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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의 처절한 실패는 한국 야구를 또 한 번 반성의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 익숙한 그림이다. 2013년 WBC에서 1라운드에 탈락했을 때 그런 목소리가 있었다. 2013년보다 더한 충격이었던 2017년 WBC 탈락 당시에도 지금과 분위기는 똑같았다. KBO와 대표팀, 구단들은 반성한다고 했고,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뒤로 제대로 추진된 사업은 없다.
아마추어 야구에서 문제를 찾는 프로야구계의 시선도 6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다르지 않다. 아마추어에서 기본기 훈련을 제대로 시키지 않으며, 성적 지상주의 탓에 선수들의 재능 발현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매번 국제대회에서의 실패 때마다 나오는 ‘알루미늄 배트’는 역시나 이번에도 화제였다. ‘아마추어부터 문제가 있기에 현재 프로도 문제가 있다’라는, 아마추어에 ‘책임’을 전가하는 대표적인 아이템이다.
알루미늄 배트는 반발력이 나무배트에 비해 세다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타자들이 더 호쾌하게 방망이를 돌리고, 그 과정에서 선수들의 스윙도 완성된다는 주장이 상당히 많다. 타구속도가 빨라지니 수비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투수들도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더 강해진다는 논리다. 아예 일리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 야구의 실패 원인을 오롯이 배트에서 찾는 건, 정신력 타령을 하는 것처럼 너무 궁색하다.
일본이나 미국도 알루미늄 배트를 쓰지만, 국제 대회에서는 15세 대회까지만 알루미늄 배트를 쓴다. 15세 이하 대표팀에서 쓰는 알루미늄 배트의 반발력 또한 사실 나무 배트와 그렇게 큰 차이는 없다. 규정에 정해진 수준 이상의 반발력을 가진 알루미늄 배트는 쓰지도 못한다. 나무배트에 비하면 가볍고, 스윗스팟이 넓기에 공격적인 스윙이 가능한 것이지 반발력의 문제는 아니다. 비싸지만 잘 부러지지 않아 비용이 덜 든다는 장점이 차라리 설득력이 있다.
나라마다 상황은 다르다. 우리가 자주 참고로 하는 일본의 경우는 선수 보호를 위해 아예 반발력을 줄인 알루미늄 배트를 2024년부터 전면적으로 도입한다. 이른바 ‘날지 않는 배트’다. 쿠바 출신인 SSG 외국인 선수 기예르모 에레디아는 “쿠바도 중학교까지만 알루미늄 배트를 쓴다. 그 이후로는 나무 배트다”면서 “미국에서는 일부 컬리지 단계까지 알루미늄 배트를 쓰는 경우는 있지만, 어차피 프로에서는 나무배트를 써야 하기 때문에 나무배트로 연습을 한다”고 설명했다.
배트가 문제가 아닌, 인프라와 지도자들의 ‘코칭 기법’이 문제라는 의견이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다. 일본야구가 근래 들어 급격하게 구속을 끌어올리고, 세계 정상의 레벨에 한걸음 더 다가선 원동력은 일부 인사들이 말하는 ‘정신력’이나 ‘훈련량’과는 거리가 있다. 일본도 예전처럼 운동량을 가져가지 않는다. 반대로 트래킹시스템, 바이오메카닉스, 멘탈 프로그램 등 미국에서 첨단 기술을 받아들이고, 그 첨단 기술을 선수들에게 접목시키는 다양한 코칭 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더 큰 몫을 했다.
돈도 있고, 공부하는 지도자들도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일본 야구의 저력은 그 돈을 댈 수 있을 정도로 인프라가 풍부하고, 그 데이터를 읽을 수 있는 지도자들의 내공이 30년 넘게 쌓였다는 것에 있다. 반대로 한국 고교야구는 제대로 된 트래킹 데이터 시스템 하나 구비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하다. 그러다보니 여전히 지도자들은 ‘감’에 의존한다. 데이터를 보고 공부를 하고 싶어도 그런 여건이 안 된다는 게 일부 지도자들의 한탄이다. 학교 다닐 때 야구만 했던 친구들은 사회에 나가 대다수 어려움을 겪는다. 6년 이상의 야구 경험이 그대로 사라진다. 일본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세나 18세 이하 대표팀의 성적은 성인 대표팀보다 훨씬 낫다. 적어도 성인 대표팀처럼 국제대회에서 1라운드 탈락을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유망주는 계속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선수들의 체격과 원초적인 힘은 10년 전에 비해 훨씬 더 강해졌다. 이 때문에 아마추어를 지원할 정도의 파이를 만들지 못하고, 유망주도 키우지 못하는 건 오히려 프로의 책임이 더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마야구를 비판할 때 항상 쓰이는 ‘성적 지상주의’라는 단어는 프로도 자유롭지 않다. 어린 선수들을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심은 이미 실종된 지 오래다. 탓을 하기보다는, 지금은 장기적으로 아마추어를 어떻게 지원하고 프로의 육성 시스템을 어떻게 이어 나가 연속성을 만들 것인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 어차피 인구는 줄고, 예전과 다르게 ‘할 것이 많아진’ 아이들과 ‘아이들이 힘든 것을 싫어하는’ 부모들은 야구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잘 진단해야 해법도 올바르게 나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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