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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8 (수)

1994년엔 선수로, 2023년엔 단장으로 LG 우승 이끈 차명석 “3년간 2군 육성, 4년째부터 FA 잡아서 5년 안에 우승하겠다는 약속 지켰죠”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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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2018년 10월로 돌려보자. 해설위원을 맡고 있던 차명석(54) LG 단장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LG 프런트의 수장인 단장직을 제의하는 전화였다. 차 단장은 고사했다. 당시 아내가 늦둥이 셋째를 임신 중이었기 때문. 그러자 “LG에서 야구했던 사람들은 모두 구본무 선대 회장님의 은혜를 입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무책임하냐. LG트윈스를 제대로 좀 만들어 달라”는 말이 돌아왔다. 차 단장에게 야구 사랑이 너무나 지극했던 ‘구본무’라는 세 글자는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름이었다. 그렇게 2018년 10월부터 LG 프런트를 이끄는 수장인 차 단장을 최근 서울 잠실야구장에 만나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달려온 여정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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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남제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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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LG트윈스의 구단주가 구본준 부회장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으로 2019년 1월 변경됐고, 차 단장은 구 회장과의 첫 만남에서 자신의 로드맵을 밝혔다. 구 회장은 차 단장에게 “왜 모든 감독들은 ‘3년 안에 우승하겠다’라고 하나요?”라고 물었고, 차 단장은 “임기가 3년이기 때문입니다. 제게도 물어보시면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임기가 3년이라서요”라고 답했다.

이에 구 회장은 “3년 안에 우승할 수 있나요?”라고 되물었고, 차 단장은 “전력이 어느 정도 갖춰진 팀은 3년 안에 자유계약선수(FA)를 영입해서 우승할 수 있는데, 지금 우리팀 선수 구성으론 FA를 사와도 3년 안엔 힘듭니다”라 답했다. 구 회장은 “몇 년이 필요합니까?”라고 물었고, 차 단장은 “5년 주십시오. 대신 첫 3년간은 FA 안 잡겠습니다. 4년째부터 우승이 가능할 전력이 되면 그때 FA를 사주십시오. 다만 올해부터 매년 가을야구는 할 수 있는 팀을 만들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차 단장은 구 회장에게 한 공언대로 취임 직후 LG의 선수층을 두텁게 만드는 데 힘썼다. 이를 위해 공부하는 젊은 코치들로 코치진을 대폭 물갈이했다. 차 단장의 이런 움직임을 전임 사령탑들인 류중일 감독과 류지현 감독도 힘을 실어줬다. 차 단장은 “구단이 추구하는 철학이나 운영 방향에 대해 강제로 공부하도록 시켰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이런 방향으로 가자고 의견도 공유하고 공부하는 시간도 가졌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차 단장의 지휘 아래, 팀의 장기적인 성장이라는 철학을 공유한 코치진들은 2군 유망주들을 가르쳤다. 그 과정에서 LG의 뎁스는 깊어졌고, 매해 투타에 걸쳐 새 얼굴들을 발굴했다.

차 단장은 선수층이 두터워지자 FA 시장에도 손을 뻗었다. 2022년엔 리그 최고의 중견수비를 자랑하는 박해민을 데려왔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롯데로 FA이적한 포수 유강남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박동원을 KIA에서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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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처럼, 차 단장의 청사진 그대로 이루어졌다. 2018년 8위에 그쳤던 LG는 2019년 4위(이하 정규리그 기준)를 시작으로 2020년 4위, 2021년 3위, 2022년 2위로 4년 연속 가을야구에 개근하며 차근차근 한 단계를 밟아 올라갔다. 차 단장이 말한 5년째가 되는 2023년, 1994년 이후 29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2002년 이후 21년 만의 한국시리즈 무대 복귀였다. 그리고 KT를 4승1패로 누르고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도 들어올렸다.

차 단장도 우승의 순간에 눈물을 흘렸다. 당시 감정에 대해 묻자 차 단장은 “드디어 끝냈구나. 어떤 한 맺힘이 풀리는 것 같아 울컥했다”라면서 “시간이 좀 지나니 우승의 감격은 옅어졌다. 이제 내년 우승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시즌이 끝나고 맞이하는 스토브리그의 별칭은 ‘단장의 시간’이다. 프런트의 수장으로서 내년 운영의 밑그림을 그리는 이 시기는 차 단장이 가장 바쁘게 보내는 시간이다. 차 단장은 “2018년 10월에 단장으로 온 이후 휴가를 한 번도 못 갔어요. 선수와 감독들은 시즌이 끝나면 쉴 시간이 있지만, 저는 그때부터 또 다른 시작이거든요. ‘이제 우승했으니 좀 편하지 않냐?’라고도 하는데, 전혀요. 늘 의심하고, 늘 불안한 게 야구단 단장이에요. 그렇게 해도 실수가 나오니까요. 단장을 맡는 한 여유롭게 지내긴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해설위원 시절 메이저리그 중계도 많이 맡았던 것도 단장직 수행에 큰 도움이 됐다. 차 단장의 롤모델이라고 할 만한 메이저리그 단장이 둘 있다. 첫 번째는 2017년부터 2023년까지 7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해 월드시리즈 2회 우승(2017년, 2022년)을 일궈낸 오늘의 휴스턴을 있게 한 제프 르나우 단장, 두 번째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2018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데이브 돔브로스키다. 차 단장은 “르나우는 ‘탱킹’을 통해 신인 드래프트 상위픽을 얻어 팀의 핵심이 될 선수들을 키워냈다. 반면 돔브로스키는 유망주를 다 팔아치워 슈퍼스타급 선수들을 데려와서 단숨에 우승권 전력을 일궈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 두 단장의 기조를 적절히 배합해내 만들어낸 게 이번 LG의 우승”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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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단장의 계약 기간은 단장 2년차 때 3년을 추가해 올 시즌이 마지막이었다. 예전부터 미국 메이저리그의 시스템을 공부하고 싶었던 차 단장은 사실 올해 8월 차 시즌 뒤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물론 조건은 있었다. “한국시리즈 우승하면 관두겠다”였다. 차 단장은 “더 늦기 전에 미국에서 야구 행정에 대해 더 배우고 싶었다. 마이너리그 트리플A팀도 알아봤다. 가서 그들이 어떻게 마케팅을 하고, 운영을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지역 주민들을 야구자에 오게 하는지 등을 직접 보고 배우고 싶어서였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김인석 사장의 만류로 차 단장은 LG에 남기로 했다. 그는 “사장님께서 ‘우승했다고 가버리면 어떻게 하느냐. 이제 시작 아니냐’라고 말리셔서 내년에도 단장직을 맡아서 합니다”라고 답했다.

29년 만의 LG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이제 야구계의 관심은 ‘과연 LG가 왕조를 구축할 수 있느냐’에 쏠린다. 염경엽 감독은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이제 LG는 시작이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이 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차 단장은 “첫 번째 우승은 구단이 만들어준 전력으로 하는 겁니다. 구단의 역할이 큰 셈이죠. 두 번째 우승부터는 구단과 감독의 철학에 달려있다”라면서 “한 번 우승을 하게 되면 여기저기 균열도 생기고, 나태함도 생기거든요. 그런 것들을 최대한 나오지 않게 하는 힘이 바로 철학이다. 그 철학을 집대성할 감독님을 보좌하기 위해 저는 오늘도 열심히 일하려고 합니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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