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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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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서 다시 만나는 '한류팬 1호'…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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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 산림·문화 보존 힘써…서울국제친선協, 10일 CGV명동 상영회

연합뉴스

서울국제친선협회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지선 기자 = '한국의 산과 민예(民藝)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 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

서울 중랑구 망우리 공원에는 매년 4월이면 추모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묘역이 있다. 이 묘비의 주인은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1891∼1931).

다쿠미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임업연구소에서 일하며, '오엽송(잣나무) 노천매장법'을 개발하는 등 녹화 사업에 헌신한 인물로, 이 양묘법 덕에 일본의 목재 수탈로 황폐했던 조선의 산들은 푸름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다쿠미는 미술 교사였던 친형 아사카와 노리타카(淺川伯敎·1884~1964)와 함께 조선 문화예술 보존에 기여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백자'를 보고 그 담백한 아름다움에 매료된 아사카와 형제는 전국 각지를 돌며 도자기와 공예품을 수집해 '조선민족미술관'을 설립했고, 이 소장품들은 훗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큰 자산이 됐다.

다쿠미는 이 과정에서 '조선의 소반', '조선도자명고'와 같은 책을 펴내는 등 문화재 연구 성과도 남겼다.

직접 도요지와 고물상을 찾아다니며 글·그림으로 세세히 기록한 만큼, 사료로서 상당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서울국제친선협회가 오는 10일 서울 중구 CGV명동에서 상영하는 영화 '백자의 사람: 조선의 흙이 되다'는 에미야 다카유키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다쿠미의 반생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쿠미(요시자와 히사시)와 그의 조선인 동료 청림(배수빈)의 갈등과 화해, 우정을 담아 지난 2012년 개봉 당시 호평을 받았다.

영화 제작 역시 한·일 합작으로 일본의 다카하시 반메이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양국 배우와 스태프가 참여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대부분 한국에서 촬영됐다.

실제로 조선인들을 진정한 친구로 대한 다쿠미는 한글을 배우고 한복을 입으며 박봉을 아껴 조선인을 위해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죽어서 조선에 묻히길 바라며 '장사도 조선식으로 치러달라'는 유언을 남겨, 그가 급성 폐렴으로 40세의 나이에 요절하자 조선인들이 서로 상여를 메겠다고 나설 정도였다고 한다.

다쿠미가 백자를 통해 조선인보다 조선을 더 사랑한 '한류팬 1호'로 거듭난 것처럼 한일 관계가 해빙기를 맞은 지금, 문화가 양국 상호 이해와 협력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영화를 다시 선보이게 됐다고 서울국제친선협회는 5일 설명했다.

형제의 고향인 일본 호쿠토시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추모식 등 한국내 기념사업을 주최하고 있는 협회는 앞으로 정기 상영을 통해 더 많은 관객과 만날 계획이다.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가토 다케시 소장은 "대학 수업을 통해 다쿠미를 처음 알게 됐고, 이 영화를 보고 한국을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됐다"고 밝혔다.

이순주 서울국제친선협회 회장은 "영화 속 주인공들이 가진 양가적 감정과 내적 고민은 지금 우리와도 닮은 꼴이며, 아직 풀지 못한 숙제"라며 "다쿠미의 일대기를 통해 성숙한 국제 시민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sunny1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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