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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국민연금, 가입기간 늘리면 제법 쏠쏠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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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기자(hilltop@pressian.com)]
매달 명세서에는 공제 기록이 따박따박 찍혀 있고, 손에 쥐어볼 날은 아직도 한참 멀었는데 이대로 가면 고갈된단다. 낸 돈 보다 적게 돌려받을 거란 흉흉한 소문도 들린다. 나라가 나를 '호갱'으로 보나?

난 열심히 일해 부모세대 봉양하고 얇은 지갑 털어 자식세대 공부시키는데, 노년층은 턱없이 적은 수령액이 불만이고 계산 빠른 젊은 세대는 이런 계약은 불공정하다고 난리란다. 내 현재를 저당잡았다가 노후에는 모른 척 할 것 같은 국민연금, 어쩌지?

5년마다 돌아오는 '국민연금 문제'가 이번에도 진통이다. 전문가들은 백가쟁명이고 시중엔 오해와 사실이 뒤엉켜 갈피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충분한 경제력을 갖췄고 국민은 성실한데, 대체 왜 우리는 자신의 노후를 걱정하고 아이들의 미래를 근심해야 하는가."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가 세대 간에 불공정하고, 같은 세대 내에선 불평등할뿐더러, 지속 가능성마저 위태로운 국민연금 문제에 "비정상의 정상화"를 당부하며 책을 썼다. <불편한 연금책>(김태일 저. 한겨레출판). 재정전문가가 국민연금은 물론이고 기초연금과 퇴직연금 체계까지 망라해 솔직하게, 상세하게, 이해하기 쉽게 '국민의 연금'다운 연금 개혁을 설득하는 책이다.

프레시안

▲ 김태일, <불편한 연금책>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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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얼마를 내고(보험료율)과 얼마를 받는지(소득대체율)를 빼놓고 24개에 달하는 시나리오를 담은 개혁안을 발표해 '맹탕'이란 비판을 샀다. 이후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민간 자문위원회는 현재 9%인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40%)을 50%까지 올리거나, 소득대체율은 그대로 두고 보험료율만 15%로 높이는 두 가지 안을 보고했다.

어느 쪽이든 더 내야 한다. 지속 가능성은 연금이 존속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낸 것보다 많이 받는 구조인 데다 낼 사람은 줄어들고 받을 사람은 늘어나는 추세여서 지금 이대로면 2050년대 중반에 기금 고갈이라는 낭떠러지를 만나게 된다.

김 교수는 "부담이 돼도 할 수밖에 없다"면서 "보험료율을 빨리, 많이 올릴수록 나중의 부담이 적어진다"고 했다. 이대로 방치해 기금이 고갈된 이후에도 연금 제도를 지탱하려면 보험료율은 30%에 육박한다는 추계다. 김 교수 역시 산술적으로는 "현행 소득대체율에서는 보험료율이 18% 가까이 되어야 한다"는 견해다.

보험료율 인상이 늦어질수록 현재 청년 세대의 부담이 늘어나 당대의 근로 세대가 노인 세대를 부양하는 국민연금의 '세대 간 계약' 역시 더욱 형평성을 잃는다.

김 교수는 "인구구조와 경제구조, 어느 면으로 봐도 지금 세대 간 계약은 중장년 세대에게 유리하고 청년 세대에게 불리하다"고 했다. 한때 '샌드위치 세대'라고 넋두리했던 현재 중장년 세대의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일부의 저항은 저자의 표현처럼 "낯 뜨거운 얘기"가 된다. 이는 젊은 세대 입장에서도 보험료율 인상을 하루라도 빨리 서둘러야 미래의 불공정성을 줄이게 된다는 의미다.

지속 가능성 제고와 함께 김 교수가 연금 개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는 가입 기간(보험료 납부 기간) 확대다. 그는 "혜택의 크기는 소득 수준이 아니라 가입 기간에 의해 결정된다"면서 "가입 기간은 대체로 고소득층이 저소득층보다 길어서 국민연금의 혜택은 역진적"이라고 했다.

가입 기간 확충을 위해선 현재 59세까지인 납부 연령을 수급 연령 직전인 64세까지 상향하는 방안을 첫손에 꼽았다. 이와 함께 군 복무 기간 인정, 출산 크레딧 확대, 18세 자동 가입 방안에 대해서도 상세한 설명으로 막연한 오해를 불식하면서 "가입 기간 확충 방안만 제대로 실행되면 국민연금 급여액은 제법 높아진다"고 봤다.

연금의 궁극적인 목적, 즉 노후 소득 보장에는 국민연금과 함께 공적연금을 구성하는 기초연금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기초연금은 만 65살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 하위 '70%'라는 대상 규모를 먼저 정하고 일괄 지급하는 탓에 액수는 낮고 비교적 여유 있는 중산층도 수급자가 되는 맹점이 있다.

김 교수는 스스로 노후 대비가 부족한 빈곤 노인들의 생활을 보장하도록 "기초연금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 그에 부합하는 제도를 설계할 것"도 연금 개혁의 주요 과제로 강조한다. "기초연금은 '최소한의 소득 보장'을 담당하고 국민연금은 '그 이상의 소득 보장'을 담당하게 하는" 역할 구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민간이 운용하는 퇴직연금 수익률이 2% 정도에 불과한 점을 꼬집으며 "시장의 돈 불리는 솜씨가 정부보다 못하다는 건 납득할 수 없다"면서 "국민연금 사업장 가입자 모두가 퇴직연금 대상이 되는 게 마땅하다"고 제안한다. 공공기관이 운용에 관여하거나 기금형 운용 등을 통해 '규모의 경제'로 이익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대 간에, 계층 간에 이 모든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연금 개혁의 성공 여부가 정치 역량을 드러낸다. 솔직한 정보 공개, 공론의 수렴, 그리고 대타협만이 연금에 관한 '신뢰의 위기'를 걷어내고 모든 국민의 노후를 살피는 국가의 길을 연다.

내년 총선을 앞둔 정부와 여야가 표를 얻는데 불리한 연금 문제를 선거 뒤로 미루는 분위기에서 '불편한' 연금을 다룬 이 책의 마지막 문단은 이렇다.

"수십 년간 성실히 일하면서 꾸준히 보험료를 납부했다면, 국민연금과 퇴직연금만으로도 웬만큼 노후 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이는 미래 세대도 동등하게 누려야 한다. 이는 복지국가의 당연한 책무이다. 이를 못한다면 정치권과 정부의 직무유기다."

[임경구 기자(hilltop@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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