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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독일 전설, 역대급 스타'...클린스만, 이름값만큼만 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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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풋볼] 신동훈 기자 = 대한민국 사령탑이 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누구보다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냈다.

대한축구협회(KFA)는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새 사령탑에 독일 출신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했다. 계약 기간은 3월부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캐나다-멕시코-미국) 월드컵 본선까지 약 3년 5개월이다. 연봉은 양측 합의에 따라 밝히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음주 중에 입국하여 국내 거주를 시작하고 3월에 콜롬비아와의 A매치에서 감독 데뷔전을 치른다"고 공식 발표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 후임으로 지명된 클린스만 감독은 20세기에 큰 족적을 남긴 스트라이커다.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을 시작으로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 울리 슈틸리케 감독 등 스타 플레이어 출신 감독들이 한국을 거쳐갔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그 중에서도 최고다. 슈튜투가르트에서 경력을 시작한 클린스만 감독은 공식전 186경기 94골을 터트리며 독일 분데스리가 최고 선수로 떠올랐다.

인터밀란으로 향했다. 인터밀란에서 로타어 마테우스, 안드레아스 브레메와 게르만 삼총사를 구축해 라이벌 AC밀란의 오렌지 삼총사(루드 굴리트, 마르코 반 바스텐, 프랑크 레이카르트)에 대항했다. 인터밀란에선 123경기 40골을 기록한 클린스만 감독은 AS모나코를 거쳐 토트넘 훗스퍼로 향했다.

낯선 잉글랜드 무대에서 클린스만 감독은 1994-95시즌 리그 41경기 20골 11도움을 올려 찬사를 받으며 각종 개인 수상을 휩쓸었다. 토트넘 시절 활약을 바탕으로 분데스리가 최강 팀인 바이에른 뮌헨에 입성했고 2시즌간 84경기 48골을 기록한다. 이후 삼프도리아를 갔는데 적응을 못해 겨울 이적시장에 토트넘으로 임대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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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토트넘에서 클린스만 감독은 강등 위기에 빠진 팀을 구해냈다. 리그 15경기에 나서 9골을 넣었는데 모두 순도가 높았고 토트넘은 잔류했다. 토트넘 팬들은 몇 경기를 뛰지 않았지만 엄청난 임팩트를 남긴 클린스만 감독을 레전드라고 칭송했다. 토트넘 시절을 끝으로 축구화를 벗었다.

독일 대표팀에서 활약도 대단했다. 108경기에 나와 47골을 기록했다. 미로슬라프 클로제, 게르트 뮐러, 루카스 포돌스키, 루디 푈러에 이어 독일 역대 최다 득점 5위다. 1990 월드컵, 유로 1996 때도 함께 했다. 클럽, 대표팀 커리어가 대단했기에 개인 수상 경력도 좋다. 1995년엔 발롱도르 2위, FIFA 올해의 선수 3위에도 올랐다.

'금발 폭격기'로 불린 클린스만 감독의 선수 시절 커리어는 한국 지휘봉을 잡았던 어떤 외국인 감독들보다 압도적이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 감독의 장점은 큰 무대 경험이 많고 선수 통솔, 라커룸 장악에 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은퇴 이후엔 독일, 미국에서 대표팀 감독 경험을 했고 바이에른 뮌헨, 헤르타 베를린에서 클럽 감독 경력을 쌓았다.

헤르타를 떠난 후 3년 만에 현장 복귀다. 역대급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긴 하나 지도자 커리어는 비교적 아쉬워 우려가 큰 건 사실이다. 선수 시절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그라운드를 누비며 골을 넣어주며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빠뜨렸던 것 같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는 시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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