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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44] 엑스포의 명암

조선일보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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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44] 엑스포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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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세계 엑스포의 서막을 알린 런던 수정궁 박람회의 수정궁관은 유리와 철강만을 사용해서 지어졌다. 이때 가장 주목받은 전시물은 영국 산업혁명의 위용을 자랑한 증기기관, 자동 인쇄기, 증기 해머였다. 1889년에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 박람회의 꽃은 프랑스 공학 기술의 위력과 철강 구조물의 극한을 뽐낸 에펠탑이었다. 20세기 초반의 박람회에서는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자동차들이 눈길을 끌었다.

미국은 1893년에 최초로 시카고 컬럼비아 엑스포를 개최했다. 당시 에디슨의 직류와 웨스팅하우스의 교류가 경쟁 중이었는데, 웨스팅하우스는 에디슨을 제치고 시카고 박람회에 전등을 설치하는 허가권을 따냈다. 박람회는 전등을 환하게 밝힌 뒤에 야간에도 개장했으며, 대관람차와 인공 운하에서의 뱃놀이는 관람객에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이후 엑스포는 기술과 산업만이 아니라 즐거움을 선사하는 놀이공원이나 서커스 비슷한 행사를 포함하기 시작했다.

이런 취지로 시카고 박람회에서는 볼리비아의 원주민을 전시하려고 했었다. 구경거리가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미국으로 데리고 온 원주민들이 기이하게 생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기획은 무산되었지만, 박람회 준비단은 대신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부족을 이루고 사는 모습을 전시하는 데 성공했다. 4년 뒤인 1897년 브뤼셀 박람회에는 아프리카 콩고인 267명을 데리고 와서 전시했는데, 이들의 모습은 많은 관람객을 끌어들인 효과를 낳았다. 이들 중 7명은 전시가 끝나기 전에 사망해서 브뤼셀에 묻혔다.

이런 ‘인간 동물원’(human zoo) 전시는 유색인종에 대한 백인의 우월성을 다시 확인하려고 기획되었고, 그 이면에는 백인을 우월한 종으로, 유색인종은 열등한 종으로 보는 사이비 과학이 존재했다. 서양의 엑스포는 제국주의와 함께 시작되었고, 아프리카나 아시아에 대한 유럽과 미국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번 부산 엑스포 유치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우리가 미래에 엑스포를 개최하게 된다면 서양의 기술 철학과 과학적 세계관이 아닌, 우리만의 고유한 사상과 미래에 대한 비전에 기초한 행사를 꾸리면 좋을 것이다.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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