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대한이식학회 추계 학술대회 통해 공식화
-거부 반응 없이 정상 기능 유지하며 ‘시험관 아기’ 준비 중
-자궁이식팀 “환자의 염원,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지길”
삼성서울병원(원장 박승우)은 다학제 자궁이식팀이 MRKH(Mayer-Rokitansky-Küster-Hauser) 증후군을 가진 35세 여성에게 지난 1월 뇌사자의 자궁을 이식해 10개월째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안정적으로 이식 상태를 유지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환자는 월경 주기가 규칙적인 만큼 이식된 자궁이 정상 기능 중이고, 최종 목표인 임신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식팀을 이끈 박재범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는 이러한 내용을 17일, 대한이식학회 추계 국제학술대회(Asian Transplantation Week 2023)에서 자궁이식 성공 사례로 발표했다.
삼성서울병원 다학제 자궁이식팀: 박재범·이교원 이식외과 교수, 박성해 이식외과 임상강사, 오수영·이유영·이동윤·김성은·노준호 산부인과 교수, 임소영 성형외과 교수, 김찬교 영상의학과 교수, 김민제 영상의학과 임상강사, 김현수 병리과 교수, 고재훈 감염내과 교수, 정선우 변호사, 최주영 간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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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5000명 중 1명, 선천성 MRKH 환자로 추산=MRKH 증후군은 선천적으로 자궁과 질이 없거나 발달하지 않는 질환을 말한다. 여성 5000명당 1명꼴로 발병하는 것으로 학계는 추산한다. 대개 청소년기 생리가 시작하지 않아 찾은 병원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난소 기능은 정상적이어서 호르몬 등의 영향이 없고, 배란도 가능하다. 이론적으로 자궁을 이식받으면 임신과 출산도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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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서울병원에서 자궁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 역시 MRKH 증후군 환자로 결혼 이후 임신을 결심하고 2021년 삼성서울병원 문을 두드렸다. 당시는 삼성서울병원이 2019년부터 준비한 다학제 자궁이식팀이 이듬해 정식으로 팀을 꾸리고, 관련 임상연구를 시작한 지 1년 정도 될 때였다. 환자의 적극적인 의지에 자궁이식팀 역시 속도를 냈다.
국내 첫 사례인 만큼 자궁이식팀은 법적 자문과 보건복지부 검토를 진행하고,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사까지 모두 마쳐 절차적 정당성을 갖춘 뒤 신중히 접근했다. 각자 전문 분야별로 해외에서 발표된 논문과 사례를 조사하며 이론적 배경은 물론 실제 이식 수술, 이식장기의 생존전략, 임신과 출산까지 모든 과정을 준비하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첫걸음부터 어려운 길이었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체계에서 새로운 수술의 시도는 ‘임상연구’라는 형태를 취할 수 밖에 없는데 막대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때 자궁이식을 통해 새 생명을 품으려는 환자의 모성과 의료의 영역을 확장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료진의 열정에 공감한 뜻있는 후원자들이 기부로 힘을 더해주었다.
이미 여러 차례 의료 연구에 기부를 했던 개인과 재단 기부자를 비롯해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슬의생)〉 제작진 등 여러 후원자들이 연구비 기부에 참여했다. 슬의생 제작진의 기부는 극중 채송화 교수의 롤모델이자 제작 자문을 맡았었던 자궁이식팀의 오수영 산부인과 교수와의 인연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첫 시도 실패 후 6개월만에 기적처럼 찾아 온 재도전의 기회=어렵게 시작한 자궁이식 연구는 첫 시도에서 벽에 부딪혔다. 2022년 7월 처음 이식 때 생체 기증자의 자궁을 환자에게 이식했지만, 이식 자궁에서 동맥과 정맥의 혈류가 원활하지 않아 2주만에 제거를 해야 했다.
절망의 위기에도 환자의 굳은 결심을 보고 자궁이식팀은 다시 힘을 내어 뇌사기증자 자궁이식을 기다렸다. 다행히 첫 이식 실패 6개월 여 만인 지난 1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고대하던 뇌사 기증자가 나타나 두 번째 이식수술을 시도해 볼 수 있게 됐다.
자궁이식팀은 지난 실패를 교훈 삼아 모든 과정을 다시 꼼꼼히 살피는 한편, 공여자의 장기적출 과정부터 이식에 최선이 되도록 보다 완벽을 추구했다. 기증자 자궁과 연결된 작고 긴 혈관 하나까지 다치지 않도록 정교한 수술을 하는 것이 자궁이식 초기 성공의 중요한 포인트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병원에 따르면 환자는 이식 후 29일만에 ‘생애 최초’로 월경을 경험했다고 한다. 자궁이 환자 몸에 안착했다는 신호다. 첫 월경 이후 환자는 규칙적인 생리주기를 유지 중이다. 이식 후 2, 4, 6주, 4개월, 6개월째 조직검사에서 거부반응 징후도 나타나지 않아 이식한 자궁이 환자 몸에 완전히 자리잡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남은 과제로 환자와 자궁이식팀 모두 아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자궁이식팀의 이동윤, 김성은 산부인과 교수는 이식 수술에 앞서 미리 환자의 난소로부터 채취한 난자와 남편의 정자로 수정한 배아를 이식한 자궁에서 착상을 유도하고 있으며, 임신 이후 무사히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도록 제반 사항을 점검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 2020년 세계에서 세 번째, 국내에서 처음으로 면역관용유도 신장이식을 받은 환자의 임신과 출산에 성공하는 등 장기이식 환자의 출산 경험이 풍부하다.
