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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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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의 버킷리스트에 없던 MLB 진출을 꿈꾸게 한 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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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희의 맛있는야구]

한겨레

미국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입단한 이정후가 16일(한국시각) 입단식을 마치고 오라클 파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등 번호 51번은 그의 롤 모델인 스즈키 이치로를 따라서 어릴 적부터 단 것이다. 샌프란시스코/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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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25)가 한국 야구와 이별했다. 16일(한국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라클 파크에서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공식 입단식을 했다. 이에 앞서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 구단과 6년 총액 1억1300만달러(1462억원)에 계약했다. 2027시즌이 끝난 뒤 옵트아웃 조항(구단과 선수 합의로 계약 파기)도 삽입돼 있다.

사실 ‘메이저리그 진출’은 이정후가 어릴 적 작성한 버킷리스트에는 없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일기를 쓰면서 버킷리스트도 함께 끄적였는데, 버킷리스트에는 ‘최고 유격수 되기’(당시 포지션이 유격수였다), ‘프로 가서 타격왕 되기’, ‘엠브이피(MVP·최우수선수) 되기’ 등이 적혔다. 프로 입단 뒤 최고 외야수에게 주는 골든글러브를 5년 연속 탔고 타격왕(2021년, 2022년)도 됐고, 정규리그 최우수선수상(2022년)까지 받았으니 그의 버킷리스트는 얼추 완성된 셈이다. 다만 리그 우승만 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가 빅리그행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히어로즈 구단 선배인 박병호(kt 위즈),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영향이 컸다. 그는 지난겨울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프로 입단 때(2017년)로 돌아가서 ‘2023년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고 물었을 때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릴 것’이라고 답했으면 모두가 비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히어로즈 안에서 꿈꿀 수 있었고, 룸메이트였던 (김)하성이 형도 ‘할 수 있다’고 늘 말해줬다”면서 “형들(박병호, 김하성)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눈이 높아졌고 목표가 커지면서 행동도 달라졌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정후는 “히어로즈에 안 왔다면 절대 이만큼 성장을 못 했을 것”이라고 항상 말해왔다. 그는 “어린 시절 선배들이 ‘운동장이 놀이터인 듯 놀아라’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서건창, 김민성, 박병호, 김하성 같은 선배들이 앞장서서 후배들에게 더 많이 알려주고 도와주려고 했다. 나한테만 그런가 했는데 (김)혜성이에게도, 다른 선수들에게도 똑같이 했다”면서 “우리 팀에서 어린 선수들이 기 안 죽고 자기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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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왼쪽)가 16일(한국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 파크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입단식을 마친 뒤 아버지 이종범 전 엘지 트윈스 코치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샌프란시스코/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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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 구단의 경우 ‘붙박이’ 개념이 거의 없다. 자유계약(FA)이나 트레이드를 통한 주전급 선수들의 이적이 잦아서 포지션이 늘 열려 있다. 베테랑 프랜차이즈 선수나 에프에이 계약 선수가 5~6개의 포지션을 차지하며 선발 라인업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여타 구단들과는 다른 분위기다. 이정후 또한 “히어로즈에서는 내가 잘하면 언제든 주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2군에서 올라와도 무조건 주전으로 쓴다”고 했었다. 신인급 선수들이 히어로즈 주전을 꿰차는 것은 이제 전혀 낯설지가 않다.

히어로즈 구단은 잠재력이 보이면 같은 포지션의 신인 선수도 망설임 없이 뽑는다. 2023년 신인드래프트 때 포수 포지션 선수를 5명(총 12명)이나 뽑은 게 한 예다. 무한 경쟁을 붙이고,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면 1군으로 바로 불러올린다. 과거 업적이 있는 베테랑 선수도 경쟁에서 예외는 없다. 리그 최초로 200안타를 기록했던 서건창도, 한때 홈런왕으로 승승장구했던 박병호도 지금은 ‘히어로즈’가 아닌 이유다. 히어로즈는 ‘현재’와 ‘미래’만 본다. 그래서 어쩌면 가장 ‘프로’다운 경영을 하는 곳이 히어로즈 구단일 수도 있겠다. 물론 모그룹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지일 테지만 이런 환경이 강정호(은퇴)를, 김하성을, 이정후를 배출해냈다.

지난 10월1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 마지막 출장을 앞두고 이정후는 이런 말을 했었다. “1군에서 뛰고 있다고 1군 선수는 아니다. 후배들이 동년배를 바라보며 야구하지 말고 지금의 위치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KBO리그에서 7년간 뛴 경험에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기회를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리고, ‘내 (붙박이) 자리가 아니라 지켜내야 하는 자리다’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히어로즈에서 성장했기에 할 수 있던 말이 아니었을까.

히어로즈 구단은 지금껏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이적으로 꽤 많은 보상금을 획득했다. 이정후의 경우는 옵트아웃 상황에 따라 최소 165억원에서 최대 245억원까지 이적료를 받게 된다. 하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다. 내부 선수들에게 강력한 동기 부여가 생기며 ‘제2의 김하성’, ‘제2의 이정후’가 계속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서 경기하던 이의 성공만큼 강한 자극도 없으니까.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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