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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할리우드 리포트] 인연 그리고 사랑 ‘패스트 라이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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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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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몇 천겁의 인연일까. 셀린 송 감독의 장편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가 주는 여운이다. ‘인연’이란 지극히 한국적인 개념을 영화 속에서 너무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 송 감독은 인연이라는 것, 또 전생을 통해 연결된 연은 훨씬 더 일상적이고 우리의 만남은 모두 인연에서 비롯된다. 전생에 그런 식으로 연결돼 있다고 말한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2023 선댄스에서 선공개됐을 당시 ‘올해 최고의 영화가 될 것’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월드 프리미어로 공식 상영된 제73회 베를린 영화제에서는 스크린데일리 집계 최종 평점 1위를 달렸다. 베를린에서 만난 셀린 송 감독은 “오프닝 시퀀스(첫 장면)를 가장 먼저 썼다. 2019년 뉴욕의 이스트 빌리지에서 함께 살고 있는 미국인 남편과 한국에서 나를 찾아온 어릴 적 친구와의 사이에 앉아 있던 기억이 출발점이었다”고 밝혔다. 영어와 한글로 동시에 시나리오 작업을 한 송 감독은 루이 말레 감독 영화 ‘앙드레와의 저녁 식사’(1981)를 언급하며 “가끔은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와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만으로 영화가 흘러간다. 관객과의 감정적 연결을 위한 의도”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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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뉴욕과 LA의 4개 극장 개봉에서 ‘패스트 라이브즈’는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23만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올렸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96%에 평단과 관객 점수 역시 올 상반기 개봉영화 중 단연코 최고이다.

한국에서 만나 어린 시절을 보낸 두 남녀가 20여년이 흐른 후 뉴욕에서 재회하며 벌어지는 이 영화에 관객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마놀라 다지스 뉴욕타임스 기자는 ‘친밀감과 겸허’를 꼽으며 “우정, 사랑, 후회, 그리고 진정으로 지금 여기 산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친밀감, 인간적 척도와 소박한 풍경이 만들어낸 시각적 화려함이 없는 겸허가 이 영화의 강점”이라고 평했다. 영화 속 노라 아버지의 사무실 벽에 걸린 자크 리베트의 ‘셀린느와 줄리의 보트 여행’(1974) 포스터 외에 셀린 송 감독은 아무런 티를 내지 않는다. 송 감독은 영화 속 주인공 나영처럼 실제로 초등학생 때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고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극작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극작가 시절 케임브리지의 아메리칸 레퍼토리 디어터 무대에 한국 해녀들의 삶과 이민자의 이야기로 연극을 공연해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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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감독은 “노라와 해성은 한국에서 태어나 이민 생활을 했고 한국어 구사를 잘 하는 배우들이 연기하길 원했다. 그레타 리를 가장 먼저 캐스팅했고 유태오를 만났다”고 밝혔다. LA 출신 배우 그레타 리(한국명 지한)는 명문 사립 하버드-웨스트레익 스쿨을 졸업하고 노스웨스턴대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다. 그레타는 주한미군기지의 영화 광고판에 그림을 그렸던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무성영화 시절 할리우드의 아이콘 그레타 가르보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이 영화로 그녀는 그레타 가르보 같은 만인의 연인이 되고 있다.

피천득 수필집 ‘인연’에 나오는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가 떠오르는 영화다. 피천득은 아사코와의 3번에 걸친 만남과 이별을 추억하며,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셀린 송 감독이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 담아낸 노라와 해성의 세 번째 만남은 또 다른 추억이 되고 있다. 하은선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HFPA 회원

문화부 sedailycultu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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