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석 드라마감독과 배우 이정용
방송계 종사자들로 폭을 좁혀 연출 감독과 연기자의 관계는 어떨까. 캐스팅 권한이 있는 감독과 그 부름을 받는 연기자 사이에는 한 방향으로 흐르는 엄격한 관계 설정이 있다. 물론 이 벽을 넘고 가족 같은 사이가 된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누가 봐도 유쾌, 상쾌, 통쾌한 신창석 KBS 드라마 PD(왼쪽) 와 ‘만능 연예인’ 이정용이 가을 하늘이 눈부신 10월의 어느 날 서울 여의도에서 손가락 하트를 펴보이고 있다. 둘은 서로가 자신의 인맥 1순위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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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으로 연예계에 데뷔해 정극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트로트 음반 출시), 뮤지컬이면 뮤지컬, 예능이면 예능, 방송 리포터면 리포터를 두루 거쳤다. 게다가 중년에 ‘몸짱’ 캐릭터(가수 비의 퍼포먼스와 몸을 따라 하면서 ‘비정용’이라는 별명이 붙음)까지 생겼다.
연예계 바닥에서 안 해본 게 없는 자칭 만능 딴따라 연예인 이정용 씨(54)와 ‘명성황후’ ‘무인시대’ ‘천추태후’ ‘대왕의 꿈’ 등 인기 사극 드라마를 연출했던 신창석 KBS 드라마제작국 감독(59)은 누가 봐도 연출과 연기자 사이 같지 않다.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자니 간, 쓸개가 수시로 오고 간다. 절친하다 못해 친하기가 눈물 나게 부럽다.
주연급 연기자도 아닌데 신 감독이 오랜 시간 친해지고 싶어 연락할 기회를 봤다고 한다. 이후 캐스팅 한 번으로 서로 ‘평생 내 사람’으로 지내고 있다. 여러 드라마 작품에서 감초 역할을 많이 했던 이 씨는 ‘신창석의 사단’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축이다.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둘에게 다짜고짜 질문을 했다.
신 감독은 “정용이가 ‘넘버 3’는 됩니다”라고 정리해 버린다. 아리송한 정용 씨의 표정을 살핀 신 감독은 다시 “그래. ‘넘버 1’으로 하지 뭐”라고 급수습해 버렸다.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었다.
● 인생 가치관을 흔든 ‘감독님’
신 감독이 2009년 방영된 드라마 ‘천추태후’를 기획할 무렵 이 씨는 예능 프로그램 ‘세바퀴’를 통해 한창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관철,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일본의 장군 가토 기요마사 역할로 개성 넘치는 연기력을 보여주긴 했으나 뭔가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던 때였다. 그는 ‘세바퀴’에 출연해 탄탄한 근육질 몸과 끼를 뽐내며 활동 영역을 다양하게 넓힐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한창 예능에서 뜨고 있어서 고민이 됐겠는데요?
“감독님하고 인연이 안 될 뻔했어요. 드라마 고정은 아니고 두세 번 나오는 역할을 제안받았는데, 좋긴 했죠. 그런데 ‘세바퀴’에 잘 적응하고 있던 상황이라…. 비를 닮은 ‘비정용’ 콘셉트로 뜨고 탄력을 받고 있었잖아요. 그래도 신 감독님을 만났죠. 저에게 그러시는 거예요. 거란족 장수인데 마초의 상징인 이탈리아의 종마 같은 역할이라고 설명을 해주셨어요. 그런데 그게 머리에 들어와야 말이죠.”(이정용)
-거절했나요?
“그렇죠. 거절하고 나서 제 느낌으로는 감독님이 기분 상하신 것 같더라고요.”(이정용)
이후 신 감독이 다시 자신을 만나게 된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는 이정용 씨. 그러자 신 감독은 “뭘 거기까지”라며 분위기 수습을 했다. “정용 씨의 노력과 인품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더 많다”라며.
