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이슈 탈레반, 아프간 장악

아프간 대통령 맨발로 헬기 탈출… 탑승 못한 경호원은 총질할 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美, 1년전 ‘급박했던 그날’ 공개

지난해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 헬기장. 파죽지세로 진격해온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을 피해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 부부와 정부 고위 관료 등 44명이 세 대의 헬기에 나눠 타고 이륙을 준비했다. 얼마나 상황이 급박했던지 자리에 앉은 가니 대통령은 신발이 벗겨진 채 맨발이었다. 카헤르 코차이 대통령 경호실장의 최후 임무는 가니 대통령의 신발을 찾는 것이었다.

조선일보

아슈라프 가니 전 아프간 대통령/로이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 정부 기관 아프가니스탄재건감사관실(SIGAR)이 지난 9일(현지 시각)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할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담은 최종 보고서를 발간했다. SIGAR는 아프간 재건 사업을 감사하는 독립 기관으로 지난 2001년 이후 아프간 재건 사업 성과 등을 분석한 보고서를 수시로 의회에 제출해왔다. 이번 보고서는 SIGAR의 마지막 보고서다. SIGAR는 보고서에서 당시 현장에 있거나 사안에 정통한 아프간 전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인터뷰해 카불의 마지막 순간을 재구성했다.

이륙 순간 정원 초과로 탑승하지 못한 경호원이 총으로 헬기를 겨냥해 연쇄 폭발 또는 대형 인명 피해가 발생할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당시 세 대의 헬기는 각각 대통령 부부와 핵심 참모, 그 외 고위 관계자, 경호원들에게 할당됐다. 그러나 최대 25명에 달하는 경호원들이 타기에 좌석이 부족했다. 경호원 한 명이 총을 들고 두 번째 헬기를 겨누며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자폭 테러 때 주로 외치는 말)”를 외치며 방아쇠를 당기려다 제지당했다. 일부 경호원을 남겨둔 채 사람을 가득 태운 세 번째 헬기는 기우뚱거리며 나무와 충돌할 뻔하다 겨우 날아올랐다. 헬기에는 현금 50만달러(약 6억5000만원)도 실렸다. 대통령 경호실장과 국가안보보좌관이 자신들이 관리하던 예산을 챙겨온 것이다. 가니 대통령 일행이 탈출한 뒤 대통령궁에서는 대통령 개인 자산으로 추정되는 500만달러의 현금 다발이 발견됐다. 남겨진 경호원들은 돈의 분배를 놓고 다퉜으며, 돈을 담은 서너개 가방은 대통령 호위 차량에 실려 어딘가로 향했다.

당시 대통령궁에는 국가 안보 예산으로 배정된 7000만달러의 현금이 있었다. 이 돈은 카불 함락 2주간 각 부족에 전달되는 대탈레반 무장 투쟁 지원 자금으로 소진됐음에도 잔액이 상당했는데, 카불 함락 전날에 거의 통째로 사라졌다. SIGAR는 끝내 이 자금의 행방을 찾는 데 실패했다. 전 아프간 정부 고위 관료는 “정부 내부자들이 공모해 털어갔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탈레반 재집권 1년을 앞둔 13일 카불 시내에서 탈레반의 여성 탄압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탈레반은 “빵과 일거리, 자유를 달라”고 외치는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허공에 총을 쐈고, 일부는 시위 여성들을 폭행했다.

[정지섭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