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故정주영 회장, 북에 500마리 소 보낸 이유?…금강산 관광의 물꼬 ‘깜짝’ (‘꼬꼬무’) [종합]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OSEN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OSEN=박근희 기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故 정주영 회장이 북으로 500 두의 소를 보냈다.

23일 전파를 탄 SBS 예능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이하 ‘꼬꼬무’)’에서는 남북 관계의 국면을 완전히 바꾼 그 날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정회장은 서산에 가면 축사부터 둘러봤다고. 지프차에 타면 농장을 돌면서 이곳 저곳을 살폈다. 농장을 돌면 막걸리를 딱 두 잔만 마셨다. 정회장은 늘 이렇게 말했다고. ‘내가 원래는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지을 팔자였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정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농사 짓는 법을 배웠다.

어린 시절 정회장은 소를 판 돈 70원을 들고 도망쳤다. 쌀가게에 취직을 했고, 월급은 쌀 한가마니였다. 일을 가르칠 필요도 없이 늘 솔선수범으로 일을 했다. 쌀가마니를 들고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었다. 정회장이 성공하기 전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OSEN

정회장은 아버지가 농사를 짓자고했는데 뿌리친 것에 대한 회환이 있었다. 정회장은 언젠가는 아버지를 위한 농장을 만들고 나도 농사꾼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생겼다고.

소 50두로 시작했던 농장은 어느덧 3500 마리나 되는 소들로 넘쳐났다. 소값이 올라가니 조금 팔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으나 정회장은 단호하게 안된다고 답했다. 이후 정회장은 500두 정도의 소를 북한으로 보내라고 지시를 했다.

정주영 회장은 소들과 함께 걸어서 판문점을 넘겠다며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소는 준비가 됐지만 보낼 수송 차량이 마땅치 않았다. 현대 자동차 공장은 며칠 동안 소를 태울 트럭을 만들었다.

선두로 보낸 소의 이름은 은서였다. 정회장은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설레면서 들뜬 모습을 보였다. 초등학생이 소풍을 앞둔 모습같았다고. 트럭이 가는 내내 실향민들이 배웅을 했다.

OSEN

군사분계선은 들어가는 문은 남한인데 나가는 문은 북한이다. 정주영은 절대로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그 선을 넘었다. 정주영은 “우리 고향쪽으로 가니까 반갑다”라고 말하며 미소를 보였다.

이후 정주영은 금강산 관광의 물꼬를 텄다. 9년 전인 1989년 기업인 최초로 북한을 방문 했다고. 이미 이 때부터 계획을 하고 있었고, 그 뒤로 계속해서 때를 기다렸다. 판문점을 넘어 육로를 통해 가야 금강산도 열릴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2001년 정주영이 타개했을 때 북한 인사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 skywould514@osen.co.kr

[사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화면 캡쳐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