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네 쿠셀라 핀란드 국방부 국방정책국장 인터뷰
10일(현지시각) 얀네 쿠셀라 핀란드 국방부 국방정책국장이 <한겨레>와 인터뷰 한 뒤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헬싱키/ 노지원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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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러시아와 가장 긴 국경(약 1340㎞)을 접한 핀란드는 냉전 시기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방과 소련을 맹주로 한 동방 사이의 ‘낀 나라’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비동맹 노선을 택한 것은 치열한 대결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정학적 “생존 전략”이었다. 그랬던 핀란드가 지난해 5월 서방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전격 가입하겠다고 선언했다. 80년 가까이 이어져온 ‘중립 전략’을 공식 폐기한 것이다. 왜일까. <한겨레>는 10일(현지시각) 얀네 쿠셀라 핀란드 국방부 국방정책국장을 만나 지난해 2월24일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핀란드를 둘러싼 안보 지형을 어떻게 바꿨는지 물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뒤 핀란드의 안보 인식은 어떻게 바뀌었나?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크림반도)를 공격했다. 지난해 2월 더 큰 규모의 전쟁이 유럽 땅에서 시작됐다.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상당히 공격적이고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유럽, 특히 북유럽의 안보 환경이 악화했다고 결론지었다. 핀란드처럼 작은 나라는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해야 한다.”
―핀란드 정부가 안보 분야에서 도입한 구체적인 조처는?
“그동안 우리가 국방 분야를 잘 관리해온 터라 큰 ‘개혁’같은 것은 없다. 핀란드는 줄곧 징병제를 유지해 온, 유럽에서 몇 안 되는 나라다. 핀란드는 상당히 큰 규모의 전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전체 병력의 95%가 민간인으로 구성돼있다. 예비군이 90만명, 전시 전문 병력은 28만명이다. 군의 훈련을 더 강화하고 예비군에 대해서도 이러한 훈련 빈도수를 더 늘리려고 한다. 이에 더해 최근 탄약과 미사일, 예비용 장비 등을 많이 구매하고 있다. 군사 장비에 대한 유지·관리에도 더 힘쓴다. 외국에서 무기를 수입하는 조달 계획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예컨대, 우리 공군의 주력 전투기는 오늘까지도 1991년 조달한 F-18이다. 이게 점점 낡아지고 있다. 지난해 미국산 F-35A 전투기 수입을 결정했다.”
―핀란드의 안보에 러시아는 어떤 의미였고, 전쟁 뒤 어떻게 바뀌었나?
“러시아는 인구 550만의 핀란드와 달리 인구가 1억4천여만명이나 된다. 시간대가 11개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핵보유국이다. 러시아는 2021년 말 유럽 각국 정부에 서한을 보냈다. 러시아는 더 이상 유럽에서 비동맹 국가들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오직 러시아의 영향권, 그리고 러시아가 말하길 ‘미국 영향권’이라고 부르는 사실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만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조지아와 같은 비나토국을 어떻게 대하는지 봤다. 우리의 입지가 엄청나게 좁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가 지난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에는 그런 나라와 더는 정상적인 관계를 맺길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가 오랫동안 군사적 비동맹국으로 유지해온 안보, 국방 정책이 180도 바뀌는 순간이었다. 결국 스웨덴과 함께 나토 회원국에 가입하기로 결정했다.”
―핀란드 국내 여론도 나토에 가입하자는 쪽인가?
“완전히 그렇다. 수십 년 동안 같은 시민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전쟁 전에는 핀란드 시민의 20% 정도만 찬성했고 약 40% 정도는 강하게 반대했다. 이런 여론이 지난해 극적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나토 가입을 강하게 지지한다. 정당도 모두 가입을 찬성한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시민들 87%가 나토 가입에 찬성하고 있다. (핀란드 공영방송 <윌레>(YLE)가 지난해 5월9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5월4∼6일 진행된 조사에서 응답자의 76%가 나토 가입에 찬성했고, 반대 의견은 12%였다.) ”
―나토 회원국의 지위가 핀란드 안보에 기여하는 부분은?
“가장 큰 요인은 억제 효과다. 군사적 힘을 가지려는 가장 큰 이유는 군사력을 써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나토 가입 여부에 따라) 핀란드의 군사적 억지력에는 커다란 차이가 생긴다. 우리의 방어력이 더 나은 위치에 놓일 것이다. 핀란드가 작은 나라로서 홀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다른 31개 유럽 각국 및 미국·캐나다와 함께하는가에는 큰 차이가 있다. 물론 우리도 강력한 군사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나토에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사실 1995년 중립을 포기하고 유럽연합에 가입할 때 이와 비슷한 길을 가기로 선택했지만 유럽연합은 ‘군사 동맹’은 아니다.”
