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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없는 K팝 아이돌…미국 현지에서도 통할까

매일경제 정주원 기자(jnw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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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없는 K팝 아이돌…미국 현지에서도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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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P·리퍼블릭레코드 ‘비춰’
6인조 다인종 멤버로 구성

하이브·게펜레코드 ‘더 데뷔’
12개국 오디션으로 20명 선발

K팝 인적구성 세계화 전략
다양성 확대는 긍정적이지만
K팝 정체성 논란도 계속될듯


JYP엔터와 리퍼블릭 레코드가 미국 5개 도시 오디션과 K팝 트레이닝 시스템을 거쳐 함께 선발한 6인조 걸그룹 VCHA(비춰). [사진 출처 = JYP엔터테인먼트]

JYP엔터와 리퍼블릭 레코드가 미국 5개 도시 오디션과 K팝 트레이닝 시스템을 거쳐 함께 선발한 6인조 걸그룹 VCHA(비춰). [사진 출처 = JYP엔터테인먼트]


검은 피부와 곱슬머리를 가진 사바나(17)는 미국에서 7년간 체조 선수로 활동하다 팔꿈치 부상 이후 K팝으로 전향했다. 탄탄한 춤선과 긍정적인 에너지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는 JYP엔터테인먼트와 현지 대형 레이블 리퍼블릭 레코드가 함께 진행한 ‘A2K’(아메리카 투 코리아)의 지난해 뉴욕 오디션과 한국식 트레이닝 시스템, 오디션 방송을 거쳐 최종 데뷔 조에 들었다. JYP에서 새롭게 내놓는 6인조 다인종·다국적 걸그룹 비춰(VCHA)다.

전원 10대인 멤버들은 미국 플로리다에서 온 사바나에 더해 히스패닉계 캐나다 국적인 카밀라, 동남아계 몽족인 렉시, 한국계 케일리 등 출신 배경이 다양하다. 이들은 국내 지상파 음악방송에도 출연하며 정식 데뷔를 준비 중이다. 대형 기획사가 주도하는 K팝 현지화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대중 앞에 선 것이다.

지난 22일 공개된 이 팀의 프리 데뷔 싱글곡 ‘와이 오 유니버스’(Y.O.Universe) 뮤직비디오 유튜브 영상에는 영어·일본어·중국어·러시아어·스페인어 등 여러 언어로 응원 댓글이 달렸다. 박진영 프로듀서는 “모든 참가자들이 너무나 다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특별하다”며 “‘다양성을 통한 통일’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곡”이라고 소개했다.

물론 K팝 시스템의 수출 전략은 이전에도 있었다. 다만 대부분 일본·중국 등 아시아권에 머물렀다. SM엔터의 중국 NCT 보이그룹 웨이션브이(WayV), JYP의 중국 보이그룹 보이스토리와 일본 현지화 걸그룹 니쥬, 하이브 재팬의 보이그룹 앤팀, CJ ENM의 제이오원(JO1) 등이다.

글로벌 걸그룹 선발 프로젝트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를 위해 세계 각국에서 오디션을 보고 결선에 오른 참가자들과 방시혁 하이브 의장(가운데). [사진 출처=하이브]

글로벌 걸그룹 선발 프로젝트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를 위해 세계 각국에서 오디션을 보고 결선에 오른 참가자들과 방시혁 하이브 의장(가운데). [사진 출처=하이브]


최근엔 미국 대형 레이블과의 협업이 두드러진다. 하이브와 게펜 레코드가 합작한 글로벌 걸그룹 오디션 ‘더 데뷔: 드림아카데미’는 세계 12개 도시에서 오디션을 진행하고 6000대 1의 경쟁을 거쳐 결선 참가자 20명을 선발했다. 스웨덴·조지아·벨라루스·브라질·호주·아르헨티나·필리핀·스위스·슬로바키아 등 그동안 K팝 그룹에선 보기 어려웠던 다양한 출신지의 참가자를 자랑한다.

이런 흐름은 우선 K팝에 대한 세계 음악 산업의 높은 관심을 방증한다. 최근 하이브에서 미국 콜럼비아 뮤직으로 옮긴 니콜 킴 부사장은 매일경제와 만나 “JYP와 하이브의 미국 합작은 아직 시도 단계라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라면서도 “K팝 시스템을 통해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같은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나왔기 때문에 많은 음반사가 관심 갖고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형 기획사만의 시도도 아니다. 태국에서 활동하는 4인조 태국인 걸그룹 로즈베리는 지난해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2022 동반성장 디딤돌’ 사업을 통해 춤, 노래, 한국어 등 K팝 트레이닝을 받았다. 한국어가 섞인 곡 ‘버터플라이’를 발표했다.

전원 외국인 멤버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중소기획사 DR뮤직 소속 데뷔 3년 차 걸그룹 블랙스완이 대표적이다. K팝 첫 흑인 멤버, 인도 멤버를 배출한 그룹으로, 한국어로 노래하며 스스로를 ‘K팝 그룹’이라고 칭한다. 올해 4월 데뷔한 에스크로엔터 소속 5인조 걸그룹 엑신에도 각각 러시아·인도 출신 래퍼가 활동 중이다

임희윤 음악평론가는 “K팝이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시장에서 소비되면서 ‘나(소비자)와 닮은 현지인 멤버’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걸 업계가 감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K팝은 음악적 특성보다는 시스템과 인적 구성이 특징적”이라며 “기획사들이 시스템은 유지하되 인적 구성을 혁신하면서 세계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20년 한국에서 데뷔한 다국적 K팝 걸그룹 블랙스완. 왼쪽부터 파투(벨기에)·가비(독일)·스리야(인도)·앤비(미국). [사진 출처=DR뮤직]

2020년 한국에서 데뷔한 다국적 K팝 걸그룹 블랙스완. 왼쪽부터 파투(벨기에)·가비(독일)·스리야(인도)·앤비(미국). [사진 출처=DR뮤직]


앞으로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다채롭게 살려내는 게 숙제로 꼽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앞서 공개된 북미 합작 프로젝트들은 오디션 참가자보다 회사와 프로듀서가 더 강조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기획 의도와 달리 지원자들의 다양한 개성이 일률적인 K팝 시스템 속에서 평면화되는 점도 한계다. 임 평론가는 “K팝의 콘텐츠·브랜드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고 각 기획사의 제왕적 시스템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모호한 정체성에 대한 지적은 최근 업계의 큰 화두다. ‘한국인 멤버가 없어도’ ‘한국 기획사나 제작자가 아니어도’ ‘영어로 노래를 불러도’ 여전히 K팝이라고 부를 수 있냐는 것이다.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는 “K팝의 음악, 퍼포먼스, 프로듀싱, 마케팅 담당자들의 면면을 보면 이제 한국이나 한국인 여부로 ‘K’를 논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짚었다.

K팝을 한 국가의 문화가 아닌, 하나의 산업적 수익 모델로 봐야 한다는 해석도 있다. 차우진 음악평론가는 “K팝은 슈퍼 팬덤을 만들고 음반 판매와 투어·굿즈 판매로 매출·수익을 올리는 구조를 확립했다”며 “이를 미국 등 해외 시장이나 재즈·클래식 등 다른 장르에 적용해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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