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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동물 용띠 해… 美·中 동물원 ‘눈물겨운 마케팅’

조선일보 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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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동물 용띠 해… 美·中 동물원 ‘눈물겨운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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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주토피아]
중국 광저우에 있는 동물원 치메롱 사파리 공원은 지난 12일 현지 매체들을 대상으로 ‘코모도왕도마뱀 미디어 데이’ 행사를 가졌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어린 도마뱀들이 날고기 조각을 날름 삼키는 모습 등을 취재진에 공개했다. 이 동물원은 코모도왕도마뱀 전시관을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해 용띠 해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내년 2월 10일 춘제(중국의 설)를 전후해 일반 관객들에게 공개하겠다는 계획도 이날 발표했다. 뱀띠 해가 따로 있는데, 왜 이 동물원은 도마뱀에게 공을 들이는 것일까.

엄청난 덩치 때문에 '코모도드래곤'이라는 영어 이름이 붙은 코모도왕도마뱀. /Smithsonian National Zoo

엄청난 덩치 때문에 '코모도드래곤'이라는 영어 이름이 붙은 코모도왕도마뱀. /Smithsonian National Zoo


코모도왕도마뱀의 영어 이름이 ‘코모도용(komodo dragon)’이라는 점에 착안해 용띠 해 마케팅을 펼치려는 것이다. 코모도왕도마뱀은 전 세계 3000여 종에 이르는 도마뱀 가운데 하나로 카멜레온·이구아나 등과도 친척뻘이다. 인도네시아 소순다 열도 코모도섬 일대에서 서식한다. 도마뱀인데도 굳이 ‘용’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어마어마한 몸집 때문이다. 지구에서 가장 큰 도마뱀으로 다 자란 수컷의 몸길이는 3m, 암컷은 1.8m에 달한다. 알에서 막 부화한 새끼의 몸길이도 웬만한 도마뱀 성체(成體)보다 큰 30㎝다.

광저우의 치메롱 사파리 공원에서 최근 공개된 코모도왕도마뱀의 새끼들. /People's Daily - Hong Kong Instagram

광저우의 치메롱 사파리 공원에서 최근 공개된 코모도왕도마뱀의 새끼들. /People's Daily - Hong Kong Instagram


20세기 초 소순다 열도 일대를 탐사하던 서양 과학자들이 현지 주민들로부터 “용이랑 빼닮은 괴물 도마뱀이 섬에 출몰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코모도왕도마뱀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유래됐다. 주변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사슴·멧돼지·뱀 등을 가리지 않고 사냥한다. 아래위 턱에는 60여 개의 날카로운 이빨이 돋아 있는데, 이 이빨에 물리면 치명상을 입는다고 한다. 양턱의 틈새로 독성을 머금은 박테리아들이 바글바글한 침이 뚝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 번 물린 먹잇감이 용케 달아나더라도 끝이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는 이 괴물에게 끝내 잡아먹히는 경우가 많다. 가장 무서운 천적은 동족(同族)이다. 알에서 부화한 새끼는 곧장 나무로 올라가서 생활한다. 다 자란 동족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본능 때문이다.

코모도왕도마뱀의 침에는 유해한 치명적 박테리아가 가득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Zoo Boise X

코모도왕도마뱀의 침에는 유해한 치명적 박테리아가 가득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Zoo Boise X


그래도 동물원에서는 사람으로 따지면 ‘VIP 대우’를 받는다. 멸종 위기에 처한 국제적인 보호종인 데다, 징그러운 외모와 흉포하고 잔혹한 습성에 매료된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12년마다 돌아오는 용띠 해는 연계 마케팅의 적기인 셈이다.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은 “기다란 몸뚱이에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에서 주민들은 불을 뿜는 용을 떠올렸을 법하다”고 했다.

중국 광저우 치메롱 사파리공원에서 최근 공개한 어린 코모도왕도마뱀. /People's Daily - Hong Kong Instagram

중국 광저우 치메롱 사파리공원에서 최근 공개한 어린 코모도왕도마뱀. /People's Daily - Hong Kong Instagram


최근 판다 일가족 세 마리를 중국으로 돌려보낸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국립동물원은 “판다들아, 잘 돌아가렴. 이젠 코모도왕도마뱀을 만나세요”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회원들에게 보냈다. 판다들을 보낸 헛헛함을 달랠 대안으로 코모도왕도마뱀을 낙점한 것이다. 실제로 코모도왕도마뱀의 생태는 상상의 동물 용처럼 비현실적인 부분도 있다.

워싱턴 스미스소니언동물원에서 사육중인 수컷 코모도왕도마뱀. 정상적인 짝짓기가 아닌 어미의 단성생식을 통해 태어났다. /Smithsonian National Zoo

워싱턴 스미스소니언동물원에서 사육중인 수컷 코모도왕도마뱀. 정상적인 짝짓기가 아닌 어미의 단성생식을 통해 태어났다. /Smithsonian National Zoo


암컷이 수컷과 짝을 짓지 않고도 새끼를 번식시킬 수 있는 ‘단성 생식(처녀 생식)’이 가능하다. 사실상 자기 복제인 셈인데, 번식철이 됐는데도 마땅한 수컷을 찾지 못하는 등 극한 상황에 처했을때 단성 생식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스미스소니언동물원에서 기르는 수컷 한 마리도 이런 방식으로 태어났다.

[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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