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왜 안 줄어드나…패러다임 바꿔야<상>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열린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에서 참가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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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3일 고용노동부의 업무보고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5년 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중대재해 감축'. 여기서 말하는 OECD의 수준은 사고사망만인율(1만명 당 사망자 수)이다. OECD 평균은 0.29‱(퍼밀리아드, 10만명당 2.9명 사망)이다. 한국은 2021년 말 기준으로 0.43‱이다. OECD 38개 회원국 중 34위로 최하위권이다.
한데 "중대재해를 줄이겠다"고 한 건 윤석열 정부만이 아니었다. 역대 모든 정부가 국정과제로 삼았다. 그런데도 사고사망만인율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은 채 정체 상태다.
한국이 사고사망을 줄이려 우왕좌왕하는 사이 영국과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은 0.01‱대로 확 낮췄다.
이처럼 극명한 차이가 나는 이유가 뭘까. 안전사고를 대하는 정책의 패러다임이 정반대여서다.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 규제로 줄이겠다는 국가와 자율적 안전체계를 법령의 준수와 동일하게 인정하고 병행하는 국가의 차이"라고 말했다. 법과 정부에 의한 일방적 강제·처벌 패러다임과 규제와 자율의 적절한 조화 패러다임에서 산업현장의 안전수준이 갈린다는 뜻이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
정부는 조만간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한다. 산업현장의 노사가 참여하는 '자기규율 예방체계'확립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제와 처벌에서 현장 중심의 자율체제 병행으로의 방향 선회다.
정부가 이렇게 패러다임을 트는 것은 그동안의 학습효과 때문이다. 강제력을 동원한 안전대책이 산업현장에선 실효성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부는 2020년 1월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면 개정했다. 2022년 1월에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법)이 발효됐다. 두 법은 처벌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안전사고가 나면 최고경영자에게 책임을 물어 1년 이상의 징역 등 중형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당시 정부와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 정당과 노동계는 한목소리로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의 경각심을 일깨워 감축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대재해는 줄지 않고 정체 또는 오히려 늘어나는 반대현상이 나타난 뒤 지속하고 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뒤 처벌 대상인 50인 이상, 50억원 이상 공사 사업장의 중대재해는 늘었다. 고용부가 집계한 올해 10월까지 발생한 중대재해법 적용 기업의 사망사고는 200건이고, 사망자는 224명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사고 건수는 3건, 사망자는 17명 불어났다.
이런 추세는 8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사고사망만인율은 0.4~0.5‱로 정체된 상태다. 매년 800명 이상의 근로자가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숨진다. 최근에도 대전 아울렛 화재, SPL의 끼임 사망사고, 안성 물류 창고 붕괴 등 사망사고가 잇따랐다.
중대재해 사각지대화 한 50인 미만 사업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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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중대재해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사고사망 비중이 80.9%로 급속한 증가 추세다. 50인 이상 사업장의 중대재해 감축 속도는 2010년 0.53‱에서 2021년 0.20‱으로 빠르지만 50인 미만 사업장에선 같은 기간 1.0‱에서 0.58‱으로 줄어드는 데 그칠 정도로 느리다.
결국 소규모 사업장의 중대재해를 낮춰야 OECD 회원국 평균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이건 법을 강화하거나 정부 규제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법이나 감독 사각지대에 있어서다.
8년 전 경험에서 그 방법을 찾을 수 있다. 2013~2014년 기간이다. 2013년 사고사망만인율은 당시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수치인 0.71‱에 달했다. 이게 이듬해 0.58‱로 뚝 떨어졌다. 당시 정부는 산업안전법을 개정해 위험성평가를 도입했다. 그 효과가 이처럼 강력했다. 위험성평가는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고, 이로 인한 부상 또는 질병의 발생 가능성(빈도)과 중대성(강도)을 추정한 뒤 감소 대책을 수립해 실행하는 제도다. 사업장별로 업종이나 근로형태에 맞게 자율적으로 안전 조치를 할 길이 트였다. 비록 초보적인 수준이었지만 정부 주도 규제에서 처음으로 사업장의 자율체계를 접목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
하지만 이마저도 효과가 오래가지 못하고 그 이듬해부터 사고사망만인율은 다시 정체됐다. 고용부 관계자는 "처벌 위주로 짜여진 법 아래서 자기규율 방식은 더이상 효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도입했던 딱 그 시점에서 제도의 효용성이 수명을 다하고 멈춘 이유다. 2019년 고용부가 작업환경 실태를 조사한 결과 위험성 평가를 하는 기업은 전체의 33.8%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선 류경희 고용부 산업안전본부장이 "기업 스스로 사고예방 역량을 갖추고 관련 체계를 구축·이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지만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이정식 고용부장관은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예방시스템을 구축해가고 있지만 내실있는 이행에 이르지 못하고, 중소기업은 예방 역량 자체가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이 장관은 "자율체계를 도입해 직접 안전예방에 나서야 경험을 통한 안전 인식이 내재화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현장의 예방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답은 이미 모두가 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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