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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가 27억에 한국인교수 뽑은 까닭은

매일경제 원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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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가 27억에 한국인교수 뽑은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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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개발되고 널리 쓰이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초ㆍ응용연구 구분하지 않고, 개발 단계부터 기술의 사업화를 염두에 둔다면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기술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세계 최고의 공과대학으로 평가받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이른 아침부터 강의실을 오가는 학생들로 활기가 넘쳤다. 지난 12일 오전(현지시간) MIT 내 '테크놀러지 스퀘어' 인근 카페에서 정광훈 MIT 신임 교수(34)를 만났다.

정 교수는 지난 5월 MIT에서 조교수 채용 역사상 가장 많은 연구비(250만달러ㆍ약 27억원)를 주고 데려가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뇌를 투명하게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 게재하면서 유명한 과학자로 떠올랐다.

뇌에 있는 지방을 제거하고 투명한 젤리와 같은 '하이드로겔'을 넣어 뇌 속을 투명하게 관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정 교수는 "당시 실험은 쥐의 뇌를 대상으로 한 것인데, 인간의 뇌는 쥐보다 2000배 크고 지방이 5배 많아 이 기술을 그대로 적용하기가 어렵다"며 "인간의 뇌도 투명하게 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다. 그는 "박사후 연구원을 뽑아 함께 연구할 예정"이라며 "특히 벤처를 설립해 관련 연구를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정 교수가 벤처에 관심이 있는 이유는 개발한 기술을 활용하고 싶어서다. 그는 박사과정 시절인 2007년 뇌세포가 300개밖에 안 되는 작은 벌레의 뇌를 보는 기술을 개발했지만 장비가 크고 복잡해 활용되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정 교수는 "기술개발을 하면서 많은 고생을 했는데 논문 한 편 나오고 끝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안타까웠다"며 "그 뒤 연구 초기 단계부터 사업화를 생각하고 연구개발(R&D)을 한다"고 했다.

정 교수는 정부 R&D 예산만으로는 과학자들의 연구 욕구를 충족시키기 힘든 만큼 한국도 미국처럼 '개인투자'가 많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뇌를 투명하게 보는 기술개발에도 개인투자가 참 많았다"며 "한국의 R&D 규모가 작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는 개인투자가 늘어나면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R&D 투자에 '조건'이 포함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혁신적인 연구의 기본 조건은 '남들이 안 한 연구'에 도전하는 것인 만큼 실패를 인정해주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지도를 만든 '휴먼 지놈 프로젝트'의 경우 투자된 1달러당 140달러의 경제적 가치가 창출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휴먼 지놈 프로젝트가 성공할지, 혹은 어떤 결과를 낼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10년간 조건 없는 투자가 큰 성과를 가져왔다.

그는 최근 설립된 기초과학연구원(IBS)의 투자 방식이 파격적이라고 내다봤다. IBS는 연구단장에게 1년에 100억원의 연구비를 주고 연구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 정 교수는 "최근 오세정 IBS 원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며 "한국의 기업이나 개인, 재단 등도 실패를 인정하는 조건 없는 투자로 한국의 R&D 파이를 키우고 혁신적인 연구결과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케임브리지 =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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