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 '양조위의 화양연화' <하>
왕가위 감독과의 작업 비하인드 그리고 배우로서의 '운'과 '행복'
배우 양조위가 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야외무대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양조위의 화양연화' 오픈토크에서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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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서취' '중경삼림' '동사서독'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 '2046' '일대종사'
배우 양조위가 왕가위 감독과 함께한 영화는 모두 7편. 이 모든 작품이 지금까지도 걸작으로 불리고 있고, 양조위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그의 명연기를 만날 수 있는 수작으로 손꼽힌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안에서 양조위는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쳤고, 왕가위 감독은 양조위라는 걸출한 배우를 통해 관객에게 더 깊이 닿을 수 있었다.
양조위는 그런 왕가위 감독의 창작 방법은 경험해본 적 없는 재밌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또 감독과 함께한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로 '동사서독'을 꼽았다. 조금은 다른 의미로 말이다. 과연 어떤 이유로 '동사서독'을 떠올렸고, 왕가위 감독에 관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7일 오후 오픈토크 '양조위의 화양연화'에서 나온 이야기를 전해보고자 한다.
외화 '동사서독' 속 맹무살수 역으로 열연한 배우 양조위. 다음 영화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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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위가 왕가위 감독과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고개를 흔든 이유
이동진 영화평론가(이하 이동진) :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시작과 끝이 불분명한 측면이 있고, 배우를 지치게 하고 고난의 길이라 들었는데 무려 7편이나 출연했다. 양조위의 가장 멋진 연기가 왕가위 감독 영화에 있다. 어떻게 왕가위 감독을 참아냈나?
양조위 : (고개를 끄덕이며) 음~ 또 다른 창작 방법인 거 같다. 이전에 다른 감독님과 일했을 때는 단 한 번도 그런 방식의 창작 방법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대본도 거의 없는 상황이고, 캐릭터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촬영을 먼저 들어갔다. 그리고 언제까지 촬영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재밌는 방식이었다.
현장에서 매일 대본을 받는데, 그래서 내가 찾은 방법은 하루하루 받은 대본을 제대로 대하고 제대로 연기하다보면 그 역할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어 있다. 우리 생활도 그렇다. 하루하루 제대로 살아본다면 그런 느낌인 거 같다.
사실 왕가위 감독님은 욕심이 좀 많은 편인 거 같다. 같은 신을 여름에 3일 찍고 가을에도 3일 찍는다. 이런 쪽으로 욕심이 많다. 그래서 가끔씩은 좀 힘들다.(웃음) 아마 감독님도 그 신을 여름으로 설정해야 할지 가을로 설정해야 할지 아직 결정을 못하셔서 그런 거 같다. 근데 대체로 재밌었다. 왜냐하면 연기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게 3개월이 걸리든 2년이 걸리든 할 수만 있다면 되게 행복하기 때문이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속 배우 양조위의 모습들. 다음 영화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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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 왕가위 감독과 7편을 함께하면서 개인적으로 그래도 가장 힘들게 느껴졌던 작품은 무엇인가?
양조위 : '동사서독'으로 가겠다. 사실 그 작품 촬영 당시, 지금으로서는 이십 몇 년 전이었던 거 같은데, 촬영 장소 자체가 아주 아주 아주 먼 사막이었다. 사막 한가운데 길 딱 하나만 있고 호텔도 없고 나무로 대충 지은 민박집만 있었다. 숙소에 들어가서 처음 하는 일은 방청소하고 소독하는 일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정말 촬영하면서 이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었던 거 같다.
그리고 왕가위 감독님의 촬영 방식은 그날 그날이 되어서야 오늘 나의 촬영분이 있다 없다 알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오늘 할 게 있는지도 모르고 기다려야 해서 힘든 부분이 있었다. 이십 몇 년 전이니 스마트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어서 집에 전화하려면 아주 먼 곳에 가서 전화를 걸고 싶다고 말해야 했다. 그러면 그 분이 대신 걸어주고, 연결됐다고 하면 부스에 들어가서 통화하는 그런 올드한 방식으로 일했다.
이동진 : 왕가위 감독을 7~8년 전에 만났을 때 양조위는 어떤 배우인지 물었다. 그때 감독님이 말하길,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미무취한 배우라고 했다. 배우로서는 최고의 찬사 아닌가. 감독들이 마음껏 그릴 수 있는 멋지고 거대한 캔버스인 거다. 왕가위 감독의 평가에 대해 들어봤나?
양조위 : 글쎄, 사실 배우라면 배우마다 유니크하고 자기만의 연기 방식이 있을 텐데, 나는 많이 조용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표현해 주신 거 아닌가 싶다.
이동진 : 우리가 사랑하는 스타 '양조위'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자신의 모든 상처를 안으로만 곱씹으며 삭이는 고독한 남자의 얼굴이다. 많은 팬이 양조위에 대해 이러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걸 어떻게 생각하나?
양조위 : 아마도 원래 내 성격에 가까운 이미지라 그런 거 같다. 감독님도 나를 잘 알기에 그런 캐릭터가 생길 때마다 나부터 떠올려서 그런 역할을 많이 하는 거 같다.
