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한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왼쪽)과 마주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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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2024년 파리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손잡고 두 나라 선수들이 유럽 대신 아시아 무대에서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우회로를 만들었다.
OCA는 지난 27일 “오는 9월 개막하는 항저우아시안게임에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참가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OCA가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아시안게임에 두 나라의 출전을 허락한 건 ‘선수들에게만큼은 파리올림픽 출전 길을 터줘야 한다’는 IOC의 판단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다.
IOC는 하루 전인 지난 26일 “어떤 선수라도 그들이 소유한 여권 때문에 경쟁에 참여할 길이 사라지는 상황에 놓이는 건 불합리하다”면서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들이 자신의 국적이 아닌, 중립국 또는 중립 단체 소속으로 참가할 경우 2024년 파리올림픽에 나설 수 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2월 전종목에서 두 나라를 퇴출했던 IOC가 뒤늦게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을 허용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꾼 이유는 내부 기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모든 종류의 정치적 행위를 엄격히 금지한다’는 올림픽 헌장 50조 2항을 스스로 어기고 있다는 내부 비판이 거셌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는 “IOC가 러시아·벨라루스 선수들의 올림픽 참가를 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의 올림픽위원회와 지속적으로 논의했으며, 원칙적인 동의를 이끌어냈다”고 전했다.
지난 2014년 소치겨울올림픽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대화하는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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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A가 두 나라의 아시안게임 출전을 허용한 건 파리올림픽 참가에 필요한 제반 여건을 마련해주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들이 올림픽 본선을 밟으려면 각 종목별로 기록과 랭킹 관리가 필요한데, 이 과정을 유럽이 아닌 아시아 무대에서 진행하도록 배려한다는 의미다. 항저우아시안게임 출전 자격을 부여한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아시안게임은 여러 종목에서 올림픽 출전 자격의 기준점 역할을 하는 대회다.
OCA는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아시안게임 참가를 전격 허용한 결정에 대해 “우리는 국적과 상관없이 모두가 스포츠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두루뭉술한 설명을 내놓았다. 아시아 국가들만 참가 자격이 주어지는 대회에 두 나라를 초대한 구체적 이유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아시아 소속 국가들의 사전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IOC의 결정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OCA가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항저우아시안게임 참가를 허용한 건 두 나라 선수들의 파리올림픽 출전 길을 열어주려는 IOC의 결정과 발을 맞춘 결과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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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벨라루스를 구제하려는 IOC의 움직임에 우크라이나는 발끈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침략 전쟁에 대해 명확히 반대 목소리를 내던 IOC가 전범국인 러시아와 벨라루스에게 뒤늦게 올림픽 참가의 길을 열어주려는 건 위선적 행태”라면서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을 (최대 격전지인) 바흐무트로 초청하겠다. 와서 직접 보고 판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쟁으로 인해 180명이 넘는 선수를 잃은 우크라이나올림픽위원회(NOCU) 또한 비상 대책을 강구 중이다. 다음달 3일 총회를 열어 IOC의 결정에 항의할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바딤 구차이트 우크라이나 체육부 장관 겸 NOCU 위원장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출전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IOC의 결정을 바꾸기 위해선 (파리올림픽 보이콧을 포함해) 어떤 결정이라도 내릴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글로벌 선수 단체인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선수들’도 이날 성명을 내고 “IOC의 결정은 침략 전쟁에 대한 러시아의 선전선동을 강화할 명분을 주고, 푸틴 정권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면서 “궁극적으로 세계 평화를 약화 시킨 조치”라고 비판했다.
항저우아시안게임 주경기장으로 활용할 항저우올림픽스포츠센터 전경.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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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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