화,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소수 의견도 독자분들이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시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레터로 보내드립니다. (이후 불가피하게 영화 결말이 언급됩니다. 다만, 이 영화는 결말을 통해 소통하려는 영화가 아니라서 알고 보셔도 감상에 지장이 없지 않을까 합니다. 오히려 배신감(?)이 덜할 수도. 그래도 싫으신 분은 백스페이스 버튼을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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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추락의 해부' 포스터. 포스터는 잘 만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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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영화 기본 줄거리 보시겠습니다. 배급사 요약본은 ‘남편의 추락사에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유명 작가를 중심으로 밝혀질 사건의 전말에 관객을 초대하는 영화’입니다. 일부 보도에서 ‘시각장애인 아들과 안내견이 유일한 목격자’라고 나오는데, 아닙니다. 남편이 추락할 때 아들과 안내견은 멀리 산책 나가 있었거든요. 시신을 최초 발견한 게 아들이긴 합니다. 시각장애인 아들이 목격자라는 설정이었으면 훨씬 흥미로웠을텐데요. 하지만 감독은 그런 시도는 하지 않습니다. 왜냐. 애초에 이 영화에선 아내가 남편을 죽였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알려주지도 않습니다. 네, 이른바 ‘열린 결말’입니다. 열린 결말이라서 별로였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풍부한 해석의 여지를 담은 작품은 예술의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니까요. 재작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인 ‘슬픔의 삼각형’도 열린 결말이었죠. 관객 각자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선물처럼 주어지는 많은 열린 결말의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는게 제 주장이긴 합니다만.

‘추락’은 양두구육 영화입니다. 범죄 스릴러 형식을 취했지만, 하고 싶은 말은 범인이 누구고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고, 이게 아니에요. 황금종려상이라고 해서 짐작하긴 했어요. 장르물은 외피일뿐이겠군. 그런데 이 영화는 형식적으로 장르영화로서 게으르고 안일하며 하고 싶은 얘기는 구태의연합니다. 새로운 성찰과 관점을 기대했다간 맥이 빠지실 거에요. ‘우리네 인생사, 전말을 그 누가 알리오, 원래 진실이란 믿음의 영역이며, 각자 선택하는 것이라오.’ 이 얘깁니다. 거짓과 진실 혹은 실제와 인식의 경계, 주인공이 소설가이기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 대한 언급은 영화에서 반복 등장합니다. 어디서 들어보신 것 같지 않습니까. 실체적 진실의 한계와 회의라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1950)의 원작을 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100년도 더 전에 한 얘깁니다. 아쿠타가와는 진실에 대해 인간이 지닌 인식론적 기준을 초월해 존재하는 미지의 영역(terra incognita) 있다는 데까지 가지를 뻗었죠. 아직도 100년 전 일본 작가의 두뇌 근처에서 맴맴 돌고 있다니. 명작이나 걸작이 되려면 거기서 한끗은 더 나아갔어야 하지 않을까요.

‘삶이란 사실이 아니라 인식의 영역에 있다’라는 얘기는 정치 컨설턴트 분도 하시던걸요. 제가 자주 듣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 박성민 MIN 대표가 그러시더군요. “정치는 사실이 아니라 인식의 게임이다.” 어디 정치만 그렇겠어요. 현실이 그렇죠. 작품성을 자랑하는 영화가 되려면 정치 컨설턴트의 일침보다는 예술적으로 승화된 얘기를 담아야 하는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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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의 해부'의 법정 장면. 설마 실제 프랑스 법정이 그렇게 무논리 무증거로 오직 짐작과 추정만으로 몰아가진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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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물 외피 안에 심어놓은 본원적 주제가 강하게 던져지려면 형식적으로 설정한 법정물의 긴장도가 순수 법정물보다도 더 팽팽했어야 해요. 그래야 긴장이 이완될 때 발생하는 에너지의 낙차가 영화적 진술을 관객의 머리 위로 수직낙하시키죠. 이 영화가 게으르게 이용한 법정 설정은 때로 실소를 자아낼 정도입니다. 제가 프랑스 사법 체계를 모르긴 하지만, 유무죄를 따지는 법정에서 논리가 이렇게까지 약에 쓰려해도 없을 수가 있다니. 짐작과 추정으로만 몰아갑니다. 설마 프랑스에서 실제로 그렇게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지는 않겠죠. 동네 반상회에서 연예인 사생활 추측담이 오가도 이 영화보단 근거가 더 나올 것 같네요. 마지막 아들의 최후 증언을 결정적인 것처럼 넣어둔 것도 너무나 어설펐어요. 이 정도 얼개로 법정 영화? 감독님, 법정물을 너무 쉽게 보신 게 아닌가요.

