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같이 일하는 분들의 연령대가 높아지면 부담스러워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출산 시대에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옥상옥’ 구조만 높아지는 셈이죠.”(국내 IT기업에 다니는 20대 여성 A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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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시대를 맞아 기업 구성원의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임직원 내부의 세대 간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정년연장에 따른 세대 간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수평적 조직문화 확산 기조에도 이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불쾌감을 표시하는 구성원이 나오면서 조직문화 정체에 따른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년연장 찬반 박빙…일자리·연봉 문제 해결 시급=최근 직장인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진행된 정년연장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50명 중 51.9%가 70세까지 정년연장에 찬성하고 나머지 48.1%는 이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년연장에 대한 찬반 의견이 박빙으로 갈린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정 정년은 만 60세다. 정년이 기존 60세에서 65세 이상 늘어나는 데 우호적인 입장은 ‘급격한 노동인구 감소에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달았다. 반면 정년연장을 반대하는 이들은 일하지 않고 자리만 차지한 40~50대 인력들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국내 디스플레이 관련 A사에 다니는 30대 임모 씨는 “정년연장 논의를 하는 이들이 모두 젊은 세대가 아닌 기존 세대이기에 젊은 세대의 의견이 배제되는 것도 문제”라며 “정년연장이 청년일자리를 빼앗고, 나이 든 ‘월급 루팡(맡은 직무는 제대로 안 하면서 월급만 받는 직원)’을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저출산 시대가 되면서 국내 직장인들에게 정년연장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은 생산연령인구 감소폭이 가파르다. 15∼64세 생산연령인구는 2021∼2030년 357만명 감소하지만 2031∼2040년에는 529만명이 줄어들 전망이다. 생산연령인구의 감소는 노동력 부족으로 이어져 성장 둔화까지 부추길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년연장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런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반감이 높다는 분석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정년연장이 필요하다’(다소 동의 46.1%, 매우 동의 37.4%)는 답변이 80%를 웃돌았지만 20대의 동의 비율은 전 세대 중 가장 낮았다.
청년들의 일자리 신규 부족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해 12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정년연장 수혜 인원이 1명 늘어나면 채용되는 정규직 근로자도 거의 1명 감소한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호부호형’보다 어려운 호칭 파괴…수직관계 지켜야=기업들이 수평적 문화 강화를 위해 직급 폐지와 호칭 통일을 급속화하고 있지만 내부 마찰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달 초 삼성전자는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위해 직원 간에만 적용하던 ‘수평 호칭’을 경영진과 임원으로 넓히기로 하고 사내에 공지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경영진이 참석하는 타운홀미팅이나 간담회, 임원회의 등에서 JY(이재용 회장), JH(한종희 부회장), KH(경계현 사장) 등이 자주 쓰일 전망이다.
국내 대기업 중에선 CJ그룹이 가장 먼저 호칭·직급 파괴를 시도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CJ는 서로를 ‘님’이라고 부른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역시 ‘재현님’으로 불린다. CJ그룹은 호칭 파괴에서 더 나아가 2021년 임원 직급을 ‘경영리더’로 통합하는 실험을 단행했다.
다른 업종에 비해 조직문화가 보수적인 자동차, 조선, 정유 등 중후장대 기업 움직임도 활발하다. 현대차그룹은 2019년부터 5단계였던 직급을 ‘매니저’ ‘책임매니저’ 등 2단계로 축소, 통합하고 승진 연차를 폐지했다. 현대중공업그룹도 과장, 차장, 부장의 구분을 없애고 ‘책임’ 직급으로 일원화했다.
LG전자는 직급을 ‘사원, 선임, 책임’ 3단계로 줄이고, 호칭도 ‘선임님’ ‘책임님’ 등으로 부른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부터 사내 구성원 간 호칭을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르는 것으로 통일했다. 보수적인 문화로 정평이 난 금융권에도 직급 파괴 바람이 분 바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2021년 직위 체계를 팀장-팀원으로 간소화하고, 호칭은 개개인의 개성을 살려 자유롭게 선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실험이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최근 한 국내 대기업에서는 ‘님’을 붙일 때 이름이 아니라 ‘성+이름’에 붙이라는 공지를 내놨다. 해당 회사에 다니는 30대 여성 김모 씨는 “‘님’ 자를 붙이되 성 없이 이름 뒤에 붙이면 예의 없다는 얘기를 듣는다”며 “수평문화 안에 또 다른 수직적 상하관계가 있는 기분”이라고 비판했다.
직급 폐지에 신중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화그룹은 2012년 직원 간 호칭을 '매니저'로 통일했지만 2015년 기존 직급 체계로 복귀했다. 대외업무 당시 책임이 불명확해지고 다른 회사와 업무를 할 때도 호칭에 따른 혼선이 적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일각에선 연차가 10년 이상 나거나 나이가 많으면 ‘님’으로만 부르기 쉽지 않아 사내 메신저로만 소통하게 됐다는 부작용을 호소하기도 한다. 국내 자동차업계에 일하는 30대 윤모 씨는 “소설에서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등 호부호형하지 못해 답답해하던 마음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특히 중장년층이 비대해질수록 이 같은 수평문화 정착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분석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전체 산업적으로 보면 수직적 직급·호칭문화가 여전하다”며 “정년연장 논의가 지속되고 임직원 나이도 지속적으로 높아지면서 수평문화로 전환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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