“이정용은 내가 마음을 확실하게 준 사람입니다. ‘대왕의 꿈’(2012~2013) 기획을 할 때 다시 콜을 했죠. 오랜 짝사랑이 이뤄진 거죠(웃음). 김유신의 라이벌인데 너무 좋은 배역이었어요. 살수집단의 총대장 ‘길달’이라는 배역인데 여우로 둔갑하는 사람이죠. 몸은 건장한데 둔갑술도 쓰는, 어린 김유신하고 영혼의 대결을 하는 역할인데 정용이가 너무 잘 소화해줬습니다. 강인한 길달 역할을 소화하려고 인생 최고의 몸을 만들어 왔더라고요.”
명 감독의 첫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했던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이 씨는 마지막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배역에 몰입했다고 했다. 신 감독도 이 씨가 가진 인상적인 캐릭터를 대사 등에 많이 녹이려 했다.
- 극 초반 핵심 악역이었는데 감독께서 이정용 씨의 배역이 도드라지도록 더 배려해준 부분이 있을까요.
“2회째인가, 대본에 이렇게 쓰여 있더라고요. 가장 기억나는 장면인데 ‘웃통을 벗은 길달, 상처를 치료하고 있다’라고 적혀 있는 거예요. ‘옷통을 벗은’으로 정확하게! 작가한테 그랬어요. ‘기회다’라고요. 그때 더 체계적으로 몸을 어마어마하게 만들었어요. 체지방이 3%대까지 떨어졌어요. 거의 몸에 근육하고 피부만 있었죠. 제 마지막 장면 촬영이 끝나고 나니 감독님께서 스태프 70~80명 정도가 모인 앞에서 ‘6개월간 피나는 고생을 해준 길달에게 큰 박수를 쳐달라’고 해주시더라고요. 연기 인생에서 그렇게 뿌듯한 적이 없었어요. 모든 고생이 녹아버렸죠. 그때 이후 제 몸에 대한 자부심도 한 단계 커졌어요. 몸 잘 만들고 작품 잘 마친 덕에 바로 ‘나는 아빠다(배우 이정용의 몸만들기 프로젝트)’라는 책도 펴낼 수 있었어요.”
신 감독이 이정용과의 첫 작품에서 ‘이정용다운 이정용의 본능’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던 그 장면. 이 씨는 드라마 ‘대왕의 꿈’ 길달 역할에 캐스팅되면서 근육질 몸을 만들고 몰입했다. 극 중에서 큰 부상을 입고도 복수를 다짐하며 고통을 참는 길달을 연기하고 있는 이정용. 이정용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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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용 씨에게는 이 작품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다.
“보통 드라마 감독님이라면 권위적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배우는 긴장도 하고 그렇죠. 그런데 신 감독님은 살뜰하게 배우를 배려해주고, 현장에서는 개그맨보다 더 재밌게 분위기 메이커가 돼 주시죠. 배우들이 에너지를 충분히 발휘하도록 해주시는 거 보고 놀랐어요. 함께 일하는 사람을 대하는 가치관을 바꿔주신 분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배우들에게 ‘캐스팅 받아줘서 감사하다’면서 ‘나는 기회를 주는 사람이지 만들어주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하세요. 기회를 살리는 건 배우의 몫이라는 것을 알도록 해주셨죠.”
경상도 출신인데 무뚝뚝함과는 거리가 먼 신창석 감독의 긍정과 배려는 이정용에게 파워 에너저 드링크다. 신 감독이 이정용과 첫 만남 당시 상황을 회고하고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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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부여가 기가 막힙니다.
“캐스팅이 되고 배역이 정해지면, 어미가 가져다주는 모이를 기다리는 새끼 새들처럼 감독이 만든 틀에만 의지해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있어요. 저도 그런 배우 중 하나였고요. 그런데 감독님은 배우에게 연기의 자율권을 주고, 배우들의 아이디어를 충분히 수용해주셨죠.”
-배역에 임하는 자세부터 달라졌겠네요. 그러면서 작품을 보는 대중에 대한 책임감도 커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연예인, 연기자는 이미지 메이킹이 잘 돼야 해요. 저는 현장에서 조명을 받고 있는 느낌이 너무 좋고 그것을 즐겨요. (천상 연예인인가요?) 하하, 네. 그런데 거기서 머무르면 안 된다는 거죠. 배우마다 대중들이 바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배우가 이것을 지켜내지 못하고 벗어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감독님 때문에 알게 됐죠. 대중들이라면 ‘이정용’에게는 늘 탄탄한 몸과 다부지고 활기찬 캐릭터를 기대하고 있을 텐데, 그게 안 되면? 대중과 팬에 대한 배신이죠.”
