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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구단주 “기다리겠다” 한마디…이승엽, 두산 감독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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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선수 이승엽은 삼성 라이온즈의 영원한 영웅이지만, 감독 이승엽은 두산 베어스에서 처음 지휘봉을 잡는다. 직접 러브콜을 보낸 구단주의 정성이 ‘라이언킹’의 마음을 움직였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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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야구계에서 가장 놀라운 소식은 두산 베어스의 이승엽(46) 감독 선임이었다. 올 시즌을 9위로 마친 두산은 구단과 인연이 없고, 지도자 경력도 없는 이 감독에게 과감하게 지휘봉을 맡겼다. 마무리 훈련을 마치고, 다음 시즌 구상을 시작한 이승엽 감독을 최근 만나 소감을 들어봤다.

이승엽 감독은 지난 10월 취임하자마자 경기도 이천 2군 캠프에서 마무리 훈련을 이끌었다. 선수단 파악을 위해 개인 면담을 마친 뒤 맨투맨 트레이닝을 하며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마무리 훈련은 끝났지만, 내년 스프링캠프 생각에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이승엽 감독은 “여유가 없었는데, 요즘은 잘 쉬고 있다. 방송이나 해설을 할 땐 스케줄이 유동적이었는데, 이제는 차분하게 준비할 시간이 생겼다. 처음엔 감독이 됐다는 걸 실감하지 못했는데, 조금씩 무게감을 느끼고 있다. 야구감독은 힘들고, 외롭고, 책임져야 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그는 또 “생각했던 이상으로 힘든 일이 많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다. 선수단을 하나로 묶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양의지와 계약 전 식사, 구단주도 나와

이승엽 앞에 항상 따라다니던 수식어는 ‘국민타자’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라이온 킹’이다. 1995년 경북고를 졸업하고,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2017년 은퇴할 때(일본 8년 제외)까지 줄곧 사자군단에서 뛰었다. 은퇴 이후 해설위원과 홍보대사를 지낸 이승엽 감독에게 뜻밖의 연락이 왔다. 베어스 구단주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만나자는 거였다.

“식사 자리라고 해서 나갔다가 감독 제안을 받아 놀랐다. 나에겐 대구 이미지가 강해서 ‘과연 다른 팀에 갈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바로 수락하지 못하고 ‘감사하다’고 했는데 구단주께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같이 하자’는 문자 메시지도 받았다. 아무 연고도 없는 내게 그런 모습을 보여줘 ‘믿어주는 분에게 보답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승엽 감독은 취임식 인터뷰에서 보강해야 할 포지션에 대한 질문에 “포수”라고 답했다. 그러자 두산 구단은 FA(자유계약선수) 양의지와 6년 최대 152억원에 계약했다. 양의지의 가세로 두산은 큰 힘을 얻었다.

이 감독은 “양의지가 좋은 선수라는 건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야구장에서 오가며 몇 번 본 게 전부였다. 그래서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 (유)희관이를 통해 한 번 보자고 했는데 흔쾌히 나와줬다”고 말했다. 양의지를 만나본 뒤 이승엽 감독은 그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이 감독은 “스타 플레이어인데도 ‘더 잘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야구를 정말 좋아하는 게 눈에 보였다. ‘의지가 우리 팀에 필요하다, 꼭 같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박정원 구단주도 양의지와의 식사 자리에 참석했다. 이승엽 감독은 “아마 그날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만나신 날일 것이다. 그런 자리가 있다고 하니, 함께 하시겠다고 했다. 구단도, 구단주도 애를 써주셨다. 설사 양의지가 오지 못한다 해도 감사한 마음뿐이었다”고 했다.

야구, 해설위원하면서 보니 더 잘 보여

하지만 이승엽 감독은 지난 시즌 두산의 주전 포수였던 박세혁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취임식에서 포수 이야기를 한 건 그만큼 포수가 중요한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박세혁이 훌륭하게 안방을 지켰지만, 그가 FA 자격을 얻은 걸 알고 있었다. 강한 팀이 되려면 좋은 포수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박세혁은 양의지가 떠난 NC 다이노스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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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감독


이승엽 감독은 두산 지휘봉을 잡기 전 JTBC 예능프로그램 ‘최강야구’에 감독으로 출연했다. 홈런타자 출신이지만 세밀한 작전을 구사했고, 베테랑은 물론 윤준호·류현인·최수현 등 어린 선수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냈다.

이 감독은 “일본에서 야구를 하다 보니 영향을 받았다. 지도자가 된다면 여러 가지 작전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매번 작전이 나간다면, 그건 선수를 믿지 못하는 모양새다. 1점이 필요하고, 진루타가 필요할 때 벤치가 움직일 것”이라며 “19세 때 야구단에 들어가 42세까지 뛰었다. 20세 선수의 마음, 25세의 마음, 베테랑의 마음을 모두 이해한다. 내가 다가가지 않으면 선수들이 다가오지 못한다. 캠프에서 같이 먹고, 자고 하면 가족 같아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의심 어린 시선도 있다. 코치 경력 없이 곧바로 감독이 됐기 때문이다. 이승엽 감독은 “해설위원을 하면서 공부를 많이 했다. 지도자가 되면 ‘이런 방법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야구를 위에서 보면 잘 보인다. 시야는 더 넓어졌다”며 “경험이 없으니까 우려하는 건 당연하다. 두 배, 세 배 노력하고 준비하면 갭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출범 이후 내리막길을 걷던 한국 야구는 2000년대 후반 국제 대회를 통해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최근 국제 경쟁력이 떨어졌다. 대표팀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고, 기술위원을 지낸 이 감독의 생각이 궁금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주말 리그로 인해 연습량이 줄어들었다. 선수들의 체격은 좋아졌는데 제도적으로 이를 받쳐주지 못한다. 예전보다 과학적인 연습을 하고 있지만, 훈련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스포츠는 결국 머리로 생각하고 몸으로 기억해야 한다. ‘꼰대’라고 불릴지 모르겠지만, 본인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연습을 더 해야 한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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