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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바벨 들며 깨달은 ‘반복의 가치’… 공직에도 큰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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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장미란(40)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요즘 동계 스포츠에 푹 빠져 있다. 내년 1월 19일부터 2월 1일까지 평창군과 강릉시 등 강원도 일대에서 전 세계 70여 국 15~18세 청소년 선수 2900여 명이 참가하는 강원 동계 청소년 올림픽이 열리기 때문이다. 역대 네 번째 대회로, 처음으로 유럽을 벗어난 지역에서 펼쳐진다.

지난 27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 장미란 차관은 시설 점검차 방문한 자리에서 동계 청소년 올림픽 루지 1인승 종목에 출전하는 박서현(15·거제중)양을 만났다. 그에게 “루지 얼마나 좋아해요?”라고 묻자 박양은 “베이징 올림픽을 보고 매력에 푹 빠졌는데 대표까지 뽑혀 거제에서 올라와 훈련하고 있다”고 답하며 즐거워했다. 장 차관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장 차관은 “선수 시절엔 세계 어디든 몸만 가서 바벨을 들면 됐지만, 이젠 전 세계에 초대장을 보내놓고 준비하는 입장이라 허투루 볼 순 없다”며 현장 점검과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다. ‘잼버리 악몽’을 재현하지 않으려면 작은 빈틈도 용납해선 안 된다. 이번 청소년 올림픽은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 사용한 기존 시설을 개·보수해 활용한다. 각 종목 국제 연맹과 두 차례 시설 검사도 마쳤다.

“겨울 종목 중엔 쇼트트랙이 인상적이었어요. 은퇴하고 나서 경기를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스케이트 날이 빙판에 ‘샥~’ 하고 갈리는 소리에 그동안 잊고 있던 긴장감이 깨어났습니다. 역기를 들기 전 탄산마그네슘 가루를 묻힐 때 드는 감정을 몇 년 만에 느껴 보니 제가 이 긴장감을 그리워하고 있었더라고요. 선수로 복귀할까 잠시 고민했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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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미란 2차관이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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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한국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주니어 선수 시절엔 지금보다 수줍음이 더 많아 세계 대회에 나가서도 묵묵히 경기에만 집중했던 것 같아 아쉬워요. 소통을 잘하는 요즘 세대에겐 이번 올림픽이 비슷한 길을 걷는 전 세계 친구들과 감정을 공유하는 귀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요?” 경쟁보다는 화합에 초점을 맞추는 청소년 올림픽은 성인 올림픽과 달리 메달은 수여하되 국가별 순위를 따로 집계하지는 않는다.

지난 7월 취임한 장미란 차관에게 공직 업무는 배움의 연속이다. 장 차관은 “학교(용인대 체육학과)에 있을 때에도 ‘아이들에게 내가 좋은 선생님인가’란 질문을 셀 수 없이 했는데 차관에 임명되고 나선 오죽했겠느냐”며 “’잘해낼 수 있을까’란 걱정이 앞설 때마다 믿을 건 선수 시절 수도 없이 바벨을 들며 체감한 ‘반복의 힘’이었다”고 했다. “지금도 저에겐 어려운 일이 많지만 지난 4개월 동안 매일 주어진 일들을 최선을 다해 해내는 걸 반복하면서 ‘업무의 무게’를 조금씩 늘려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를 위해선 수많은 반복에도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는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유니폼을 벗고 나면 자신이 사용했던 장비를 쳐다보기도 싫어한다지만, 장미란 차관은 여전히 바벨을 사랑한다. 지금도 집에서 1주일에 2~3회, 1~2시간 역기를 들며 자존감을 찾는다고 했다. “용기를 잃거나 뭔가 주저할 때 제가 제일 잘하는 운동을 하면서 자신감을 충전해요. 기록과 체중 등 숫자와 싸워야 했던 선수 때와 달리 지금은 하고 싶은 만큼 하면 되니까 더욱 즐겁습니다.” 현역 시절 백스쿼트 275kg, 데드리프트 245kg을 자랑했다는 장 차관은 “지금은 몸을 생각해 100kg 이상은 안 든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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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장미란 2차관이 강원도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 선수들과 포즈를 취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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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 차관은 운동을 통해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배웠다고 했다. “지덕체(智德體)가 아니라 요즘엔 체덕지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그는 “스포츠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학교 체육 활동이 선택의 순간에서 뒷전으로 밀릴 때마다 안타까웠다”며 “교육부와 협의해야 할 사안이지만, 학교 체육 활동을 더욱 활성화하고 정례화하는 데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요. 스포츠를 모두가 좋아할 수는 없겠지만, 그 즐거움을 알게 할 기회는 충분히 주어져야 합니다. 그 시간을 확보하는 건 정부가 해야 할 일이고요.”

최근 구기 종목 부진과 맞물려 지적되는 한국 엘리트 체육의 위상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엘리트 스포츠의 토대 마련을 위해선 학교 운동부 지원을 강화하고 지도자 처우를 개선해야 합니다. ‘금메달 지상주의’에서 벗어나자는 말은 그럴 듯하지만 금메달을 따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폄하하고 모든 결과를 동등하게 생각하는 풍토는 문제가 있다고 봐요.” 장 차관은 “공부하는 선수란 말도 좋지만, 자칫 재능이 있는 선수들까지 하향 평준화될 수 있다”며 “잘하는 건 계속 잘하게 해주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채워주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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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장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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