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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 (토)

스페인 총선, 우파 연합 과반 실패…극우 세력 한계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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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정당, 물가 등 민생 외면한 채 이념 투쟁에 몰두

한겨레

지난 23일 실시된 총선에서 부진한 결과를 낸 스페인 극우 정당 ‘복스’의 이그나시오 가리가 사무총장이 24일 마드리드에서 총선 결과 분석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마드리드/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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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극우당이 지난 23일의 총선에서 부진을 보이면서 우파·극우 연합의 집권마저 불확실해지자, 유럽 극우 세력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스페인의 극우 정당인 ‘복스’는 지난 23일 총선에서 12.4%의 득표율로 4년전보다 19석 적은 33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복스는 지난 6월까지도 4년전 총선 득표율과 비슷한 15% 수준의 지지율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선거 막판에 집권 여당인 ‘사회노동당’과 좌파 연합 세력인 ‘수마르’의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지지율이 조금씩 하락한 끝에 부진한 선거 결과를 얻었다.

복스의 부진은 유럽 최대의 민생 문제인 물가 폭등 문제를 외면한 채 이민 반대, 반 여성주의 같은 이른바 ‘정체성 정치’에 몰두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치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그룹’의 무즈타바 라만 유럽 담당 이사는 <로이터> 통신에 “국민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개별 이슈는 생활비 문제지만 복스는 정체성 문제에 집중했다”며 “동성애자 권리, 이민자, 카탈루냐 분리 독립 움직임에 맞선 싸움이 복스가 기대하는 만큼의 표를 가져다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민생을 외면한 극우의 이념 투쟁이 광범한 대중의 지지와 신뢰를 얻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복스가 중도 우파인 ‘국민당’과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카스티야이레온주에서 참패한 점도 이런 지적을 뒷받침한다. 복스는 지난 2019년 총선 때 이 지역에서 6석을 챙겼으나, 이번에는 이 가운데 5석을 잃었다. 이 지역은 복스가 ‘대안적인 스페인’의 전시장으로 내세우던 곳이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지적했다.

복스와 국민당이 이 지역에서 추진해온 우파 정책은 그동안 논란과 반발을 불러왔다. 특히, 복스는 지난 1월 임신중단(낙태)을 억제하기 위해 임신중단을 원하는 여성에게 태아의 4차원 영상을 보여주고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려주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여성들과 인권 운동가들의 큰 반발에 직면했다.

복스의 이념 투쟁 여파는 국민당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국민당은 이번 총선에서 33.1%의 득표율로 사회노동당을 제치고 제1당이 됐으나, 복스와 연합하더라도 의회 과반인 176석에 7석이 부족하다. 집권을 위해서는 카탈루냐 등 지역 기반 정당들의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복스가 카탈루냐 분리 독립 세력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지역 기반 정당들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선거에서 패한 사회노동당이 다시 집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극우당의 한계를 보여준 이번 스페인 총선은 유럽 극우 세력의 기세도 한풀 꺾어 놓을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들’을 이끌고 집권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달 복스의 선거 유세 집회에서 한 화상 연설에서 “7월 23일의 ‘보수 애국 대안세력’ 구축은 우리 모두에게 아주 결정적인 순간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멜로니 총리가 스페인 총선의 의미를 한껏 강조한 만큼 극우의 부진이 더 큰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가게 생긴 것이다.

최근 유럽 극우의 상승세는 특정 선거 또는 지역의 상황을 언론 등이 부각시키면서 과장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국 밴더빌트대학의 래리 바텔스 교수(정치학)는 2000년대 초 유럽 우익 포퓰리즘 정당의 평균 지지율이 12~13% 수준이었고 현재는 15% 정도라고 밝혔다. 그는 “우익 포퓰리즘 정당이 약진한 지역에만 선택적으로 관심을 집중한 탓에 포퓰리즘의 부상이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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