이정용 씨는 대중이 바라는 자신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철저한 자기 관리 계획에 따라 스스로를 지배당하게 한다고 한다. 이정용 제공 |
이정용은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 배고파서 김밥 몇 줄에 단무지 한 사발을 먹고 나도 바로 관리에 들어간다. 대중들이 그리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결심이 신 감독을 만나고부터 ‘이정용’을 지배하기 있기 때문이다.
● 연기로는 손흥민 선수 같은 나의 ‘이정용’
뮤지컬 ‘미녀와 야수’에서 개스톤으로 열연한 이정용. 이정용 제공 |
신 감독은 이정용 씨가 그동안 참 버티기 힘들었을텐데 견뎌온 게 대단하고 대견하다. 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타입의 사람”이라며 이정용 씨의 다양한 삶의 흔적을 높이 평가했다. 혹자가 행여 이 씨에게 ‘정체성’ 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텐데, 신 감독의 생각은 정반대다.
“이정용’의 이력서는 A4로 몇 장을 채울 수도 있어요. 누구를 이기려는 사람보다, 남들 눈치 안 보고 ‘오늘의 나’를 계속 만들어가는 사람, 이런 캐릭터를 좋아하는데 딱 ‘이정용’이에요. 한계와 부딪혀보려고 고생을 치열하게 한 사람입니다.”
-감독님에게 ‘배우 이정용’은 어떤 존재일까요.
“개그맨 하기에는 잘 생겼고, 장동건보다는 못 생겨서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합니다(농담이라는 말 없이 큰 웃음). 그런데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죠. 저는 감독도, 배우도 ‘갑’이라고 생각 안 합니다. 배우는 재료이고, 감독은 재료에 감사함을 느끼는 존재죠. 제가 배역을 줬는데 배우가 영혼을 다 털어 연기하고 촬영장에서 다른 배우, 스텝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지내면 너무 감사하죠. 축구로 보면 감독이 손흥민도 데려오고, 이강인도, 김민재도 영입해오는데 다들 선수에게 고맙다고 하잖아요. 저도 그래요. 정용이는 훌륭한 연기 재료입니다. 장동건, 원빈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소름 끼치는 연기력을 타고난 것도 아니지만 연기 면에서 모자란 부분을 채워가려는 노력과 좋은 인성이 있어요. 겉으로는 강하지만 속은 보들보들한 연두부 같은 사내입니다. 그런 면을 알고 보니 저에게 정용이는 손흥민 선수 같은 재료죠.”
● ‘K-봉사’ 하고 싶은 ‘우리’
같이 작품을 하며 인생 벗으로 지내는 둘은 요즘 봉사도 같이 하느라 정신없다. 둘의 찰떡 의기투합이 없었으면 진행이 안 됐다. 신 감독은 올해부터 자신이 연출을 맡았던 드라마 ‘비밀의 여자’ ‘신사와 아가씨’ 등에 출연한 배우들과 함께 비영리 봉사 단체인 ‘오케이 좋아 연예인 봉사단’을 조직하고 전국 팔도 봉사를 다니고 있다.
회원이 250명 정도인데 이들을 몰고 지역별로 독거노인, 장애인 등 취약 계층을 찾아다닌다. 제공하는 식사 메뉴는 맛깔스러운 짜장밥과 짜장면이다. 짜장밥 차량까지 특별 제작했다. 여기서 그치면 연예인 봉사단이 아니다. 흥겨운 위문 공연과 재능 기부 행사가 곁들여진다. 봉사의 선봉장은 당연 이정용 씨다. 신 감독에 따르면, 이 씨가 봉사단의 이사장으로 행사 시작부터 끝까지 사회 보고 노래 부르고 몸 자랑까지 한다. 봉사 받는 분들이 즐거워서 뒤로 넘어갈 때까지 분위기를 돋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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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봉사 단체를 만들어 위문 공연과 식사 봉사에 직접 나서는 두 사람. 이정용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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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들한테는 각자의 재능이 있잖아. 신이 내려주신 ‘탤런트’라 말하고 싶은데 그 재능을 아주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보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대표적인 사람이 이정용이 아닌가 싶어.”
