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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이슈 정치권 사퇴와 제명

“편중되고 과격한 음모론” 임명 2시간 만에 민주당서도 사퇴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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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위원장 사퇴, 무슨 일 있었나

더불어민주당이 5일 신임 혁신 기구의 수장으로 영입한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은 임명 9시간 만에 사퇴했다. 당내에선 “이날 하루 동안 총체적 난국의 민주당 민낯이 다 드러났다”는 자조가 나왔다.

이 이사장의 임명은 이날 오전 9시 35분쯤 최고위원회에서 이재명 대표가 공개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혁신위원장 인선에 구인난을 겪은 민주당이 예상보다 빨리 발표한 데다, 신임 위원장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 뜻밖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 이사장은 운동권 출신 진영에서 40여 년 동안 사회운동을 해왔다. 김근태계 인사로 통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 이사장 내정과 동시에 그의 친명 행보 이력과 과거 언론 기고, 소셜미디어 등에서 막말과 음모론에 가까운 의견을 밝힌 게 확인되면서 논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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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더불어민주당 혁신기구 위원장으로 임명된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 /민주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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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백형선


이 이사장은 지난 2월 페이스북에 “천안함은 자폭됐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고, 미국 정보 당국의 용산 대통령실 도·감청 파문이 일었던 5월엔 “아마도 지난 한국 대선에도 이들 미 정보 조직들이 분명 깊숙이 개입하였으리라”라며 대선 조작설을 제기했다. 2020년 3월엔 “코로나 진원지가 미국임을 가리키는 정황들이 속속 밝혀졌다”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막말 논란도 불거졌다. 그는 지난 2월 2일 페이스북에 “대한민국은 윤가 집단으로 복합 위기의 누란에 빠졌다”며 “오직 유일한 길은 하루라도 빨리 윤가 무리를 권력에서 끌어내리는 일뿐인가 한다”고 했다. 2주 뒤인 16일엔 “이재명은 박식, 윤석열은 무식…. 이재명은 깨끗, 윤석열은 더럽다”는 글을 올렸다. 최근까지도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비판하며 윤 대통령 퇴진 요구를 강하게 주장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비명계에선 이 이사장 임명 2시간 만에 사퇴 요구가 나왔다. 홍영표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 이사장은) 지나치게 편중되고, 과격한 언행과 음모론 주장 등으로 논란이 되었던 인물로 혁신위원장에 부적절하다”며 “더 큰 논란이 발생하기 전에 내정을 즉각 철회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했다. 이상민 의원도 페이스북에 “이래경이란 분은 당내 논의도 전혀 안 됐고, 전혀 검증도 안 됐으며, 오히려 이 대표 쪽에 기울어 있는 분이라니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겠다”라며 “황당무계하고 참 걱정된다”고 했다. 당직자들과 원외(院外) 인사들 사이에서도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친명이라는 이유로 임명한 거냐”는 불만이 속출했다. 이 이사장은 야권 원로 그룹과 이 대표의 성남·경기도 그룹 인사 등의 추천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반발 속에서 친명계와 지도부는 이 이사장 임명을 둘러싼 논란을 강하게 방어했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이 이사장 논란에 대해 “수십 년간 꾸준히 우리 공동체를 위한 활동을 하신 분인데, 공당의 혁신위원장이 되면 언어 조절은 충분히 있을 것이라 본다”고 했다. 한 친명계 의원은 통화에서 “이 이사장은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개혁과 혁신을 강단 있게 추진할 수 있는 분이라는 점에서 발탁된 것”이라며 “여기서 물러나면 민주당에 더 이상의 혁신은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이사장도 언론 통화에서 자신에 대한 논란에 적극 해명하며 사실상 ‘정면 돌파’ 기조를 보였다.

하지만 ‘천안함 자폭’ 발언에 천안함 유족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여론이 급격하게 악화하자 민주당은 오후 4시쯤 고위전략회의를 열고 이 이사장 거취 논의에 들어갔다. 결국 이 이사장은 오후 6시 55분쯤 “논란의 지속이 공당인 민주당에 부담이 되는 사안이기에 혁신기구의 책임자직을 스스로 사양하고자 한다”며 사의 표명 입장문을 냈다.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된 지 9시간여 만의 일이다. 그는 “사인이 지닌 판단과 의견이 마녀사냥식 정쟁의 대상이 된 것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역사 앞에 기도하는 심정으로 저로 인해 야기된 이번 상황을 매듭짓고자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본인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역량 있고 신망 있고 그런 분들을, 주변 의견을 참조해서 잘 찾아봐야겠다”고 말했다.

[주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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