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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랜더의 말은 진실이었다. 지난해 벌랜더는 18승4패 평균자책점 1.75(175이닝 185삼진)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점 1.75는 2000년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1.74 이후 가장 낮은 아메리칸리그 기록이었다(단축 시즌 제외). 당시 마르티네스는 28세 시즌이었다.
지난해 벌랜더는 공식 노히터가 없었다. 그러나 총 세 번의 경기에서 5이닝 이상 소화하는 동시에 피안타를 기록하지 않았다. 단일 시즌 5이닝 이상 노히트 경기를 세 차례나 해낸 선수는 지난해 벌랜더가 처음이었다. 토미존 복귀 첫 시즌 동안 지속적으로 관리를 받은 벌랜더는 전성기 못지 않은 위력을 과시했다.
리그 다승왕과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한 벌랜더는 통산 세 번째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1위표 30장을 독식한 만장일치 수상이었다. 커리어에 사이영상을 세 번 이상 받은 선수는 벌랜더가 역대 11번째로, 토미존 수술 복귀 첫 해 사이영상을 거머쥔 선수는 벌랜더가 처음이었다. 모두가 벌랜더의 시간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벌랜더는 네 번째 최고령 사이영상 투수가 되는 것으로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다.
최고령 사이영상 투수
2004 : 로저 클레멘스 (42세 60일)
1978 : 게일로드 페리 (40세 17일)
1959 : 얼리 윈 (39세 267일)
2022 : 저스틴 벌랜더 (39세 227일)
화려하게 돌아온 벌랜더는 계약도 화끈하게 맺었다. 뉴욕 메츠와 2년 8666만6666달러에 계약했다. 연평균 4333만3333달러는 맥스 슈어저와 같은 메이저리그 최고액이었다. 만약 벌랜더가 내년 시즌 140이닝 이상 던지고, 오른팔 검사에서 아무런 이슈가 없다면 3500만 달러 선수 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당연히 벌랜더가 거절할 수도 있다). 전 구단 트레이드 거부권을 비롯해 개인 수상에 따른 보너스도 최대 75만 달러까지 챙길 수 있게 해준 부분은, 메츠가 벌랜더에게 얼마나 극진한 대우를 해줬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벌랜더는 스프링캠프 때부터 경로를 이탈했다. 스프링캠프 등판에서 구속이 떨어진 것이 출발점이었다. 벌랜더는 "포스트시즌이었다면 뛰었을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결국 개막전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과거 코어 근육 수술을 받았던 벌랜더는, 오른쪽 등 윗부분 대원근 통증을 호소했다.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지만, 새로 이적한 팀의 개막전을 놓친 건 여러모로 찝찝할 수밖에 없었다.
메츠는 벌랜더의 복귀를 서두르지 않았다. 이에 벌랜더는 개막 후 약 한 달이 지난 5월 5일에 복귀전을 치렀다. 공교롭게도 상대는 친정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였다. 장소도 메츠의 홈구장 시티필드가 아닌 디트로이트의 홈구장 코메리카파크였다.
이 날 벌랜더는 1회 백투백 홈런을 허용했다. 이후 추가 실점 없이 5이닝 2실점으로 등판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상대 투수 에두아르도 로드리게스의 빼어난 피칭(8이닝 무실점)에 타선이 가로 막혀 득점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첫 등판은 패전을 떠안았다.
벌랜더는 다음 등판에서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했다. 역시나 1회 한 점을 내줬지만, 7이닝을 1실점으로 막고 이적 후 첫 승리를 신고했다. 이 승리는 특별한 의미도 있었다. 이전까지 단 두 번 만난 신시내티에게 승리 없이 1패만을 당했던 벌랜더는 신시내티전 첫 승리를 올렸다. 신시내티는 벌랜더가 승리가 없었던 마지막 구단이었다. 이로 인해 벌랜더는 메이저리그가 30개 구단으로 확대된 1998년 이후 전 구단 승리를 거둔 21번째 투수가 됐다.