“어휴. 칼질하면서 음식 만들고 설거지도 하는 배식조 분들(신 감독이 바로 배식조다)에게는 미안하죠. 저 같은 공연조는 오디오 설치하고 노래 부르고 춤추면 그만이니 베짱이나 다름없죠. 저는 놀러 다니는 거예요. 그런데 감사한 건 공연 보시고 즐거워하면서 밥그릇을 전부 비우신다는 거예요. 정말 큰 은혜로 와 닿아요.”
“그건 내면의 열정이 없으면 못하는 일이야. 이정용의 봉사 재능은 신이 내려주신 은총이야. 봉사는 뭐든 기쁘게 받아들이는 그 마음, 내가 너무 존경해.”
TV에 나오는 사람이라고 해서 스포트라이트만 있는 곳만 다니려 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이정용’의 문턱을 계속 낮추고 싶다. 교양 프로그램의 리포터 ‘오만보기(만보기를 차고 1박2일간 오만보를 걷고 세상을 보는 코너 진행)’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한다. 이정용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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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떻게 봉사를 하게 됐을까. 1991년 KBS에 입사한 신 감독은 현재까지 자신이 연출을 맡은 드라마 제작 횟수가 1000회가 넘는다. ‘무인시대’는 158회 제작을 했다. 현역 감독 중에서 제작 편수가 가장 많은 축에 속한다. 조만간 신 감독은 정년을 채운다. 제작은 은퇴 후에도 계속할 계획이다. 회사를 나와서도 작품 구상, 제작 등에 정신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봉사를 계속한다고? 언감생심인데 그래도 소매 걷어붙이고 봉사 현장을 계속 다니겠다고 했다.
“타인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각박한, 영화 ‘아수라’같은 세상이잖아요. 각자도생하기도 힘든, 마음의 여유가 없는 시대에서 재밌는 게 없어요.”
뜻깊은 일을 찾게 된 두 번째 이유가 결정적이다.
“작년 9월인가 경주에 내려갔다가 숙소에서 잠이 안 왔어요. 편의점에서 맥주 한 잔을 사서 마시고 있는데 앞에 거대한 성이 있는데 주차장부터 폐허가 됐더라고요. 제가 호기심이 많아요. ‘저게 뭐지?’ 하면서 성곽 안으로 들어가 봤는데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 왜요?
“‘대왕의 꿈’을 찍을 때 경상북도하고 경주시에서 지원을 받아 지은 촬영 세트장인데 코로나 19 등으로 인해서 완전히 폐허가 된 거라. 세트장 입구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정용이 극 중에서 칼싸움했던 곳도 있거든요. 감이 없어서 촬영지인지도 몰랐는데 알고 나니 너무 섬뜩한 거예요.”
-그날 잠자기 힘들었겠네요.
“신라의 영혼들이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잠이 안 오더라고요. ‘모든 것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구나’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어요. 내 인생은 유한하고, 나도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용도 폐기될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어요. 그러면 ‘남은 평생 무엇을 할 건가’ 되묻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돕는 보람찬 일을 해야겠구나’ 결심이 서게 됐죠. 그 새벽에.”
봉사를 떠올리고 꽂힌 순간, 신 감독 옆에 이 씨도 있었다. 서울에서 경주로 내려가고 다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이 씨와 다른 지인을 통해 도시락 봉사에 대한 여러 아이디어를 얻게 됐고 신 감독은 일사천리로 봉사 일을 추진했다.
“차 안에서 밥차 봉사 얘기를 들은 게 쐐기가 됐죠. 감독님이 ‘나, 이 봉사 할래’라고 하셔서 ‘흘러가는 말로 하셨겠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서울에 오셔서 바로 봉사 준비를 하더라고요. 그 무렵에 제가 다른 봉사 행사를 모시고 갔는데 너무 행복해하셨어요. 그 뒤로 ‘우리가 직접 같이 봉사해보자’라더니 법인 설립 등을 준비하시는 것 보고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했죠. 두 달도 안 돼서 바로 짜장밥차까지 구입하셨어요. 그리고 저를 전면에 세우셨죠. 하하.”(이정용)
어찌 이렇게 좋아하는 표정까지 같을까. 신 감독은 자기가 세상에서 용도 폐기되기 전에 해보고 싶은 봉사에 힘을 더해준 이정용의 ‘당장, 오늘에 몰두하는 집중력’이 존경스럽다. 이정용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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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죽이 잘 맞으십니다.
