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전남 목포 한 장례식장에서 북한군에 피격돼 사망한 해양수산부 고 이대준 주무관의 영결식이 엄수되고 있다./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잘가라 대준아! 부디 가족과 형제, 동료를 잊지 말거라. 그간 고생 많았다!”
2020년 9월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고(故) 이대준(당시 47세)씨의 영결식에서 조사(弔詞)를 낭독하던 이씨의 형 이래진(57)씨가 이렇게 외쳤다. “잘 가라”는 말에 이씨의 아내 권영미씨와 아들(19), 딸(10) 등 유족은 비통한 심정으로 고인의 영정을 바라보며 흐느꼈다.
해양수산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원 공무원이었던 고 이대준 주무관의 영결식이 피살된 지 2년 만인 22일 전남 목포에서 치러졌다. 지난 7월 유족은 인천에서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를 뒤늦게 열기도 했다. 국가 차원에서 정식 장례 절차가 진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오전 10시 목포시 효사랑장례식장에서 해양수산부장(葬)으로 거행된 영결식에는 조승환 해수부 장관,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 비서관, 하태경·안병길 국민의힘 의원, 고인의 동료 직원과 유가족·친지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유족 뜻에 따라 일반인 조문은 제한됐다. 영결식장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국민의힘 일부 의원, 해수부장관, 해양경찰청장 등이 보낸 조화가 놓여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소속 의원의 조화는 눈에 띄지 않았다.
조 장관은 영결사(永訣辭)에서 “고인은 7년 9개월간 어업감독공무원으로서 거친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며 공직자로서 사명을 다했고, 2년 전 위험한 연평 해역에서 공무 수행 중 북한군에 의해 사망했다”며 “오랜 시간 장례도 치르지 못한 유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며 2년간 영면에 들지 못했던 고인이 이제 편히 쉬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또 “오랜 시간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힘든 시간을 견디어 오신 유족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이제야 긴 시간을 되돌려 늦게나마 저 높은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게 됐다. 애통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22일 오전 전남 목포 한 장례식장에서 북한군에 피격돼 사망한 해양수산부 고 이대준 주무관의 영결식이 엄수되고 있다./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래진씨는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강력한 수사 의지와 여러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회한의 장례식을 치르게 됐다”며 “사건 초기, 사실과 다른 수사와 발표를 넘어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지난 정부의 비극을 우리는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억울한 죽음과 희생에 국가가 발 벗고 나서서 명예를 회복시켜 주길 바란다”며 “차가운 물속에서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대준이를 영면의 길로 이제 보내 주자”고 말했다.
고인과 한솥밥을 먹은 동료도 고별사를 했다. 무궁화 10호에서 함께 근무했던 손성봉 주무관은 조사에서 “생전 고인은 사명감과 열정으로 헌신했다”며 “고인의 명예로운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 어업 주권 수호와 해양수산 발전을 위해 더욱더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영결식은 40분 만에 마무리됐다. 고인의 명예회복에 힘쓴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온갖 모욕을 당한 고인이 구천에서 영원히 떠돌 뻔 하다가 시신이 없는 ‘반쪽짜리 장례식’이라도 치르게 됐다”며 “진실이 무엇인지 더 밝히고 앞으로 위령제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영결식을 마친 장례 행렬은 고인이 생전 몸담은 해수부 서해어업관리단 앞 목포 어업지도선 부두로 이동해 노제를 지냈다. 영정을 앞세운 유족 등 장례 행렬은 국가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에 올라 기관실과 조타실, 갑판 등을 돌며 운구 행진을 했다. 이 배는 고인이 마지막으로 승선했던 지도선이다. 예복을 갖춰 입은 서해어업관리단 직원과 무궁화 10호 승선원은 거수경례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뱃사람이 바다에서 잃은 동료에게 보내는 뱃고동 소리도 울러 퍼졌다. 유가족 등은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렸다. 이래진씨는 추모 노제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고발하겠다”며 “이제 장례식을 마쳤으니 그동안 했던 수위보다 강력한 발언들을 하겠다”고 말했다.
22일 전남 목포시 서해어업관리단 부두에서 고(故) 이대준 해양수산부 주무관의 추모 노제가 열렸다. 노제를 마친 운구차량이 동료직원들의 경례를 받으며 어업지도선전용부두를 떠나고 있다./김영근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앞서 고인은 2020년 9월 21일 인천시 옹진군 소연평도 해상에서 어업지도선을 타고 근무하던 중 실종되고 나서 표류하다 다음 날 북측 해역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했고, 시신이 불태워졌다. 문재인 정부는 이씨가 자진 월북했다고 판단했다. 유족은 고인이 월북할 이유가 없다며 정부를 상대로 진상 규명과 관련 정보공개를 요청해왔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국방부와 해경 등은 “월북 의도를 찾지 못했다”며 기존 발표를 뒤집고 공식으로 사과했다.
[조홍복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