―튀르키예가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어깃장을 놓는 상황이다. 스웨덴과 함께 동시에 가입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나?
“기꺼이 함께 가입하고자 한다. 나토 회원국은 새 회원국을 받아들일 때 질문을 던지고, 숙고할 권리가 있다. 새 회원국이 가입하려고 할 때 전통적으로 수년이 걸렸던 것을 알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겨우 지난여름 나토의 초청을 받았다. 반년이 조금 넘었는데 몇 달 만에 28개국이 가입을 비준하는 등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서두르지 않는다.”
―동시 가입이 좋은 이유는 뭔가?
“핀란드와 스웨덴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고, 사실상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한다. 지난 10년 동안 두 나라는 안보 협력을 더 강화해왔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 두 나라가 함께 가입하는 것이 나토의 계획 수립, 통합에도 더 용이하다고 본다.”
―안보에 대한 인식에서 핀란드가 스웨덴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지리적으로 핀란드는 1340km에 달하는, 유럽에서 러시아와 가장 긴 국경을 공유하고 있다. 또한 핀란드는 러시아와 여러 차례 전쟁을 한 역사가 있다. 이것들이 안보 인식에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스웨덴은 지리적으로 다소 떨어져 있고,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와 같은 협력국에 둘러싸여 있다. 스웨덴은 약 200년 동안 중립을 유지했다. 1800년대 초반 이후로 전쟁한 적이 없다. 스웨덴인의 정치적 유전자에 중립은 훨씬 더 깊이 박혀 있다. 하지만 핀란드는 2차 대전 이후에야 중립성 유지, 비동맹 정책을 채택했다. 핀란드가 서방과 동방 사이에 끼어있었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중립을 선호했다기보다는 생존의 수단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지난해 전쟁이 난 뒤 스웨덴보다는 더 빠르게 방향을 바꿀 수 있었던 것 같다.”
―유럽에서 더 큰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잠재적 확전 가능성을 두고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나토가 이 전쟁의 일원이 되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조심해 온 이유다. 지금 당장 유럽에서 더 큰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작지만, 가능성은 언제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헬싱키는 1975년 동서 두 진영이 유럽의 안보 협력을 약속한 ‘헬싱키 협약’을 맺은 상징적 장소다. 협약이 아직 유효한 게 맞나?
“헬싱키 협약의 원칙이 여전히 유효하길 바라지만, 러시아가 여러 방식으로 원칙을 위반했다. 민주주의, 인권, 자유, 주권 등 원칙이 도전받고 있다.”
―새로운 협약이 필요한 게 아닌가?
“모든 전쟁은 언젠가 끝난다. 그때 어떻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전쟁이 끝나고) 미래에 우리가 함께 모여서 어떻게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할 것인지, 그리고 현재 도전을 받는 협약의 중요한 원칙을 어떻게 되살릴지 해결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쉽지 않겠지만, 이것이 향후 수년 동안 외교관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모색할 권리가 있다. 시점은 나토가 정하게 될 것이다. 핀란드는 아직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입장이 없지만 언젠가 모든 동맹이 동의하는 시점에 우크라이나가 회원국이 되기를 바란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무기 지원이 언제까지, 어느 수준까지 갈 수 있을까?
“각 나라가 정할 일이겠지만, 지원의 규모와 질이 계속 커지고, 높아지고 있다. 핀란드 역시도 우크라이나에 많은 지원을 했다. 그들이 필요로할 때까지 지원할 것이다. 군사적 지원뿐 아니라 그 나라 사회가 필요로하는 지원과 재건, 안정화, 훈련까지 지원하고자 한다.”
―우크라이나가 주장하는 대로 크림반도, 돈바스 지역까지 되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우크라이나 상황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 (1939년 소련의 핀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1940년 겨울 전쟁 당시 핀란드는 같은 입장에 처했었다. 2차 대전이 계속되던 1944년에도 마찬가지다. 러시아는 핀란드 동부를 점령하고 있었고 핀란드인들은 그 영토를 러시아에 넘겨주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핀란드의 자원이 동났다. 탄약이 없었고, 사회는 완전히 망가졌다. 더는 다른 나라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당시 동맹국이던 독일은 전쟁에서 지고 있었다. 소련과 협상을 하는 아주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려야 했던 이유다. 이는 핀란드 동부의 거대한 영토를 잃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핀란드에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기억이다. 우리는 다시는 그 영토를 돌려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우크라이나가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를 잘 이해하고, 그들에게는 그렇게 할 권리가 있다.”
헬싱키/ 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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