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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섭의 MLB스코프] 명예의 전당 투표,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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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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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2023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 결과가 발표됐다. 총 28명의 후보들 중 스캇 롤렌이 유일하게 득표율 75%를 넘겼다. 올해 6번째 도전이었던 롤렌은 득표율 76.3%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스캇 롤렌 : 76.3%
토드 헬튼 : 72.2%
빌리 와그너 : 68.1%
앤드루 존스 : 58.1%
개리 셰필드 : 55.0%


롤렌은 메이저리그에서 17년간 뛴 3루수다. 통산 2038경기에서 316홈런 1287타점을 기록했다. 통산 타율 .281, OPS .855로 준수했다. 파워와 정확성, 선구안을 두루 갖췄고, 찬스에 강한 면모도 보여줬다. 2004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7차전에서 로저 클레멘스를 상대로 친 결승 투런홈런은 백미였다. 2006년 월드시리즈에서도 19타수 8안타(0.421) 맹타를 휘둘러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우승에 일조했다.

롤렌을 상징하는 분야는 수비다. 날렵한 수비를 앞세워 빠른 타구들을 철벽처럼 가로막았다. 넓은 범위와 강력한 송구가 더해진 수비는 명장면 제조기였다. 골드글러브 8회 수상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 수비력이 없었다면 롤렌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항상 최선을 다한 롤렌은 보고 있으면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선수였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씨도 따뜻했다. 2005년 최희섭과의 충돌로 심각한 어깨 부상을 당했을 때도 최희섭을 탓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직후에도 "팀을 위해 열심히 뛰었을 뿐, 명예의 전당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겸손한 소감을 전했다.

이처럼 롤렌은 분명 뛰어난 선수였다. 그런데 롤렌이 반드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야 할 선수였는지는 선뜻 답을 내리기가 애매하다. 평가 기준이 되는 '누적 성적'과 '임팩트' 중 무엇 하나 제대로 충족한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최근 명예의 전당은 투표 성향이 달라졌다. 과거 매우 엄격했던 심사가 다소 완화됐다. 그러면서 수많은 전설들도 해내지 못했던 만장일치 입성까지 나올 수 있었다(2019년 마리아노 리베라). 누군가와 비교하는 방식이 아니라 명예의 전당에 어울리는 선수가 맞는지 여부만 판단하게 되면서 가능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표를 주지 않은 시절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그동안 외면받던 수비가 합당한 대우를 받는 것도 긍정적이다. 수비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브룩스 로빈슨과 아지 스미스의 사례가 있지만, 명예의 전당 투표는 공격에 너무 치우친 경향이 있었다. 다양한 수비 지표의 탄생과 더불어 공격 수비 주루가 모두 반영된 승리기여도가 생기면서 이전보다 공평한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롤렌은 달라진 투표 성향의 혜택을 입었다. 처음 후보로 이름을 올린 2018년에는 득표율이 10.2%에 그쳤다. 대개 시간이 지나면서 득표율은 오르지만, 이렇게 급등하는 경우는 극소수다. 실제로 현재 투표 체계가 확립된 1966년 이후 롤렌보다 낮은 첫 해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 벽을 뚫은 선수는 없었다. 이는 그 사이에 투표인단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맞지만, 그때는 틀렸다. 이러한 접근법이 과연 명예의 전당 선수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타당한지 의문이다. 과거에는 누가 봐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야 할 선수들이 들어갔다. 리그를 지배했거나 리그에서 오랫동안 꾸준히 활약한 선수들이었다. 구태여 이것저것 따져 볼 필요가 없었다.

롤렌이 명예의 전당에 오를 자격이 없다는 주장은 아니다. 다만, 앞서 말한 것처럼 심사 기준이 보다 개방적으로 변했다면 후보로 나올 수 있는 자격은 단축되어야 한다.

2014년 명예의 전당은 후보 자격이 15년에서 10년으로 줄었다. 그러나 10년 역시 너무 긴 시간이다. 이미 은퇴한 지 5년이 지나야 후보 자격이 생기는데, 여기서 10년을 더 두고 평가하는 건 의아하다. 과거에는 워낙 많은 선수들이 후보로 나왔기 때문에 그만큼 기회를 더 줬지만, 지금 명예의 전당 선수를 가리는 데 이토록 긴 시간이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 잘못된 것을 향후 바로 잡는다고 해도 10년이라는 시간은 지나치게 길다. 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꾸 부차적인 것이 더해지면 명예의 전당 문턱만 낮아질 뿐이다.

올해 가장 큰 논쟁은 제프 켄트의 탈락이었다. 롤렌과 같이 메이저리그에서 17년간 활약한 켄트는 통산 377홈런 1518타점을 기록했다. 377홈런은 역대 2루수 최다홈런 1위에 해당한다. 통산 타율(0.290)과 OPS(0.855)도 롤렌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켄트는 마지막 도전이었던 올해도 득표율이 46.5%에 머물렀다. 2014년 첫 해 득표율(15.2%)은 롤렌의 첫 해 득표율보다 높았지만, 켄트의 득표율은 한참 답보 상태에 있었다.

켄트와 롤렌의 차이는 수비였다. 켄트는 수비력이 떨어져서 명예의 전당 선수가 되기엔 부족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공격에서 족적을 남긴 선수가 수비 때문에 홀대를 받은 건 부당하다는 반박도 있다. 수비가 정당한 대우를 받게 된 건 반길 일이지만, 그렇다고 공격이 폄하되는 건 피해야 할 일이다. 이로 인해 켄트는 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켄트의 탈락이 기자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했다. 선수 시절 켄트는 성격이 극도로 차가웠다. 기자들이 질문하면 무시하거나 마지 못해 퉁명스럽게 답했다. 이에 선수 시절 내내 평판이 좋지 않았다.

명예의 전당 투표는 성적 못지 않게 선수의 이미지도 영향을 미친다. 당장 작년에도 체감할 수 있었다. 기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데이빗 오티스는 약물 논란에도 불구하고 첫 해에 곧바로 헌액됐다. 반면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던 커트 실링은 끝내 고배를 마셨다.

투표에 사견이 들어가는 건 당연하다. 선수를 바라보는 관점은 제각각이다. 그러나 감정이 실리면 곤란하다. 그러면 기준이 흔들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가 발생한다. 명예의 전당 투표가 자칫 인기 투표로 비춰질 수 있다.

명예의 전당 투표는 변별력이 없어서도 안 되고, 균형이 무너져서도 안 된다.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더라도 모두를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명예의 전당이 지금의 위상을 이어갈 수 있다. 위상은 추락하기 전에 지켜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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