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의 나라’마저 두쪽 났다
네덜란드 집권 연정은 뤼터 총리가 이끌고 있는 보수 성향 자유민주당(VVD)을 주축으로 진보 성향 D66, 중도 우파 성향 기독민주당, 기독교 연합당 등 4개 정당이 참여해왔다. 이 정당들은 지난 5~6일 난민 정책에 대해 논의했으나 입장 차이를 극복하기는커녕 극심한 의견 분열로 인한 정권 해체라는 결말을 맞게 됐다. VVD는 한계에 다다른 이민자 수용 시설의 관리를 위해서 난민과 이주민의 유입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진보 성향 정당들이 강력 반발했다. 앞서 뤼터 총리는 전쟁 난민 가족들의 입국을 매달 최대 200명으로 제한하고 이들이 자녀를 데려오려 할 경우 최소 2년은 기다리도록 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내각 총사퇴를 선언한 네덜란드는 오는 11월로 예정된 총선 때까지 임시 내각으로 운영된다. 그동안 난민 정책을 두고 극심한 내홍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민자와 이교도들을 대거 수용하면서 다양성을 발전의 동력으로 삼아 유럽의 경제 강국으로 떠올랐던 네덜란드가 난민·이주민 정책을 둘러싸고 정치적 혼란에 빠져든 지금의 상황이 유럽이 겪고 있는 난민 위기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네덜란드뿐 아니라 난민과 이주민을 포용해온 서유럽 국가들도 잇따라 국경 문턱을 높이고 있다.
8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에게 내각 총사퇴 의사를 전달한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하우스텐보스궁을 떠나고 있다./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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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간 이합집산이 일반화돼 있는 서유럽에서 뤼터 총리가 이끄는 네덜란드 연정은 2010년 출범 후 총선에서 네 차례 승리하면서 가장 안정적인 모델이라고 일컬어졌다. 뤼터 총리는 16년간 재임하고 퇴임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 이어 서유럽 최장수 지도자가 될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왔었다. 그러나 시리아 내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잇따른 정세 불안으로 서유럽에 이주민과 난민이 쏟아져 들어오고 갈등이 격화되면서 장기간 이어진 연정이 종지부를 찍었다.
이번 네덜란드 연정 붕괴 사태가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네덜란드가 서유럽 내에서도 가장 관용적이면서 개방적인 다문화·이민 정책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헌법 1조는 종교·정치성향·인종·성별을 근거로 한 어떤 차별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차별 금지 조항이다. 전통적으로 소수 민족의 권익을 최대한 보장하고 이민자나 난민 등에 있어서도 관용적인 정책을 취해왔다. 전체 인구 중 13%(약 236만명)가 중동·아프리카·중남미 등 비유럽권에서 온 이주민·난민 출신일 정도다. 하지만, 최근 난민 자격이나 영주권 획득 심사 요건을 점차 까다롭게 바꿨고, 외국 유학생을 줄이기 위해 대학 내에서 영어 수업 비율을 줄이는 등 외국인에 대한 문턱을 점차 높여왔다. 이 같은 배경에는 2015년 시리아 내전 위기를 계기로 몰라보게 확산한 국내 반(反)난민·이주민 정서가 있다.
그래픽=김의균 |
뉴욕타임스(NYT)는 “이민자를 대하는 과거 뤼터의 태도는 지금과는 달랐다”며 “그는 반난민 정서가 확산하고 있는 유럽 사회와 네덜란드 여론을 고려해 이민자들에 대한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라고 전했다. 네덜란드 레이덴 대학의 마크 클라센 교수는 “국가 이민 정책이 정치적 이점을 얻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네덜란드의 이런 모습은 과거 이교도와 외국인들을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며 유럽의 경제 강국으로 떠오른 역사의 궤적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네덜란드가 17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해상 강국으로 전성기를 누리고 법학자 휘호 흐로티위스, 화가 렘브란트 등 세계적 명사들을 배출하며 유럽 문화 중심지로 각광받는 ‘황금 시대’를 누린 배경에는 이 같은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가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네덜란드 성장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동력이 이민이다. 1492년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이 ‘신성한 가톨릭 교리를 어지럽힌다’며 유대인들에게 가톨릭 개종이나 4개월 이내 스페인 추방을 명령하는 ‘알람브라 칙령’을 내리자 스페인을 떠난 유대인 상당수가 이주한 곳은 네덜란드였다. 이렇게 들어온 유대계 네덜란드인이 해운·보석가공·금융·무역업에 나서며 네덜란드는 상업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1685년 프랑스 왕 루이 14세가 위그노(프랑스 신교도)의 종교적 자유를 박탈한 퐁텐블로 칙령을 발표하면서 추방된 기독교도를 대거 받아들인 나라도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는 이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 것은 물론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적극 배려했다. 이런 전통에 힘입어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자유롭고 개방적인 나라로 인식됐고, 국제형사재판소·국제사법재판소·상설재판소 등이 있는 ‘세계의 사법 수도’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유럽행 난민과 이주민의 숫자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폭증하고 유럽 각국에 반이주민 정서가 팽배해지면서, 네덜란드도 이를 비켜 가지 못했다. 네덜란드 통계청은 지난해 네덜란드로 들어온 난민은 약 3만5000명으로 전년 대비 44% 증가했고, 올해는 총 7만명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중엔 지난해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 출신 난민들도 포함돼 있다.
민주주의와 보편적 인권을 중시해온 서유럽에서도 각국이 난민·이주민을 겨냥해 속속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 핀란드 정부는 지난해 국경수비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전쟁 중인 러시아와의 국경을 따라 200㎞ 길이의 장벽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스 정부 또한 지난해 8월 튀르키예 접경 지역 에브로스강 일대에 설치돼 있는 약 40㎞ 길이 장벽을 확대하기로 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4월 영불해협을 건너오는 난민 신청자가 늘어나자 이들을 6400㎞ 떨어진 아프리카 르완다로 보내고 르완다에 1억4000만파운드(약 2326억원)를 지불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해 논란이 일었다.
☞네덜란드의 성장 동력 이민
네덜란드 성장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동력이 이민이다. 1492년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이 ‘신성한 가톨릭 교리를 어지럽힌다’며 유대인들에게 가톨릭 개종이나 4개월 이내 스페인 추방을 명령하는 ‘알람브라 칙령’을 내리자 스페인을 떠난 유대인 상당수가 이주한 곳이 네덜란드였다. 이렇게 들어온 유대계 네덜란드인이 해운·보석가공·금융·무역업에 나서며 네덜란드는 상업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1685년 프랑스 왕 루이 14세가 위그노(프랑스 신교도)의 종교적 자유를 박탈한 퐁텐블로 칙령을 발표하면서 추방된 기독교도를 대거 받아들인 나라도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는 이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 것은 물론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적극 배려했다. 이런 전통에 힘입어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자유롭고 개방적인 나라로 인식됐고, 국제형사재판소·국제사법재판소·국제상설중재재판소 등이 있는 ‘세계의 사법 수도’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유재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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