배우 양조위가 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야외무대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양조위의 화양연화' 오픈토크에서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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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스크린 데뷔 40년…"나는 운이 무척 좋았던 배우"
이동진 : 배우는 결국 자신의 성격과 맞던 아니던 특정 상황에서 특정 캐릭터를 연기하다보면 가끔 내가 누구인지 혼돈에 빠질 수 있는 직업군이 아닌가 생각한다. 허다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감정적으로 깊숙하게 그 인물을 살아냈는데, 수많은 캐릭터 중 상대적으로 가장 깊숙하게 들어가서 실제 나는 누구인지 헷갈렸던 인물이 있다면 어떤 인물인가?
양조위 : 나는 거의 캐릭터마다 다 헷갈렸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역할을 준비할 때는 되게 많은 변화를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습관도 들여야 하고 캐릭터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상상하며 준비해야 한다. 촬영 시간과 준비시간이 길면 길수록 빠져나오기 힘들고,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다. 반면 촬영 시간이 짧으면 비교적 빠져나오기 쉬웠다.
비록 영화의 스토리 자체는 제각각이고 (그 이야기는) 작가분들이 쓰는 대본이지만, 배우가 연기하고 다른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경험은 실제 경험이다 보니 빠져나오는 건 힘들 수밖에 없었다. 촬영이 끝날 때 마다 꿈에서 깨는 기분이 든다.
최근 몇 년 간은 방법을 찾은 거 같다. 촬영 끝나고 굳이 역할에서 어떻게 빠져나와야 하는지 질문하지 않고 그냥 살던 삶을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빠져나오게 되어 있더라. 그런데 어쩌면 사실 캐릭터의 일부 성격이 이미 내 몸에 배어있을 수 있다. 크게 상관은 없을 거 같다. 그것도 내 인생의 일부 경험이니까.
장국영과 함께한 '해피 투게더', 장만옥과 함께한 '화양연화', 탕웨이와 함께한 '색, 계' 속 양조위의 모습. 다음 영화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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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 양조위가 함께 했던 좋은 배우들 중 각별히 한국 관객이 좋아하는 배우가 있다. 장국영, 장만옥, 탕웨이와 같이 연기했던 경험에 관해 간단히 언급해 달라.
양조위 : 여태 같이 일했던 모든 배우가 다 편했다. 배우들은 개인마다 다르고 다른 장점을 갖고 있기에 다 편하게 일했다. 개인적으로 촬영 전에는 호흡을 같이 맞춰야 할 배우들과 친구가 되는 걸 조금은 습관처럼 했다. 친구가 먼저 되어야 나중에 호흡하면서 소통도 편하고 대사 맞출 때도 솔직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금 언급한 장만옥, 탕웨이 두 사람 모두 프로다. 특히 장만옥은 방송사 (배우) 시절부터 같이 호흡을 맞췄던 배우라 조금 더 색달랐다. 처음 호흡을 맞췄을 때는 둘 다 신인이고 경험이 많이 없었는데, 이후 많은 경험을 쌓은 배우가 되어 다시 호흡을 맞춰서 그런지 조금 더 색달랐다. 그리고 탕웨이는 촬영 들어가기 3개월 전부터 일부러 시간을 많이 보냈다. 마작이나 춤을 같이 배우기도 하고 같이 박물관에서 그림도 봤다. 덕분에 역할을 소화하기 더 쉬웠다.
배우 양조위가 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야외무대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핸드프린팅 행사에서 작업을 끝낸 핸드프린팅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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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 양조위와 함께 작업했던 감독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게 양조위는 영화에 자기 모든 삶을 바치는 사람이라는 거다. 인생에서 영화와 연기를 떠나서 중요한 게 있다면 무엇인가? 세 가지 정도 짚어 달라.
양조위 : 첫 번째는 가족과 친구, 두 번째는 공간, 세 번째는 운동이다. 나는 스키 타는 걸 좋아하고, 거의 모든 수상 스포츠를 좋아한다. 수상 스포츠라는 게 수면 위에서만 하는 걸 좋아하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건 무서워하는 편이다.
이동진 : '일대종사'의 대사 중 인상적인 대사가 있다. "쿵후는 두 단어로 말할 수 있다. 수평과 수직. 지는 자는 수평이 된다. 최후에 수직으로 서 있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다"라는 대사다. 스크린 기준으로 올해가 데뷔 40주년인데, 지금까지도 꼿꼿이 서 있는 것을 보면 팬의 입장에서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본인의 연기 인생을 돌아보면 무엇을 느끼나?
양조위 : 나는 진짜 운이 좋은 사람이었던 거 같다. 과거 40년 동안 바쁘게 보내기도 하고, 많은 훌륭한 사람과 일하기도 하고,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과거 40년 동안 되게 행복하게 살아온 거 같다.
이동진 : 마지막 인사를 부탁한다.
양조위 :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부디 건강하시고 머지않은 미래에 다시 방문하겠다. 건강하시고, 다음에 봐요.(웃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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