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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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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정년이’ 창극과 완벽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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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여성서사에 Z세대 전폭적 지지

캐스팅 공개 이전부터 전회차 매진 화제

남인우 연출가 “관전 포인트는 소리열전”

이소연·조유아 “소리꾼에게 각별한 작품”

헤럴드경제

이보다 ‘완벽한 만남’은 없다. 국립창극단과 웹툰 ‘정년이’가 만났다. 여성국극단을 배경으로 여성 소리꾼들의 연대와 성장을 그린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남인우 연출가(오른쪽)는 국립창극단의 간판 스타인 이소연(가운데)과 조유아를 나란히 캐스팅했다. 임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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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1956년 8월, 한국전쟁 직후로 되돌아간다. 전남 목포의 한 시장통. 어린 동생을 옆에 누이고, 땀을 뻘뻘 흘리며 조개를 팔고 있는 열여섯 소녀가 있다. 소리 한 자락 들려주고 조개 더미를 팔아치우는 ‘생활의 달인’.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지만, 유전자는 빼어났던 정년이는 여성국극단의 공연을 보고 소리꾼의 꿈을 키운다.

“소리를 시작할 때, 변성기 과정에서 목을 혹사해 소리를 그만뒀을 때, 다시 소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창극단을 꿈꿨을 때.... 그 모든 날들 동안 저 역시 정년이었어요” (이소연)

이보다 ‘완벽한 만남’은 없다. 국립창극단과 웹툰 ‘정년이’가 만났다. 여성국극단을 배경으로 여성 소리꾼들의 연대와 성장을 그린 작품이다. 국립창극단의 간판 스타인 이소연·조유아는 나란히 정년이 역할에 캐스팅됐다.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웹툰을 뛰어넘는 감동이 올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무대의 미학...‘정년이’ 어떻게 달라졌나=국립창극단 61년 역사상 이런 관심은 없었다. 캐스팅 공개 이전부터 전회차 매진을 기록했고, 개막 전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오르내리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평점 9.97점. 웹툰 ‘정년이’는, 지금은 유명무실해진 여성 국극을 소재로 당대 소리꾼들의 성장을 담아낸다. 특정 시대의 이야기를 넘어 여성 소리꾼들의 성장과 우정, 연대를 그렸다는 점은 젠더 감수성이 짙은 Z세대(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이유다.

남인우 연출가는 “1950년대 후반, 전쟁 이후 남성지배적 사회에서 소수자, 비주류로서 억압과 억울함을 뚫고 나오는 여성의 성장 서사가 지금의 1020세대에게 유효하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라며 “이러한 반응이 여성 서사 작품에 대한 요구이자 응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37화 분량의 방대한 서사는 50여 곡의 판소리를 입은 무대 언어로 다시 태어났다. 창작 판소리 ‘사천가’, ‘억척가’로 호흡을 맞춘 남인우 연출가와 이자람 음악감독이 다시 한 번 만났다. 남 연출은 극본 작업도 진행했다. 그는 “웹툰에선 버리기 아깝고 안타까운 인물들의 서사가 너무나 많았다”고 말했다. 시간의 압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판소리적 어법’이었다. 판소리 안에서 자유로운 생략과 은유, 과장의 기법이 무대 위에서 빠른 호흡으로 채워진다. 원작을 과감하게 덜어낸 것이 인상적이다.

남 연출가는 “빠져나간 서사를 어떻게 하나의 이미지로 전환할 것인지, 긴 이야기를 음악 안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 지를 고민하며 작업했다”고 말했다. 최고의 관전 포인트는 웹툰에선 들리지 않았던 창극 배우들의 ‘소리 열전’이다. 이소연은 “텍스트로만 보던 이야기에 생생한 소리가 입혀지는데 어떻게 반하지 않을 수 있겠냐”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극중극 형식으로 다시 태어난 ‘춘향전’, ‘자명고’, ‘쌍탑전설’은 서사를 뛰어넘는 ‘짜릿한 쾌감’이 들게 하는 장면들이다.