“감독님은 제가 하는 일에 모터를 달아주시는 것 같아요. 감독이 배우를 분신처럼 아끼는 것을 ‘페르소나’라고 하잖아요.”(이정용)
-‘이정용’이 신 감독님의 ‘인생 페르소나’ 정도 될까요?
“페르소나가 될 겁니다. 봉사의 ‘페르소나’. ‘봉사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를 이름 앞에 붙여도 될 듯요.”(신창석)
둘이 주도하고 있는 봉사는 방향과 목표가 분명하다.
“정용아! 봉사가 쉽고 재밌고, 즐겁다는 걸 세상에 알려주고 싶어. 봉사하는 나도 즐겁고 기쁘다는 것을. 봉사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주고 싶어. 성경 말씀에 ‘자선에 대해서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돼 있는데 나는 오른손이 한 봉사를 왼손도 하라고 많이 알리고 싶어. 네가 앞장서줘라.“
“어떤 책에서 ‘돈을 벌려면 운을 벌어라’는 대목을 본 적 있어요. 봉사도 하면 할수록 운을 버는 거잖아요. 내가 다른 사람을 도우면 그 사람이 저한테 운을 주고, 그 받은 운이 모여 제가 사회에 더 크게 환원할 수 있잖아요. 봉사와 운의 선순환이죠. 봉사는 결국 나를 위해 하는 것일 수도 있죠. 결국 내 자식, 자손한테도 운이 돌아가게 되죠. ‘쓰레기를 줍는 것도 운을 줍는 거다’, 점점 이런 생각이 저를 지배하고 있어요. 감독님도 봉사하시니까 아들(프로바둑 기사 신민준 9단)도 이번 항저우 아시아경기에서 금메달(바둑 단체전) 땄잖아요. 하하. 그래서 감독님과 열심히 봉사할 겁니다.”(이정용)
아들의 노력이 대견하고 ‘뿌린 대로 잘 거두셨다’는 축하 인사를 중간에 안 할 수 없다.
신 감독의 아들로 지난 항저우 아시아경기 바둑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낸 신민준(왼쪽). 신창석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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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의 맛’을 봤으니 진득하게 우러날 ‘봉사의 참맛’은 어떻게 찾을지 궁금하다. 한 번 하고 마는, 의례적인 행사치레 봉사는 하고 싶지 않다. 일관성 있게 추진되는 봉사의 레시피를 만들고 싶다. 국내 사극의 새로운 맛을 찾으려고 일생 도전했던 신 감독은 봉사에서도 확실한 감칠맛을 발견했으면 한다.
“봉사와 엔터테인먼트를 합해 K-드라마, K-팝처럼 ‘K-봉사’를 할 겁니다. 얼마 전에 한국의 봉사 관련 지수를 보다 충격을 받았어요. 한국은 정을 아는 민족 아닙니까. 누구를 도와주거나 기부금을 낸 경험이 있는지 등을 물은 조사였는데 중국, 아프리카 나라보다도 처져 있더라고요. 전 세계에서 거의 꼴찌더군요. 자존심이 무척 상했죠. 우분투(ubuntu·사람들 간의 헌신과 봉사에 중심을 둔 아프리카 전통 윤리 사상)처럼 같이 손잡고 서로 도와주는 한국만의 봉사 문화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했으면 좋겠어요. 또 도와줘. 정용아.”(신창석)
“저도 중년 건강 아이콘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선한 영향력을 퍼트리는 봉사를 감독님과 계속하고 싶죠.”(이정용)
● 캐스팅 거절해도 기분 좋을 ‘우리’
서로 각자의 일에 충실하고 비슷한 위치, 눈높이에서 존경심이 들어야 우정도 더 굳건해진다는 것을 둘은 철석같이 믿는다. 신 감독은 ‘이정용’이 모든 연출자가 캐스팅하기를 원하는 양질의 MSG나 비법 소스 같은 배우로 자리매김했으면 한다. 봉사만 같이 해도 자신의 인생 동생이고 ‘땡큐’다. 물론 자기가 좋은 작품을 만들면 캐스팅 1순위다.
