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5 (월)

이슈 천태만상 가짜뉴스

천공說, 이태원說...눈덩이처럼 커지는 가짜뉴스, 지지층은 맹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쏟아지는 거짓정보 어떻게 확산되나

조선일보

‘청담동 술자리 의혹’은 유튜브 채널 ‘더탐사’가 확보한 문제의 첼리스트 녹음 파일에서 시작됐지만, 사실상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과 당 지도부가 논란을 키우고 확산시켰다. 정치권이 가짜 뉴스를 차단하기는커녕 별도 검증 없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증폭시킨 대표 사례다.

조선일보

김 의원이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의혹을 거론하자, 같은 당 장경태 최고위원은 곧장 공개 회의 발언에서 “법무부 장관이 로펌 관계자들과 술자리가 있었다면 문제 소지가 크다”고 했다.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사실이라면 제2의 국정 농단”이라고 했다. 이들은 청담동 의혹이 사실상 가짜로 판명 난 이후에도 “진실은 아직 모른다”는 입장을 유지 중이다. 그러는 동안 정치권을 타고 나온 말들이 유튜브와 인터넷 게시판에 퍼져나갔다.

조선일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2022년 10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대형로펌 변호사들과 술자리를 가졌다는 증언에 대한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엔 ‘천공’으로 알려진 역술인이 정부 주요 결정에 개입했다는 가짜 뉴스가 확산 중이다. 지난달 30일 구독자 7만명이 넘는 한 좌파 유튜브 채널에는 천공이 과거 강연에서 “노동 쟁의가 없어야 미래 발전이 있다”고 말하는 장면과, 윤 대통령이 최근 “불법 파업과 타협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장면을 이어 붙인 영상이 게재됐다. 제목은 ‘화물연대 짓밟기, 이번에도 천공 가르침대로’였다. 영상 게재 하루 뒤엔 구독자 90만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이, 이틀 뒤엔 김어준씨가 자신의 방송에서 천공 영상을 틀었다. 김씨의 방송은 13일까지 조회수 121만회를 넘었다. 지난 5일에는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이 ‘천공이 윤 대통령 부부가 머물 관저 물색 과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천공과 동행한 것으로 지목된 대통령 경호처장이 “일면식도 없다”고 했지만, 친야(親野) 성향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천공이 다 시킨다는 게 맞는다”라는 글이 이어졌다.

조선일보

반대 진영에서도 비슷한 패턴의 일이 벌어진다. 우파 유튜버 채널에서는 이른바 ‘이태원 참사 기획설’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태원 참사는 이재명 사법리스크를 덮기 위해 기획됐고, 사건을 일으킨 조직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유튜버들은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제보자’의 말을 빌려 “사건 현장에서 수백m 떨어진 곳에서도 시신이 발견됐다. 압사 외에 사망 원인이 따로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은 지난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무려 300m 떨어진 곳에도 시신이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 제기된 의혹을 국회에서 그대로 언급한 것이다.

조선일보

김의겸, 김어준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어느 한 곳에서 흘러나오면 이른바 ‘사이버 레커차’들이 따라붙어 의혹이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커진다. 사고 난 차량에 붙는 레커차처럼 유튜버들이 각종 의혹을 짜깁기한 영상 또는 게시물을 만들어 조회수를 높이는 것이다. 이낙연 전 대표가 과거 베트남을 방문해 호찌민 주석의 거소를 방문했을 때 ‘주석님’이라는 호칭을 붙여 쓴 방명록이, 사이버 레커차들의 짜깁기에 의해 ‘김일성 주석’을 향해 쓴 글로 둔갑한 적도 있다.

정치권이 가짜 뉴스를 끊어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선 “가짜 뉴스만큼 짧은 시간 내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도 없기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지난 7일 온라인 메신저와 소셜미디어에는 김건희 여사가 분홍색 슬리퍼를 신은 채 베트남 국가주석과 차담회를 갖는 사진이 급속히 퍼졌다. 김 여사의 ‘무례’를 비난하는 댓글이 쏟아졌다. 하지만 실제 차담회는 실내에서 이뤄졌고 윤 대통령과 베트남 주석도 슬리퍼 형태의 실내화를 착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같이 배포된 다른 사진을 보면 김 여사만 슬리퍼를 신은 게 아니라는 건 한눈에 알 수 있었다”며 “의도를 갖고 만든 가짜 뉴스”라고 했다. 2018년 미 MIT 연구진은 “가짜 뉴스는 진짜 뉴스보다 6배 더 빨리 더 깊이 더 멀리 퍼진다”는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지를 통해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가짜 뉴스로 지목된 사례들은 거의 대부분 ‘제보자’가 등장한다. 청담동 의혹에선 첼리스트와 그의 전 남자친구가, 이태원 참사 기획설에서는 현장에 있었다는 목격자 등이다. 제보자가 있다는 이유로 검증도 없이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다시 가짜 뉴스로 재생산돼 확산된다. 황근 선문대 교수는 “정치권과 가짜 뉴스 매체들이 서로를 부추기고 먹잇감을 제공하면서 가짜 뉴스를 확대하고 있다”며 “이런 부도덕한 공생을 중단시키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박상기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