매체가 달라지는 만큼 웹툰과 창극은 완전히 같은 이야기가 될 순 없었다. 캐릭터나 장면, 결말 등의 변화는 필연적이었다. 일부 인물은 원작과 달리 ‘다른 기능과 역할’ 수행하기도 한다. 일례로 원작 속 정년이의 노래 선생님 패트리샤는 남성으로 바뀌었다. 당시 여성의 위치를 보여주기 위해선 남성의 지배적 분위기를 담아낼 필요가 있었다는 게 남 연출가의 판단이다.

“다만 그 시대에 여성국극이 가진 예술적, 사회문화적 갈증이 정년이라는 인물을 통해 어떻게 여성 서사로 만들어졌는지 무대 언어로 재현하겠다는 생각은 확고히 남겨뒀어요. 판소리를 입은 생생한 음악, 무대 언어가 가진 생략과 압축, 극장이라는 하드웨어가 가진 미장센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남인우)

▶두 창극 배우가 같은 역할로...“우리 모두 정년이”=달라도 너무 다르다. ‘춘향’부터 ‘옹녀’까지, 국립창극단의 여주인공 역할을 도맡았던 이소연과 ‘향단’부터 ‘외계인’, ‘뱀장어’까지 감초 역할을 해온 조유아가 한 인물을 연기한다. 남 연출가는 “이렇게 다른 두 배우가 하나의 캐릭터를 보여줄 때에도 이야기가 보편성을 가질 수 있을지 궁금했다”며 “두 사람 본연이 가진 캐릭터, 목소리 등 모든 것이 전혀 달라 선택했다”고 말했다.

창극단 배우들에게도 이 작품은 각별하다. 이들 모두가 곧 ‘정년이’이기 때문이다. ‘좋은 소리꾼’을 꿈꾸며 더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일평생 달려온 점이 극중 정년이의 모습과 닮았다. 2013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어느덧 11년차. 이소연의 삶도 그렇다.

“‘춘향’ 공개 오디션을 본 뒤 첫 대본 리딩날이었어요.” 2010년 객원 단원으로 선 무대였다. “대사, 소리, 연기, 동선까지 모든 선생님들이 두 세달을 한 것처럼 연습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더라고요. 동대입구 역까지 걸어 내려가며 제 자신이 너무 못나 보여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정년이처럼 더 잘하고 싶어 욕심을 내고, 더 열심히 했던 때였어요” (이소연)

진도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유학한 조유아에게 ‘목포 소녀’라는 정년이의 한 줄 수사는 ‘공감의 키워드’였다. 하루에 네다섯 시간씩 연습하고, 힘든 길이라고 만류하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우겨가며 소리꾼의 꿈을 지킨 그였다. 그의 부친은 전남 무형문화재 제40호 조도닻배노래 예능보유자 조오환이다.

“목포에서 서울로 올라온 뒤로 시골 소리 한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어요. 시김새가 진하고 구성진 느낌의 소리죠. 정년이도 목포소녀이다 보니, 국극단에 들어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것 같더라고요. (웃음) 이 작품을 통해 저 역시 정년이처럼 성장할 것 같아요” (조유아)

웹툰 ‘정년이’와의 만남으로 국립창극단은 딱 맞는 옷을 또 한 벌 찾았다. 창극단의 강점인 단원들의 소리와 연기를 녹이면서, “여성 소리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색다른 캐릭터로 보여줄 수 있는 작품”(남인우)이다. 웹툰의 화제성과 함께 이 작품을 계기로 창극단에도 기존 관객이 아닌 새로운 관객층이 유입되고 있다.

“판소리가 시공간에 상관없이 모든 이야기를 담는 것처럼, 창극도 시대의 구분없이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 있고, 웹툰을 비롯한 다양한 소재를 품을 수 있어요. 어떤 이야기든, 어떤 소재든, 어떤 시도든 할 수 있어요. ‘정년이’를 통해 동시대, 동세대와 더 많은 소통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이소연)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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