“감독님이 시트콤을 만들면 대박 날 것 같아요. 감독님 삶 자체가 유쾌하니까.”
신 감독의 은밀한 계획을 알아차린 건가. 그래도 특별한 동생이 많은 작품에서 이리저리 불려 다녔으면 한다.
‘자기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서로를 위한 것’이라고 확신하는 두 사람. 각자 더 매력적인 ‘신창석’과 ‘이정용’이 되면서 우정이 더 깊어만 간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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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이와 나, 우리는 캐스팅을 하고 안 하고, 작품에 출연하고 안 하고의 단계를 넘어선 관계인 것 같아요. ‘꼭 같이 작업을 해야 한다’ 것에 의미 부여가 필요없다는 거죠. 이미 마음이 긴밀하게 이어져 있잖아요. 정용이하고는 남은 인생을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가는 사이입니다. 말 다했죠. 정용이한테 ‘너, 나랑 이번에 작품 같이 하자’ 고 했는데 정용이가 ‘스케줄이 많아요. 미안해요’라며 거절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솔직하게 정말 기분 좋을 것 같아요.”
이 씨의 감동 코드를 건드린 모양이다.
“감독님 말이 정답이에요. 서로 힘을 균형적으로 키워가는 관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우정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 입장에서 감독만 쳐다보고 ‘저 사람이 나를 써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만 하고 있으면 좋은 연기자로 발전할 수 없다고 봐요. 연출하는 감독 입장에서도 친한 배우들을 꼭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지나치면 곤란한 상황이 생기겠죠. 저도 신 감독님에게 짐이 돼 폐를 끼치고 싶진 않아요.”
둘은 각자 다른 점을 인정하면서 공유가 안 되는 것도 서로 존경스러워한다. 교집합도 그렇지 않은 부분도 점점 넓어지고 있는 신기한 우정 ‘벤 다이어그램’을 그리면서 산다.
“감독님과 같이 한배를 함께 타고 있는 자체, 그저 어우러짐이 좋습니다. 똑똑한 감독님을 만나서 제 인생이 풍성해지네요. 아! 똑똑하다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감독님은 서울대도 두 번 입학해서 다니셨거든요.”
“그건 아니야. 시대가 어수선했는데 친구들하고 어울려 다니다보니 학사 경고 두 번 맞고 잘린 거지.”
“여기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어떻게 해요. 아이고.”
“잘린 거 아무도 안 믿어. 사람들은 내가 대학 두 번 다닌 이유에 뭔가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있을 것이라고 봐. 하하.”
“어쨌든 두 번 다니신 건 팩트니까요. 제 말은 천재시라는 얘기입니다.”
또 하나 몰랐던 것을 알았다.
누구를 잡고 물어보니 다들 ‘살아보니 인생 별 것 없다’는 말에 열렬히 공감을 한다. 사는 재미가 나이가 들면서 중요하다는데 그 재미는 결국 옆에 사람이 있어야 생긴다. 재미는 인생 방향을 만든다. 둘 사이를 보면 목적지 없이 가는 인생이 보이지 않는다.
“팀 페리스가 쓴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라는 책을 본 적 있어? 이 시대 성공한 사람들의 생활 습관, 태도 등을 소개하고 있거든.”(신창석)
“공통점이 뭔데요?”(이정용)
“아침에 이부자리를 잘 개고, 좋은 생각과 운동으로 아침을 시작한다는 거. ‘미라클 모닝’을 맞는거지. 그러면서 자신을 찾아가고 만들어가는데 시간을 보낸다는 거야. 우리, 더 독특하고 매력적으로 살아가 봅시다.”(신창석)
“감독님이 저의 자기 개발서에요.”(이정용)
둘은 아주 애쓰지 않고 또 뭔가를 시작하고 가능성을 만들어갈 것 같다. 그러니 지금, 우리 당장 만나지 않으면 언제 만나겠는가.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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