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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尹대통령 “현재와 과거를 경쟁시키면, 반드시 미래 놓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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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20분 생중계… 韓日관계 정상화 설명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국무회의에서 23분간 모두 발언을 하면서 20분(원고지 46장 분량)을 들여 한일 관계 정상화에 나선 배경과 당위성을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만약 우리가 현재와 과거를 경쟁시킨다면, 반드시 미래를 놓치게 될 것’이라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발언을 인용했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과거는 직시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 발목이 잡혀선 안 된다”고 했다. ‘제3자 변제’ 방식의 징용 배상 해법을 공식 발표하고 한국 정상으로는 12년 만에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정상회담 한 것이 미래로 가기 위한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우리 사회에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했다. “굴욕 외교”라는 야당 공세를 국민 직접 설득으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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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지금 우리는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한일 관계 정상화는 결국 우리에게 새로운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그래픽=양진경


윤 대통령은 이날 TV로 생중계한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2011년 이명박 대통령 방일을 마지막으로 양국 관계가 악화 일로를 걸어온 과정과 한일 관계 정상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배경을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2년간의 한일 관계를 “파국 일보 직전”이라고 진단했다. 그 원인은 전임 정부의 ‘방치’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출범한 화해치유재단은 문재인 정부 때 해체되고, 2018년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로 양국이 상호 무역 보복 조치에 나서면서 파국으로 치달았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저 역시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편한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저마저 적대적 민족주의와 반일 감정을 자극해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 한다면, 대통령으로서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작년 5월 취임 이후 존재마저 불투명해져 버린 한일 관계 정상화 방안을 고민해왔다”면서 “마치 출구가 없는 미로에 갇힌 기분이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그럼에도) 미·중 전략 경쟁, 글로벌 공급망 위기, 북핵 위협 고도화 등 우리를 둘러싼 복합 위기 속에서 한일 협력 필요성은 더 커졌다”고 했다. 한국이 마주한 경제·안보 복합 위기에 과거에만 얽매일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윤 대통령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발언과,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선언도 언급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빈곤 극복이란 숙제를 풀어야 했던 박정희 대통령과, IMF 극복 과제를 마주한 김대중 대통령은 한일 협력의 길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 지도자”라며 “윤 대통령도 위기 극복을 위해 양국이 협력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독일과 프랑스가 양차(1·2차) 세계대전을 통해 수많은 인명을 희생하면서 적으로 맞서다 전후 전격적으로 화해했고, 이제는 유럽에서 가장 가깝게 협력하는 이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마무리 발언에서 “어느 마을에 두 집안이 담장 없이 잘 지내다가 불화가 생겨 담을 쌓았는데, 한쪽이 먼저 담장을 허물면 사람들은 ‘담장을 허물지 않은 집안 때문에 불화가 있었구나’라고 생각하지 않겠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담장을 허문 쪽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취지다.

윤 대통령은 “양국 관계 개선에 따라 안보·경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의 시너지가 클 것”이라면서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에 일본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을 유치하는 방안, 액화천연가스(LNG) 분야 협력, 국제 시장 공동 수주 등을 꼽았다. 윤 대통령은 “일본을 당당하고 자신 있게 대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현명한 국민을 믿는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직전까지 원고를 다듬었다고 한다.

[최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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