박재범 이식외과 교수는 “자궁이식은 국내 첫 사례이다 보니 모든 과정을 환자와 함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간다는 심정으로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면서 “첫 실패의 과정은 참담했지만, 환자와 함께 좌절하지 않고 극복하여 무사히 자궁이 안착되어 환자가 그토록 바라는 아기를 맞이할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박재범 교수가 이식수술을 하고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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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영 산부인과 교수는 “환자와 의료진뿐 아니라 연구에 아낌없이 지원해준 후원자들까지 많은 분들이 도움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면서 “어려운 선택을 한 환자와 이를 응원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남은 과정 역시 희망이 계속되길 함께 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자궁이식은 전 세계적으로 지난 2000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시도된 바 있다. 당시 환자는 이식 100일만에 거부반응으로 이식한 자궁을 떼어내 안착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고됐다. 이후 2014년 스웨덴에서 자궁이식과 더불어 출산까지 성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세간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관련 근거가 쌓이면서 이식 성공 사례도 점차 늘고 있다. 미국 베일러 대학병원(Baylor University Medical Center)이 2021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9년 사이 이 병원에서만 20명에게 자궁이식이 시도돼 14명이 이식에 성공했고, 이 중 11명(79%)이 출산까지 마친 것으로 보고됐다.
지난 9월 미국에서 개최된 국제 자궁이식학회에서 전 세계적으로 삼성서울병원 성공 사례를 포함해 109건에 이르는 것으로 발표되었으며, 세계적으로 재이식시도는 삼성서울병원의 ‘이번 사례가 처음’으로 알려졌다.
삼성서울병원은 이번 성공을 발판 삼아 또 다른 환자의 자궁이식을 준비 중이다. 국내에서도 이처럼 자궁이식 성공 경험이 계속 쌓이면, MRKH 환자 등 자궁 요인에 의한 불임으로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환자들에게 자녀 출산의 새로운 희망을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자궁이식 이슈와 현황〉
▷자궁 이식 왜 필요한가?= 아이를 맞이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지만 임신 경험을 통해 아이를 갖는 것은 전통적으로 여성과 가족 모두에게 자연스럽다. 자궁 이식은 MRKH 환자 등 자궁 요인에 의한 불임으로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환자들이 임신과 출산을 통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환자들이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대리모를 통한 출산은 법적으로 불완전하다. 대리모계약을 규율하는 입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판례는 ‘대리모’가 법률상 모(母)라는 전제하에서 부부의 정자와 난자로 만든 수정체를 다른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킨 후 출산케 하는 이른바 ‘자궁(출산)대리모’ 계약을 무효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서울가정법원 2018. 5. 9. 자 2018브15 결정 참조).
게다가 ‘의학적으로 못하는 것과 할 수 있는 데 안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외국에서는 이미 20년 전부터 꾸준히 시도되어 왔고, 최근에는 성공 사례도 늘고 있다. 환자들이 선택권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남의 자궁을 이식해 아이를 낳으면 아기의 부모는 누구인가= 생명은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잉태된다. 일반적으로 자궁이식 대상 환자의 경우 난소가 ‘제 기능’을 하는 만큼 환자의 난자와 배우자의 정자로 수정한 배아를 이식한 자궁에서 키워 출산한다. 이번에 국내 최초로 자궁이식에 성공한 환자 역시 정상 난소를 가지고 있고, 무자궁 상태였다. 향후 임신 후 출산까지 마치면 유전적으로 두말할 것 없이 환자와 환자 배우자가 부모가 된다. 이식한 자궁은 태아가 잠시 빌려 쓰는 공간이라고 보면 된다.
▷법적 이슈는 없나=장기이식 분야에는 제한이 많다. 생명 존중 측면에서 보아 필요한 제도적 절차이지만 현실이 뒤늦게 따라가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미 해외에서는 사망 후 장기기증 제도가 활성화되어 있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시행 전인 것도 마찬가지다.
간이나 신장, 심장, 폐와 같은 기존 이식 분야에서 다른 장기로 분야를 넓혀가는 것은 신중하게 접근하되 사회적 논의를 거쳐 꼭 해결해야 할 일이다. 이번 자궁이식 건도 환자에게 간절한 일이라 법적 자문과 보건복지부 검토에 따라 일차적으로 ‘임상연구’로 진행했다.
▷국내 대상 환자는 얼마나 되나?= 국내 MRKH 환자는 정확히 집계된 바 없으나 대개 여성 5,000명 당 1명꼴이라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기록상 최근 10년간 우리 병원에서 약 30명, 우리나라 전체에서 90명 정도다. 게다가 자궁 질환 등으로 젊은 여성이 자궁을 절제하는 경우도 있는 만큼 이식이 필요한 환자는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
▷환자의 임신과 출산은?=현재 환자는 ‘시험관 아기’의 착상 과정을 시도하고 있다. 해외 성공 사례를 보았을 때 기대감이 높다. 착상에 성공하면 이후에는 환자의 임신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다. 이번에 수술받은 환자에게도 좋은 소식이 들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kt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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