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와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3.11.27/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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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1심 재판에서 검찰이 징역 7년을 구형했다.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1부(재판장 김현순) 심리로 진행된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의 핵심 책임자인 피고인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임 전 차장 1심 재판의 심리는 이날로 종결됐다. 판결 선고는 내년 2월 5일로 예정됐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전·현직 고위 법관은 임 전 차장을 포함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14명이었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 끌어온 임 전 차장의 1심 재판에는 장장 5년이 걸렸다. 법조인들은 “임 전 차장이 재판에서 그만큼 치열하게 검찰과 다퉜다는 의미”라며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을 둘러싼 사법적 절차가 종착점에 들어선 것”이라고 했다. 임 전 차장과 공범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지난 9월 각각 징역 7년, 징역 5년, 징역 4년을 구형받고 내달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그래픽=정인성 |
임 전 차장 혐의는 ‘재판 개입’ ‘판사 블랙리스트’ ‘법관 비위 은폐’ 등이다. 양 전 대법원장,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혐의와 중복된다. 이는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부의 도움을 받을 목적으로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소송 등에 개입했고, ‘물의 야기 법관’을 별도 관리했으며, ‘정운호 게이트’ 관련 판사 비위를 감추려고 검찰 수사 기밀을 수집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날 “임 전 차장은 대부분의 범죄 사실을 기획하고 지시·실행하며 깊게 관여했다”며 “그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임 전 차장이 내세운 사법 정책적 목적은 사법부 조직을 위한 사적 이익 추구로 변질됐고, 재판은 이용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임 전 차장은 최후 진술에서 “사법부의 신뢰를 훼손시켜 버리고, 사법부 구성원들에게 큰 충격과 실망을 안겨드려 죄송스러운 마음”이라면서도 혐의는 부인했다. 그는 “검찰이 존재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재판 거래를 ‘사법 농단’이라는 프레임하에 기정사실로 전제해 수사를 시작한 배경에는 음험한 정치적 책략이 있다”며 “사법 행정을 하면서 다양한 가상의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대응 방안을 선제적으로 검토한 보고서에 대해 검찰은 위법하다고 문제 삼고 있다”고 했다. 구금 생활 당시 심경을 말할 땐 울먹이기도 했다.
임 전 차장은 2018년 11월 가장 먼저 구속됐는데, 뇌물 등 개인 비리가 아닌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전직 판사가 구속된 것은 처음이었다. 임 전 차장 재판은 많은 뒷얘기와 논란을 남겼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을 기소하면서 A4 용지 20만 쪽의 수사 및 증거 기록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쌓으면 높이 20m에 무게 1t으로 트럭으로 옮겨야 할 분량이라 ‘트럭 기소’라는 말이 나왔다. 법리(法理)에 밝다는 평을 받는 임 전 차장은 재판 초기에 두 평(약 6.6㎡)이 안 되는 구치소 독방에서 직접 기록을 보고 의견서를 썼다. 종이 기록을 넘기면서 손이 베일 때도 있었다고 한다.
임 전 차장은 자신의 재판을 맡았던 윤종섭 형사36부 부장판사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윤 부장판사는 재판 초기 일주일에 월~목요일 네 차례 재판을 열겠다고 결정했다. 변호인단이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전원 사임하며 강력하게 반발해 주 4회 재판은 무산됐다. 윤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에 대한 추가 구속영장도 발부했다. 임 전 차장은 503일간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2020년 3월에야 보석으로 풀려났다.
임 전 차장은 “윤 부장판사가 유죄 심증을 갖고 재판을 부당하게 진행한다”며 두 차례 기피 신청을 냈다. 과거 윤 부장판사가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연루자들을 단죄해야 한다”고 말했던 사실이 재판 중 알려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중앙지법 3년 임기 원칙’을 깨고 윤 부장판사를 6년간 중앙지법에 뒀다. 윤 부장판사는 작년 2월까지 이 재판을 심리하다가 다른 법원으로 이동했다.
한편,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 등 4명이 1심 선고를 앞둔 가운데,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등 4명은 대법원에서 재판 중이다.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등 6명은 무죄가 확정됐다. 앞선 재판에서 ‘재판 개입’ ‘법관 비위 은폐’ 혐의는 모두 무죄판결이 나왔다.
[방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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