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미래는
영화 ‘팟 제너레이션’에서 레이철(에밀리아 클라크·오른쪽)과 남편은 알을 닮은 인공 자궁 ‘팟’을 이용해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다.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태아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태아에게 들려줄 태교 콘텐츠도 고를 수 있다. /왓챠 |
톰 크루즈도, 명탐정 코난도 이젠 인공지능(AI)과 싸운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AI 악당은 요즘 영화에 단골로 등장한다. 올해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7′의 이선 헌트(톰 크루즈)는 각국 전산망에 침투할 수 있는 AI ‘엔티티’에 맞섰고, ‘명탐정 코난: 흑철의 어영’에선 실종자를 찾기 위해 개발한 AI 안면 인식 기술을 검은 조직이 가로채 코난 일당이 위기에 처했다.
챗GPT 열풍 이후 AI의 일자리 위협이 현실로 닥치면서 AI를 소재로 한 영화가 눈에 띄게 늘었다.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SF 블록버스터 ‘크리에이터’(3일 개봉). 이 영화 역시 AI와 인간의 전쟁을 다루지만, AI가 인간을 공격할 것이란 통념을 뒤집는다.
영화 ‘크리에이터’에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AI 로봇 알피(매들린 유나 보일스·왼쪽)는 인간이 투입한 살인 로봇에 맞서 싸운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인류를 위협할 비밀 무기로 지목된 AI 로봇 알피는 동자승을 닮은 귀여운 아이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알피는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사회를 꿈꾸지만, 특수부대 요원들은 알피를 제거하려 하고 평화롭던 마을을 공격해 쑥대밭으로 만든다.
특수 효과로 배경을 만들어내는 요즘 SF 영화들과 달리 태국·네팔 등에서 촬영한 대자연 위에 승려복을 입은 로봇과 첨단 기술이 결합된 사원 등 SF적인 요소를 입혀 독특한 영상을 구현해 냈다. 개러스 에드워즈 감독은 최근 열린 화상 간담회에서 “베트남 여행 중 승려들을 보다가 ‘저들이 로봇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고, 완전히 새로운 비주얼이 될 것 같았다”면서 “AI를 소재로 삼았지만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적으로 몰아가는 현실에 대한 은유”라고 설명했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 /왓챠 |
같은 날 개봉하는 영화 ‘팟 제너레이션’은 모든 일상을 기술에 의존하는 미래에 대해 경고한다. 영화 속 AI 비서는 매일 행복 수치와 작업 능률을 점검하고, AI 심리상담사는 자녀 계획까지 관리해 준다. 타조알을 닮은 인공 자궁 ‘팟’으로 임신과 출산까지 가능해지면서, 부모는 휴대폰 앱으로 태아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사람이 알에서 태어나는 미래를 코믹하게 그리면서도, 기술이 자연을 대체해 가는 현실을 꼬집는다. ‘마담 보바리’ 등을 연출한 미국 감독 소피 바르트의 세 번째 장편 영화로 올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기발한 과학 기술 영화에 수여하는 앨프리드 P. 슬론 상을 받았다.
요람부터 무덤까지 AI가 관리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지난달 말 개봉한 한국 영화 ‘마인드 유니버스’엔 AI 상조 업체가 등장한다. 온라인으로 열리는 장례식에선 AI 기술로 고인을 아바타로 만들어내고 조문객이 고인과 대화도 나눌 수 있다. 영화 속 캐릭터로 등장하는 ‘작곡가 김형석’도 대역 배우의 연기에 실제 작곡가 김형석의 얼굴을 합성하는 AI 기술 ‘딥페이크’로 만들어졌다. 김경선 프로듀서는 “배우가 아닌 김형석 작곡가에게 대사와 감정 연기를 요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일부 장면을 제외하고 98%는 딥페이크로 구현된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1일(현지 시각) 미국 작가들이 캘리포니아주 버뱅크의 월트디즈니 본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
AI가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된 것은 영화계가 일자리 위협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할리우드에선 이미 인간을 AI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디즈니는 지난달 AI 태스크포스(TF)를 창설하고 자체 기술 개발, AI 스타트업과의 협력 등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넷플릭스 역시 최근 연봉 90만달러에 AI 전문가를 뽑는 구인 공고를 내면서 파업 중인 배우·작가들의 빈축을 샀다.
약 5개월에 걸친 미국작가조합(WGA)의 파업은 AI로 인한 노사 분쟁의 신호탄으로 평가받는다. 지난달 말 노조는 제작사 측과 협상 끝에 AI가 작가의 대본을 편집할 수 없고, 작가에게 AI 사용을 강제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부 보호 조치에도 불구하고 합의안에 따라 제작사들은 작가가 쓴 대본을 AI 훈련에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작가들이 쉽게 저작권을 포기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WSJ는 “할리우드 제작사들은 대본부터 특수 효과, 홍보·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 AI를 도입해 비용을 절감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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