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비운의 석탑’ 1975㎞ 돌아 오늘 원주로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 2016년 전면 해체·수리 시작 전 서울 경복궁 뜰에 서있는 모습.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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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년 전 일본인에 의해 무단으로 반출되고, 6·25 때 폭격으로 파손됐던 비운의 석탑이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간다.
문화재청은 보존 처리를 끝낸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부재(部材·석탑을 구성하는 다양한 석재) 31점을 1일 원래 지광국사탑이 있던 강원 원주시로 이송한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에 원주 법천사지에서 뜯겨 서울 명동으로, 이듬해 일본 오사카로 불법 반출됐다가 다시 경복궁으로 옮겨오는 등 무려 1975㎞를 떠돈 끝에 귀향하는 것이다. 지광국사탑을 구성하는 부재는 총 33점이지만, 옥개석(屋蓋石·석탑의 지붕돌)과 탑신석(塔身石·석탑의 몸체를 이루는 돌)은 추가 점검이 필요해 2점을 제외한 31점만 먼저 옮기기로 했다.
그래픽=김하경 |
◇“총 20t 석탑 부재를 안전하게 옮겨라!”
초특급 유물 이송 작전이 시작됐다. 지난달 27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석조복원실에선 국보 석탑 부재들을 안전하게 이송하기 위한 포장 작업이 한창이었다. 부재 하나당 무게가 적게는 수십㎏이고, 거대한 상층기단석은 3t에 달한다. 부재 31점의 총 무게가 20t. 이태종 학예연구사는 “거대한 석조 유물을 옮길 때 가장 중요한 게 움직이지 않게 단단히 고정하는 것”이라며 “부재 하중의 300% 이상을 견딜 수 있도록 제작된 팔레트에 각각의 부재를 올린 뒤 광목천과 타이백지 등 부드러운 천으로 꼼꼼히 감싸고, 자동바를 이용해 고정하고 있다”고 했다. 26일부터 사흘간 포장을 마친 부재들을 무진동 차량 6대에 나눠 싣고 1일 대전을 출발해 원주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으로 옮긴다.
지광국사탑은 고려시대에 나라에서 ‘국사(國師)’ 칭호를 받은 지광국사 해린(984~1070)의 사리를 봉안한 탑이다.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5.2m 석탑으로, 아래 평면이 4각형 양식이다. 탑 전체에 조각한 구름·연꽃·보살·비천상 등 화려하고 이국적인 풍모까지 갖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승탑(僧塔)으로 평가받는다.
지난달 27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원 석조복원실에서 관계자들이 부재별 포장 이송 작업에 한창이다. /신현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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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거리만 1975㎞ 유랑
하지만 우리 문화재 수난사를 대변하는 비운의 석탑이기도 하다. 1911년 일본인 모리 무라타로가 법천사지에서 해체해 서울 명동의 병원으로 옮겼고, 이듬해 다른 일본인 사업가에게 팔려 그의 저택 정원에 전시됐다. 또 다른 일본인에게 팔려 오사카로 불법 반출됐다가 뒤늦게 파악한 조선총독부가 환수 결정을 내려 경복궁으로 이전된 게 1912년 12월이다. 6·25 때 폭격을 맞아 1만2000개 파편으로 조각 났다가 1957년 일일이 붙이고 시멘트로 땜질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땜질 부분까지 떨어지는 등 위험한 상태였다.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앞뜰에 서있던 탑은 2016년 전면 해체·보수 공사에 들어가 5년 만에 보존 처리를 끝냈다.
지난달 27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원 석조복원실에서 관계자들이 지광국사탑 부재별로 포장 이송 작업을 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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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복원 위치는 10월 결정
제 모습을 찾은 석탑을 어디로 옮길지를 두고 문화재계 논란이 계속됐다. 2019년 6월 문화재위원회 결정으로 원주 절터 이전은 확정됐지만, 경내 어느 지점에 놓을지 아직도 정해지지 않았다. 선택지는 두 개다. 법천사지 야외 절터에 탑비와 마주 보고 세워 놓되 보호 시설을 설치하거나, 법천사지 유적전시관 안에 세우는 것이다. 이태종 학예사는 “수리는 끝났지만 야외에서 비바람을 계속 맞으면 훼손이 진행될 우려가 있어서 보호시설 없는 야외 전시는 위험하다”며 “나이 드신 부모를 수술해드렸는데 좋은 시설에서 안정을 취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문화재청과 원주시는 10일 오후 2시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에서 귀향식을 개최한 뒤 복원 위치가 확정될 때까지 상설전시관에서 부재들을 전시할 예정이다.
[대전=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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