지난해 벌랜더는 시즌 5번째 경기를 치른 시점에서 "좋았을 때 감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세 경기에서 8이닝 무실점과 5이닝 무실점, 6이닝 무실점을 질주했다. 남은 등판에서 대량 실점을 두 차례 했지만, 작년에는 좋아진 상태라는 것을 본인이 먼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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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랜더 이닝별 ERA / 피안타율 변화
1~3회 : 7.80 / 0.307 (15이닝)
4~6회 : 2.25 / 0.186 (12이닝)
7~9회 : 0.00 / 0.000 (3이닝)
직전 등판은 투수에게 불리한 쿠어스필드였다. 하지만 그 부분을 감안해도 올해 벌랜더는 확실히 이전 시즌에 비해 불안지수가 높아졌다. 특히 브레이킹 볼의 위력이 뚝 떨어졌다.
이번 시즌 벌랜더의 포심 패스트볼 구속은 큰 차이가 없다. 지난해 평균 95마일, 올해도 평균 94.3마일이다. 포심 피안타율이 지난해 .194에서 올해 .213로 살짝 올라갔지만, 이 미묘한 차이 때문에 포심 구위가 하락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문제는 브레이킹 볼이다. 세컨드 피치 슬라이더는 그나마 버텨주고 있지만, 서드 피치 커브는 심각한 수준이다. 올해 이전 통산 피안타율 .179였던 커브가 현재 피안타율 .353, 피장타율 .706로 배팅볼이 됐다. 표본이 적다고 해도 커브를 던졌을 때 나빠진 타구질도 타자들이 커브를 어렵지 않게 때려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벌랜더도 최근 인터뷰에서 커브의 제구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인정한 바 있다.
지난해 벌랜더는 포심 비중이 50.4%로 가장 높았다. 하지만 포심을 결정구로 사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슬라이더와 커브가 포심을 대신하면서 세 가지 구종이 완벽한 조화를 이뤄냈다. 그런데 올해는 슬라이더와 커브가 맞아나가면서 포심을 결정구로 쓰는 경우가 늘어났다. 벌랜더의 포심은 더 이상 타자들에게 헛스윙을 마음껏 유도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올해 벌랜더는 탈삼진 능력이 감소했다.
2019년 9이닝 당 탈삼진 수가 12.11개였던 벌랜더는 토미존 수술에서 돌아온 지난 시즌도 9.51개를 유지했다. 그런데 올해는 6.60개로 눈에 띄게 줄었다. 2006년 데뷔 시즌 6.00개 이후 가장 적은 기록이다. 지난해 벌랜더의 탈삼진은 브레이킹 볼 지분이 69.2%로 상당히 높았다. 올해는 브레이킹 볼이 통하지 않으면서 탈삼진도 자연스럽게 줄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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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랜더와 라이언의 가장 큰 차이는 체인지업이다. 라이언은 34세였던 1981년에 체인지업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5년 뒤인 1986년에 마침내 체인지업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실제로 뉴욕 메츠 1루수 키스 에르난데스는 스프링캠프에서 라이언의 달라진 체인지업을 보고 "그가 또 다른 주무기를 발견했다는 것이 적으로서 기쁘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라이언은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체인지업을 앞세워 또 다른 전성기를 맞이했다. 1987년부터 4년 연속 리그 최다 탈삼진 1위에 올랐다. 1991년에는 개인 통산 7번째 노히터 경기도 선보였다. 1991년 라이언의 나이는 44세였다. 라이언은 노히터를 달성한 직후 체인지업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
"체인지업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구종이다. 폭발적인 포심이 없는 현재, 나의 포심을 보완해주는 구종이 바로 체인지업이다. 만약 내가 이전처럼 포심과 커브만 던졌다면 오늘 같은 영광은 없었을 것이다. 체인지업이 내가 여전히 포심을 던질 수 있도록 허락해줬다. 만약 내가 체인지업을 던지지 못했다면 나의 포심도 위력을 잃었을 것이다."
벌랜더 역시 체인지업의 필요성을 알고 있다. 그래서 매년 스프링캠프에서 체인지업을 시험해보고 있다. 라이언에게 직접 조언을 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도 실전에서는 체인지업 구사를 주저하고 있다. 최고의 투수가 된 벌랜더에게도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남아 있다.
벌랜더의 위기는 일시적인 현상일까. 슬라이더와 커브가 살아난다면 당장 다음 등판부터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벌랜더가 정말 이 시대의 놀란 라이언이 되려면 또 다른 준비는 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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