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신한·우리銀 영업점 압수수색
코인이 은행 거쳐 해외로 10조원 넘게 송금
금감원과 경·검, 세관 당국, 국정원까지 조사
은행들 "현장 직원이 발견하기 어려운 구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 이은주 기자] 금융권에서 불거진 '수상한 외환송금' 논란이 사정(司正)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이어 국내외 조사권한을 가진 기관들이 제각기 실체 파악에 뛰어들면서다. 은행들은 예상보다 강도 높은 수사압박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30일 금융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전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국제범죄수사부(부장검사 나욱진)는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의 지점에 수사관을 파견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현장 조사에는 검찰인력과 함께 세관당국자들도 참석했다. 압수수색을 받은 지점은 최근 금융권에서 불거진 이상 외환송금 거래를 처리했던 영업점이다. 검찰은 지난 21일에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이번 사안은 지난 6월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으로부터 ‘거액의 수상한 외환송금 거래가 있다’는 사실이 금융감독원에 접수되며 알려졌다.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원화로 바뀐 돈이 여러 은행을 거쳐 홍콩과 일본 등으로 빠져나갔다. 송금을 진행한 기업들의 자금 과정이 수상한데다 사실상 유령회사로 보이는 기업도 있어 금감원이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외환송금 규모는 72억2000만달러(원화 약 10조1729억원)이다.
검·경부터 국정원까지…"긴밀하게 상황 공유"
해당 사안은 금감원을 비롯한 금융당국뿐 아니라 경찰과 검찰, 국정원, 관세청, 법무부, 미국 연방수사국(FBI) 등이 연관돼있다. 한 사안에 이 정도로 많은 기관이 연합해 검사와 수사를 동시 진행하는 사례는 드물다. 실체파악이라는 큰 목표 아래 각기 다른 이해관계에 맞춰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금감원에서는 일반은행검사국과 외환감독국이 외환송금 과정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전반적인 외환송금 규모와 국내 자금흐름, 은행이 외환송금 업무와 관련된 내부통제가 제대로 마련돼 있었는지, 내부통제 규정을 은행과 담당직원이 제대로 준수했는지 등을 따져보고 있다. 다만 금감원이 단독으로 자금흐름을 모두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가상자산을 누가 바꾸고 해외에서 누가 돈을 받았는지는 업무영역 밖이다.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도 지난 7월 "금감원은 국내 자금 출처를 보는 것"이라면서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해서까지 모든 검사를 할 수 없다. 코인 환전 등 거래소 단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검찰 및 세관당국과 협조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전처럼 각 기관이 개별적인 검사와 수사를 진행하다 요청이 들어오면 자료를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필요해 보이는 자료가 발견되면 사전에 공유해주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지난 5일 "이상 외환거래 이슈와 관련해 검찰, 관세청 등 유관기관과 상당히 긴밀하게 상황 공유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검찰에서는 대구지검과 서울중앙지검이 김치 프리미엄 등을 이용한 환치기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수조원대의 돈이 어떻게 형성됐으며 누구에게로 향했는지 확인하고 있다. 여기에 외환송금 과정에서 은행 측의 과실이 있었는지, 내부 직원이 불법행위에 연루됐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금감원은 필요하다면 미국 FBI와도 공조하겠다는 입장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6월 미국 출장 당시 FBI를 찾아 가상자산 관련 공조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은행들에서 발생한 이상 외환거래를 미국과 공조수사할 거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이복현 원장은 "금감원에 협조를 요청한다면 최대한 협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국정원도 이례적으로 자체적인 수사에 나섰다. 현재 국정원은 해외정보망을 이용해 돈이 빠져나간 곳의 첩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일각에선 불법자금세탁과 재산해외은닉, 북한 관련설까지 나오고 있다.
은행권 "지점서 모든 이상송금 걸러내기 어려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은행권에서는 당국의 사정이 지나치게 무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불만이 크다. 이 사안을 횡령과 같이 은행권의 내부통제 미비의 문제로 규정하고, 은행들의 책임미비를 지적하는 논리에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당국은 외국환거래법 등 관련법에 따라 은행이 외환 송금과 수령 과정에서 서류 검증 등을 통해 관련 업체의 적합성을 살폈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상 거래가 장기에 걸쳐) 첫 번째가 아니고 두 번째, 세 번째 있었으면 그때쯤에는 은행에 뭔가 빨간불이 들어왔어야 되는 것 아니냐"며 "외환거래 과정에서 외환거래법 의무 규정 등 본질을 훼손하지 않았는지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적어도 갓 신설된 회사가 대규모 송금을 요청할 때 은행들이 업체의 적절성 등을 감지라도 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금감원은 실제 무역 거래가 확인되지 않았는데 돈을 보내거나, 거래가 갑자기 폭증했거나, 가상자산 거래소에 연루된 자금 등을 이상 외환거래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창구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업체들이 제출한 서류의 적합성을 확인해 거래의 진실성을 걸러내는 것은 불가능한 구조"라고 항변했다. 이어 "현장에서는 은행원들이 업체의 적합성을 검증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수단이나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서류를 갖춰오면 이를 승인하는 반복적인 행정 과정이 진행될 뿐"이라고 강조했다. 업체가 송장을 들고 와서 서류를 제출하고 송금을 요청했을 때, 해당 송금 규모가 크거나 낯선 업체라는 이유 등만으로 직원들이 서류의 허위성 등을 파악해 송금을 거부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의미다. 회사의 허위성을 파악할 수 있는 행정적 인프라나 권한 등이 충분하게 존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상송금을 은행이 능동적으로 걸러내기엔 한계가 있다고 본다.
금융당국 안팎에서도 은행을 겨냥한 사정 드라이브가 지나치다는 우려의 시선이 있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해당 외환송금 문제를 가장 먼저 드라이브한 것이 금감원인데, 지나치게 무리해서 일을 키우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시선이 안팎에서 있었다"며 "물론 이번에는 외환 송금 규모가 지나치게 크고 가상자산과 관련돼 있어서 문제가 크게 부상한 측면은 있었지만, 전 금융권들이 능동적으로 연관된 문제로 보기 어려운데 은행권의 문제처럼 부상하는 모양새가 다소 이례적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고 귀띔했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