관계의 측면도 다뤄요. 제목에서 Fall, 즉 추락은 남편의 추락이기도 하지만, 관계의 추락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 역시 짐작하시는 대롭니다. ‘부부 간의 일, 누가 알리오.’ 주인공 부부가 다투는 장면은 특히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더군요. 부부가 서로를 극단적으로 몰아가며 죽도록 싸우는 대화, 이 역시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으십니까. 전 먼저 떠오른 게 스칼렛 조핸슨과 아담 드라이버가 부부로 나온 ‘결혼이야기’(2019)였습니다. 영화에서 두 배우의 언쟁 장면 정말 대단했죠. ‘추락’보다 낫습니다. 넷플릭스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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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의 해부' 주인공인 배우 산드라 휠러. 연기를 잘하긴 했지만, 그 정도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는 한국에도 무척 많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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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 주연인 배우 산드라 휠러의 연기력에 대한 극찬도 있습니다. 연기를 잘하긴 했어요. 그런데 그 정도 연기할 배우는 우리나라 배우로만 꼽아도 대형버스 한 대가 부족할 거 같은데요. 가까운 예를 들어볼까요. 작년에 나온 아주 정직한 장르물이 있습니다. 영화 ‘폭로’입니다. 남편이 코와 입이 본드로 막혀서 살해당하자 아내가 용의자로 몰리는 내용입니다. 잰체하지 않고, 인생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해줄 것처럼 하지 않고, 정직하게 범인이 누군지 알려줍니다. 음, 인과관계가 약하다고는 생각됐으나 그래도 ‘폭로’는 자신의 장르에 충실하려 무지하게 애썼습니다. 이 영화에 판사로 나온 배우 공상아를 아시는지요. 한예종 연기과 나온 분인데, 영화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오, 이 정도의 몰입이라니. 좀 더 알려진 배우를 들자면 작년에 제가 레터로도 보내드린 영화 ‘비밀’길해연 배우가 떠오르네요. 휠러보다는 두분이 훨씬 나은 것 같은데요. 다만 ‘폭로’와 ‘비밀’ 같은 장르물은 칸 영화제 심사위원들이 좋아하는 영화가 아닐뿐. (폭로는 넷플릭스와 왓챠에 있고, 비밀은 왓챠에 있습니다.)

‘추락'이 캐릭터 연구에 얼마나 철저했는지 의구심을 갖게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관객이 배역에 호감을 가지느냐와 그 배역의 설득력, 나아가 작품성은 다른 문제이긴 합니다. 그런데 ‘추락’ 여주인공은 호감은 둘째치고 캐릭터에 대한 치밀한 연구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무죄 판결을 받고 난 뒤 여주인공이 성대한 저녁을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깔깔깔 웃고 떠들면서. 그녀가 무죄를 받았다는 것은, 남편이 자살했다는 그녀 쪽 주장, 즉, 남편은 열패감에 시달리는 실패자, 무능력자라 그 사실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이죠. 남편이 자신과의 결혼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렸다는 사실 앞에서 아내가 그렇게 깔깔깔 웃고 있다라. 긴장이 풀리면서 밀려오는 혼란으로도 해석될 수 있지만 남편의 죽음에 대해 일관되게 슬픔과 거리가 먼 그녀의 냉정함과 무감각함이 비인간성의 영역으로까지 넘어가면서 설득력을 잃습니다. 게다가 이런 불평도 해요. “승소했는데 왜 아무런 보상이 없느냐”고요. 음, 그런 주장은 47건 혐의 모두에 대해 4년11개월 만에 무죄 판결 받은 대한민국 전 대법원장 정도가 하실 말씀이 아닐까요.

이러다 밤새겠네요. 제가 이 영화가 과대평가됐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기자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욱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에 대한 의견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생각해주세요. 오늘도 ‘그 영화 어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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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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